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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들려주는 병원경영 이야기] 수시로 진료를 볼 순 없을까 • 미국의 레이크 노나 의료도시ARTICLE 2025. 6. 4. 17:31
ⓒGlasstone Real Estate 레트 증후군 Rett Syndrome이란 희귀병이 있다. 태어난 후 약 1세까지는 대체로 정상적으로 발달하다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든가 의사소통 능력의 부재 등 후천적으로 획득한 동 작이나 기술을 잃기 시작하는 병이다. 이 병은 음식을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등 여러 가지 증세를 보인다.
그래서 항상 물리치료, 식이요법, 음악치료, 작업치료를 받아야 하고 정기적으로 척추측만증이나 심장에 이상이 생기는지 관찰해야 하는 등 대학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에 자주 방문해서 치료를 받거나 검진을 받아 야 하는 질환이다. 만약 위의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대학병원이 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의 집 근처에 있다면 부모들은 얼마나 안심이 될까? 그리고 집에 연결된 카메라를 통해 수시로 진료를 볼 수 있다면 얼 마나 편할까?
미국의 올랜도는 디즈니 월드, 엡콧 센터,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테마파크의 본고장이자 전통적으로 최고의 가족 휴양지다. 이 환상적인 곳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지역은 과거에는 황량했던 땅이었지만 지금은 테마파크에 못지않은 명성을 갖춘 ‘의료복합도시Medical City’가 되어 있다. 약 857만 평의 땅에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의 새로운 의과대학 캠퍼스, 샌퍼드–번햄 의학연구소, 재향군인 병원, 누모로스 어린이 병원, 그리고 MD앤더슨 암센터의 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의학교육, 연구, 임상(치료)을 모두 갖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레이크 노나의 주민에게는 병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질 교육기관이 필요한데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입주해 있다. 단순히 의료산업 클러스터가 아니라 의료서비스를 계속 받아야 하는 주민들이 별걱정 없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를 개발했다. 레트 증후군과 더불어 의료서비스를 자주 받아야 하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레이크 노나’라는 의료복합도시의 등장으로 한시름 덜 수 있는 것이다.
레이크 노나 지도. (출처 : 레이크 노나 홈페이지) 의료복합도시 레이크 노나의 탄생
레이크 노나가 의료복합도시가 되기까지 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타비스톡 그룹은 충동적으로 플로리다에서 땅을 구매했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투자를 계속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골프클럽을 사고 땅을 넓혀가며 주택을 짓기 시작했으며 유명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는 골프대회인 타비스톡 컵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어떠한 비전은 없이 언젠가 이 땅이 큰 기회가 될 것이라는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레이크 노나의 큰 비전은 예기치 않은 인물에게서 나왔다. 그는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였던 젭 부시로 2002년 9·11사태 이후 연방정부에서 각 주에 나눠준 경기부양 기금 때문에 예산이 크게 남아도는 이례적인 상황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들은 메디케이드 확대에 예산을 사용했다. 하지만 젭 부시는 더 오래 지속될 것에 지출하려고 투자처를 모색하던 중에 타비스톡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타비스톡에서는 당시 샌디에이고에서 보유 중이던 바이오테크 투자 건들을 생각해 냈고 플로리다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투자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타비스톡이 센트럴 플로리다 의과대학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1,250만 달러를 기부했다. 첫 번째 입주 업체로 샌퍼드–번햄 의학연구소가 확장의사를 밝히면서 약 6만 평의 땅을 기부한 것이 레이크 노나의 시작이었다. 샌퍼드–번햄 연구소와의 계약 성사로 다른 기관들도 모여들기 시작했고 재향군인 병원, 누모로스 어린이 병원, MD앤더슨센터와 플로리다 대학교까지 유치하면서 레이크 노나는 명실상부한 의료복합단지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스마트 의료복합도시
레이크 노나의 테마는 ‘연결’이다. 도시 전역은 초당 1기가바이트(미국 평균의 200배가 넘는 속도)의 무선인터넷을 기반으로 데이터, 음성 및 무선 통합서비스, 디지털 사이니지, 공용지역 IP영상 감시, 에너지 관리시스템, 통합 커뮤니케이션, 비디오 협업 솔루션 등 20개 이상의 스마트 서비스로 무장했다.
특히 이 도시는 IP 기반의 네트워크 기술을 사용해 병원, 가정, 교육시설 등을 연계함으로써 장소와 관계없이 원격 의료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레이크 노나는 도시, 병원, 고속도로, 공장까지 모두 지능화된 시스템으로 연계되어 있어 기존 대비 전력 30퍼센트와 수자원 50퍼센트를 절약할 수 있었다. 또한 교통체증 또한 30퍼센트를 줄이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레이크 노나의 첨단 디지털 인프라는 환자들에게도 첨단의료환경을 제공한다. 누모로스 어린이 병원은 병실 문 앞에 환자의 상태 정보를 제공하는 ‘차트’가 태블릿으로 구비되어 있다. 차트 정보는 아이콘을 통해 보기 쉽게 제공된다. 그리고 병실로 들어가면 폐쇄회로CCTV 카메라와 RFID가 부착된 냉장고 등이 비치되어 있다. 폐쇄회로 카메라는 환자들의 움직임을 감지해 보호자의 부재 시에도 빈틈없이 환자들을 관리한다. 또한 RFID 냉장고는 음식물의 신선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굳이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병원과 가정이 ‘연결’되어 있어 환자가 병원에 내원하지 않고도 집에서 원격 진료가 가능한 것이다. 보호자인 부모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환자가 직접 자신의 상태를 전달할 수 있고 의사는 원격지에서 HD급 화질을 바탕으로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고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정과 병원이 연결되어 있듯이 가정과 학교가 연결되어 있어 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어린이들에게 원격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레이크 노나의 ‘연결’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이 목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프기 전의 삶과 현재 아픈 상태에서의 삶의 단절을 최소화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연결’의 목적이 아닐까?
글. 김우성 | GF 소아청소년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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