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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민 푸드애널리스트의 건강한 맛집] 황평집volume.71 2026. 6. 4. 09:38

세월을 고아낸 한 그릇 ‘황평집’
기교를 넘어선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노포의 묵직함에 대하여
초여름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서울의 오래된 도심 속 골목길을 무겁게 감싸 안기 시작할 때, 미식가들의 감각은 본능적으로 계절의 깊은 맛을 탐색한다. 그 위대한 감동의 궤적을 따라, 쉼 없이 변화하는 서울 한복판에서 홀로 시간이 멈춘 듯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을지로의 한 노포로 향한다. 거친 삶의 숨결과 세월의 헤리티지가 깃든 그곳에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여름의 본질을 깨워줄 위대한 닭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여름의 시작 원기보양은 닭요리!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면 대지는 뜨거운 태양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인간의 신체는 급격한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쓰며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이때 우리 선조들이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찾았던 최고의 식재료가 바로 '닭'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닭 요리를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던 유래는 매우 깊은 역사적 맥락과 생활의 지혜에 기반하고 있다.
농경 사회였던 옛 한반도에서 닭은 마당을 자유롭게 노닐며 땅의 기운과 태양의 빛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의학의 정수를 담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닭고기에 대해 "성질이 따뜻하여 오장을 보하고, 갈증을 멈추게 하며, 비위(脾胃)를 튼튼하게 하여 기력을 돋운다"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인체는 체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반면, 도리어 내부의 장기는 찬 음식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쉽게 냉해지고 허약해진다. 선조들은 이처럼 겉은 뜨겁고 속은 차가워지는 음양(陰陽)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따뜻한 성질을 지닌 닭을 푹 고아내어 속을 데워주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를 발휘했다. 따라서 여름의 길목에서 마주하는 닭 요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다가올 계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살아갈 기운을 충전하는 숭고한 의식과도 같은 유래를 지닌다.


을지로의 터줏대감 황평집
수많은 고층 빌딩과 세련된 팝업스토어가 위치하는 서울의 중심부 하지만 충무로와 을지로의 이면으로 접어들면 여전히 쇠를 깎는 굉음과 묵직한 인쇄기 기름냄새가 자욱한 시간이 멈춘듯한 삶의 현장이 나타난다. 이 치열한 삶의 터전 한가운데서 무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이 있으니 바로 '황평집'이다. 수많은 식도락가들과 까다로운 미식가들이 여름철이 되면 이 오래된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황평집의 음식에는 요즘 유행하는 트렌디한 기교나 시각적인 화려함이 전혀 없다. 대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불을 지펴온 노포 특유의 압도적인 묵직함과 진정성이 공간과 맛 전체를 지배한다. 이곳을 대표하는 '닭곰탕'의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입안 가득 번지는 깊고 투명한 감칠맛에 사로잡히게 된다. 기름기를 완벽하게 걷어내어 맑고 담백한 육수는 지극히 깔끔하고 가벼운듯 하지만 목을 타고 넘어간 뒤 가슴 깊은 곳에 남는 뒷맛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하다. 잡내를 완벽히 지워내고 닭 본연의 고소한 풍미만을 정제해 낸 황평집의 요리는, 음식을 통해 영혼의 정화를 갈구하던 미식학자들의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큰 닭의 맛을 오롯이 느껴보자
황평집이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차별성은 바로 식재료의 대담한 선택과 이를 제어하는 독창적인 가공 방식에 있다. 대부분의 현대적인 삼계탕이나 닭 요리 전문점들이 단순히 부드러운 연한 식감만을 강조하기 위해 영계(雛鷄)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황평집은 육질이 단단하고 크기가 거대한 대계(大鷄), 즉 잘 자란 노계를 고집스럽게 선택한다.
