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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의 병원 중간관리자 이야기카테고리 없음 2026. 6. 3. 08:38
병원은 이제 중간관리자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작은 병원에 들어설 때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진료실이 아니다. 데스크에서 막 시작된 작은 실랑이, 무엇 때문인지 모를 직원의 굳은 표정, 한 시간대에 몰린 예약을 풀어내느라 동선이 꼬여 있는 대기실이다.
이 모든 일이 진료가 시작되기 전부터 동시에 벌어진다. 그런데 정작 이 풍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조율하는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원장은 진료실에 있고, 파트장들은 각자의 파트에 묶여 있다. 진료실 밖의 병원 전체를 보는 자리가 비어 있다.
이 빈자리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보건복지부 2020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96.97%가 이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의원 간호사 100명 중 97명이 이미 한 번 이상 직장을 옮긴 적이 있다는 뜻이다. 평균 이직 횟수는 1.47회. 주된 이직 사유는 낮은 보수(41.4%)와 과중한 업무량(40.8%)이었다. 보수는 원장이 결정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량’의 상당 부분은 다른 문제다. 절대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업무를 정리하고 조율하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는 일이 사람을 쫓아다닌다.

한국 작은 병원의 중간관리자는 대개 간호과장, 물리치료실장, 사무장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직책이 붙은 사람들이다. 임상에서 인정받았고 후배를 챙길 줄 안다. 그들의 능력이 좋기도 하지만, 거기에 머무는 경우도 많다. 누구도 그들에게 병원을 운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재무를 읽는 법, 사람을 평가하는 법, 컴플레인을 시스템으로 만드는 법, 마케팅 예산을 짜는 법.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다. 24년간 임상 현장에 있다가 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긴 뒤, 필자가 가장 자주 본 장면이 이것이다. 직책은 있는데 운영자는 없는 구조.
최근 만난 한 원장은 개업 후 이런 말을 했다. 진료보다 진료 밖의 일이 훨씬 많더라는 것이다. 마케팅 업체를 고르고, 전자차트 프로그램의 오류를 해결하고, 환자 불만을 받아내고, 직원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일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원장의 몫이었다. 외부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도 알아봤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워 접었다고 했다. 그는 개업 전 중소병원의 페이닥터였다. 그때는 파트마다 담당자가 있었고, 그 위에 전체를 조율하는 총괄 책임자가 있었다. 진료 밖의 일은 그 사람과 상의하면 됐다. 그런데 자신의 병원을 열자, 바로 그 자리가 사라져 있었다. 진료실 밖을 책임지던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해외에서 임상직 출신 관리자를 분석한 한 연구는 짧게 결론짓는다. “임상 경험만으로는 요구되는 관리 역량이 길러지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한국 작은 병원은 여전히 임상 경험만 가진 사람에게 운영을 맡기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그리고 그가 더 잘하지 못한다며 답답해한다.
다른 나라는 이 문제를 오래전에 정리했다. 미국은 1975년부터 의료실무경영자 자격(CMPE)을 운영해 왔다. 일본은 2010년부터 ‘의료경영사’ 자격을 운영하는데, 3급은 일반 종사자, 2급은 중간관리자, 1급은 이사장·원장으로 등급이 나뉜다. 중간관리자에게는 별도의 학습과 자격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미 제도화되어 있다. 미국은 50년, 일본은 15년. 한국은 종합병원급 행정관리자 협회는 있으나, 작은 병원의 중간관리자를 위한 표준화된 학습 트랙은 비어 있다.
앞의 원장이 포기했던 방법, 즉 병원경영지원회사(MSO)에 운영을 위탁하는 길도 있다. 행정과 마케팅과 인사를 외부 전문가가 맡아 준다. 그러나 한 회계법인 대표가 의료 전문지에 쓴 문장이 정확하다. “의원급의 경우 운영비용 발생으로 MSO 운영실익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비용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운영을 외부에 맡기면 병원 안에는 끝내 운영 역량이 쌓이지 않는다. 계약이 끝나는 순간 병원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진료실 밖의 리더는 무엇을 할 줄 알아야 하는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운영, 스케줄과 동선과 대기시간과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매일 점검한다. 둘째 재무, 기본적인 수입과 지출 구조를 이해하고 어디서 새는지를 본다. 셋째 인사, 채용·온보딩·평가·피드백으로 팀을 자라게 한다. 넷째 고객 경험, 환자 여정을 설계하고 컴플레인과 리뷰를 데이터로 다룬다. 다섯째 리스크, 의료법·노동법·의료분쟁의 가능성을 미리 본다. 이 다섯 영역을 임상 연차만으로 갖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학습과 훈련의 자리가 필요하다.
작은 병원일수록 원장의 어깨는 무겁다. 진료, 인사, 재무, 마케팅, 리스크, 직원 갈등까지 모두 떠안는다. 어느 순간 병원도, 원장도 같이 지친다.
이제는 진료실 안의 리더와 진료실 밖의 리더가 역할을 나누어야 할 때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가 환자를 책임진다면, 진료실 밖에서는 병원이라는 조직 전체를 책임지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오래 일한 사람’을 자동으로 앉히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오래 일한 직원과, 병원을 운영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르다.

정 경
·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 협회장
· 바스제로 맵 대표
· 전문면접관 · 병원 조직 컨설턴트
24년간 물리치료사로 병원 현장을 지켰다. 직원이었고, 팀장이었고, 중간관리자였다. 중간관리자는 단순하게 연차가 쌓여서 되는 자리가 아니라 병원의 경영파트너로 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 협회장으로 병원 중간관리자의 성장을 지원하며, 전문면접관·CS 컨설턴트로 의료기관과 기업을 대상으로 강의와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