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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위에 놓인 공간들, 그리고 여름의 기억”
6월이네요. 저는 이 달을 무척 좋아합니다.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달이 주는 선명함을 사랑합니다. 아침과 저녁이 길어지는 하루, 햇빛이 반짝이며 만든 그림자들, 그리고 그 사이에 피어나는 내면의 속도들. 여름이 오면 제 마음도 자연스럽게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차오릅니다.
그건 어쩌면, 이 계절이 저의 생일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귀엽고 특별한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생일 플랜카드’입니다.
저와 아이들의 생일이 되면, 해마다 같은 플랜카드를 꺼내 걸고, 그 앞에서 포토존을 만들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그 앞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쌓여 가고, 사진 속 계절과 표정들이 우리의 시간을 증명해 줍니다.
이 얼마나 가성비 좋은 추억 장치인지요.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그 종이 한 장이, 우리 집에선 가장 확실한 ‘생일의 의식’이랍니다.
이번 6월호 인터뷰는 제게 또 다른 시간의 감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려 10여 년 전, 공사 당시의 긴박하고 치열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바로 인천의 아이소망병원입니다. 당시 건축주셨던 장항용 원장님을 다시 찾아뵈었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한 떨림이 있었고, 동시에 그 병원의 시간들이 어떻게 흘렀을지 궁금함이 일었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제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디자인했던 벽과 바닥, 동선과 빛의 흐름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더군요. 하지만 가장 감동스러웠던 건 그 공간이 여전히 환자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이 그 안에서 회복되고, 위로받았을까요.
더욱이, 원장님께서는 최근 저희 회사 직원의 어머니를 직접 진료해 주셨는데, 듣자 하니 너무도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돌봐주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공간도, 사람도 결국 ‘진심’ 위에서 가장 오래 기억된다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6월호를 준비하면서, 저는 ‘시간이 흐른 뒤의 공간’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다시 여름을 봅니다.
뜨겁지만, 선명하고, 오래도록 남을 계절.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공간에서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에, 이 일을 시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여름,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기억을 아름답게 새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계절이 여러분 곁에서 오래 머물 수 있기를.매거진HD
발행인 노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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