식재료가 지닌 성숙도는 요리의 품격과 직관된다. 오랜 시간 대지의 기운을 받으며 자란 큰 닭은 어린 닭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깊고 진한 육향과 밀도 높은 풍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칫하면 거칠고 질겨질 수 있는 이 다루기 힘든 식재료를 황평집은 고유의 비법으로 다스린다. 완벽하게 삶아진 거대한 닭들은 건져지자마자 매장 한편에서 돌아가고 있는 커다란 대형 선풍기 앞으로 직행한다. 거센 선풍기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급격하게 식어가는 과정에서, 닭고기가 머금은 수분과 지방은 표면으로 팽팽하게 응축되며 마법 같은 변화를 일으킨다. 이 특별한 건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닭껍질은 입안에서 '꼬들꼬들'하면서도 찰지게 감기는 극한의 탄력을 획득하게 된다. 아삭하게 씹히는 동시에 쫀득하게 입안을 울리는 황평집의 닭껍질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식재료의 한계를 인간의 지혜로 승화시킨 미식의 절정이자 거부할 수 없는 최고의 별미라 할 수 있다.
뼈를 바르지 않아도 되는 닭요리들
황평집의 낮고 오래된 식탁에 마주 앉으면 문득 말할 수 없는 편안함과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 좋은 감각이 차오른다. 맑은 국물의 닭곰탕은 물론이고, 매콤새콤하게 버무려진 부드러운 닭무침에 이르기까지 손님이 직접 거친 뼈를 발라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주방 안쪽에서 오랜시간 합을 맞춘 정교한 손길을 거쳐 뼈는 완벽하게 해체되고, 먹기 좋게 결대로 찢어진 순수한 살코기만이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온다.
이러한 세심한 조리 방식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 전통 식문화와 양반가의 접빈(接賓) 예절에서,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음식상에는 뼈가 그대로 붙어 있는 요리를 올리지 않는 것이 엄격한 법도이자 최고의 배려였다. 음식을 섭취하는 귀빈이 손을 더럽히거나 입안에서 뼈를 뱉어내는 등 우아하지 못한 모습을 연출하지 않도록, 조리하는 이가 모든 수고로움을 미리 대신해 주는 깊은 환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황평집의 소박한 닭 요리들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조선 명문가의 품격 높은 접빈 철학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이는 내내 뼈를 고르는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오롯이 고기가 주는 순수한 질감과 육즙의 매혹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월을 간직한 노포가 손님에게 전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경의의 표현이다.
더위를 이겨내려고 애쓰기 보다는 잘 견디는 현명한 시기를 보내자!
현대인들은 다가오는 여름과 무더위를 마치 정복하고 타도해야 할 거대한 적처럼 대하곤 한다. 에어컨의 인공적인 냉기로 자연의 온도를 억누르고, 얼음을 띄운 찬 음료를 연신 들이키며 계절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황평집의 묵직한 나무 탁자에 앉아 땀을 흘려가며 뜨거운 국물 한 그릇을 온전히 비워내다 보면, 문득 삶과 계절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에 대해 깊은 성찰을 얻게 된다.
진정한 미식가란 계절을 거스르는 자가 아니라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조화를 찾는 자가 아닐까? 올여름은 다가오는 더위를 억지로 이겨내려고 애쓰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소진하기보다는, 자연이 주는 열기를 차분히 인정하고 그것을 유연하게 잘 견뎌내는 현명한 시기를 보내면 좋겠다. 뜨거운 국물 한 모금으로 몸 깊숙한 곳의 냉기를 몰아내고, 선풍기 바람에 꼬들해진 닭껍질을 씹으며 삶의 다채로운 질감을 음미해 보자. 그 안에서 우리는 여름을 이기는 법이 아닌, 여름과 함께 호흡하며 삶의 한 철을 현명하고 아름답게 통과하는 위대한 지혜를 얻을 것이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노포의 깊은 정성 한 그릇에 기대어 이 계절을 묵묵히 그리고 기분좋게 견뎌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송창민 푸드애널리스트푸드 애널리스트
ANA DRONE 맛집 칼럼 20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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