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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건축사의 Care-Full Space] 특별함과 보편의 공간, 시니어를 위한 공간은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아야 한다.ARTICLE 2025. 6. 4. 17:23
유엔(UN)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 14% 이상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고, 2018년에는 고령사회, 2024년 12월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이는 OECD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도달한 것으로, 사회적 환경과 제도 등에 대한 빠른 대비와 개선책이 요구되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 또한 고령층의 삶의 질 향상과 도시공간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해야 하며, 이번 칼럼에서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주거공간과 공공공간이 갖춰야 할 요소들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시니어의 삶의 주권은 집에서부터, 나의 의지대로 사는 공간
시니어 주거공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안전성'이다. 고령층은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서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로 인해 집안 내 사고 위험성이 증가한다. 실제로 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고령자의 상해사고 중 57%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며, 특히 90세 이상은 이 비율이 85%로 매우 높다. 따라서 시니어를 위한 주거공간 설계 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비상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안전 중심의 디자인이다.
[오시리아 VL라우어 고령자 친화 디자인 적용 요소 ©H-SLP 자료, 해안건축, 2025]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의 'VL라우어'는 이러한 기준을 충실히 구현한 사례다. ‘VL라우어’는 어르신들의 낙상 사고 예방을 위해 모든 세대와 공용 공간 바닥의 단차를 없애고, 욕실에는 미끄럼방지 타일과 함께 안전손잡이를 설치하였으며 집안 곳곳에 너스콜(응급 비상벨)을 설치하여 위급상황 시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침실과 거실의 동선 최적화를 위해 출입문을 추가 계획하였고, 세대 내부의 벽면은 곡선으로 처리하여 야간 이동 시 부딪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인테리어의 미적 고급화 요소로도 작용하였다. 하우스 키핑 서비스를 고려하여 세탁실은 현관과 가깝게 배치하였으며, 넉넉한 수납공간과 전 세대의 발코니 공간은 초기 기획단계부터 시니어의 라이프스타일과 니즈를 충분이 파악하여 세심하게 배려한 공간 디자인이다.
특정 집단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누구나’를 위한 공간으로
빠른 초고령사회의 진입은 우리 사회의 물리적 공간, 특히 공공 공간을 비롯한 도시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과연 '노인만을 위한' 공간 디자인이 최선일까?
실제로 어르신들은 '노인 전용'이라는 명시적인 라벨이나 디자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이는 노년층을 '무능하거나 의존적인 존재'로 보는 부정적인 사회적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를 위한 제품은 노인에게도 팔리지만, 노인을 위한 제품은 아무에게도 팔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노인을 위한 배려가 지나치게 강조된 ‘노인 전용 디자인’은 오히려 사용자들로부터 외면 받기 쉽다.
일례로 2013년 일본 유통업체 1위 이온(AEON)은 도쿄 에도가와시의 이온 카사이점을 GG몰(Grand Generation’s Mall)이라는 ‘노인 친화 점포’로 리뉴얼 하였다. 유통사의 시니어 비즈니스 시프트의 혁신적인 시도로 주목했던 사례였으나, 지난 23년 10월부터 GG몰은 사라지고 부모와 아이의 가족 타겟형으로 재개편 되었다. 시니어 전용 컨시어지는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노인층 대상의 문화여가 이벤트 홀은 현재 젊은층 대상의 서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는 노골적인 ‘노인 겨냥’이 실패 원인이라고 지적 받기도 하였다. [1]
[이온 GG몰(grand generation Mall) [출처: 경제저널 <시니어비즈니스> 2020년 12월호]] [1] 2023.10.30. 조선비즈 기사 내 인터뷰 내용 인용
통합과 세대공존을 지향하는 미래형 도시공간
따라서,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도시공간과 환경은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모든 세대가 함께 교류하고 활기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한 공간디자인 전략으로는 첫째, 안전성은 물론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여, ‘누구나’ 접근하고 이용하기 쉬운 공간 디자인으로 고령자가 사회의 자연스러운 구성원으로서 통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둘째, 기능성을 넘어 심미적 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젊고 감각적인' 디자인에 대한 노인들의 선호를 반영하여, '노인 전용'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공간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조성하여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고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홈 기술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고령자의 신체적·인지적 변화와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맞춤형 환경을 제공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음성 인식 제어 시스템, 자동 조명 및 온도 조절,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등은 고령자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환경을 제어하고 안전을 확보하면서 자율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준다.
최근 해안건축이 설계에 참여한 '구리갈매 실버스테이 시범사업'은 이러한 미래 지향적 접근의 모범 사례다. 시니어를 위한 세대 내에서부터 커뮤니티공간 및 인근지역의 생활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편리하고 안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동시에 청년, 신혼부부 등 다양한 연령층의 일반 세대 입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으로 초고령화 사회에서의 주거단지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구리갈매 실버스테이 시범사업 조감도 ©해안건축] 결론적으로, 시니어를 위한 공간은 특별함을 유지하되 지나치게 구별되지 않아야 한다. 고령자는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닌, 경험과 선택을 통해 삶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려는 주체적 존재다. 따라서 우리는 노년의 공간을 단순 ‘돌봄의 공간’이 아닌, ‘독립적인 생활의 지속성’과 ‘사회적 교류를 통한 관계의 확장성’을 담아낼 수 있는 장(場)으로 다뤄야 한다. 특히 최근 시니어 세대는 독립적 거주를 중요시하고, 다른 연령층의 세대와 연결 속에서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지속적인 사회적 교류를 통해 자율성을 실현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러한 흐름은 시니어를 위한 공간이 ‘개인’과 ‘공동체’를 유기적으로 매개해야 함을 의미하며, 물리적 공간계획을 넘어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운영방식까지 기획단계부터 치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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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의 도시가 활력을 잃고 늙지 않기 위해서는, 특정 연령층만을 위한 단절된 공간이 아닌, 모두의 이동과 머무름, 교류를 자연스럽게 허용하는 공간의 구축이 필요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그 해답이 될 수 있으며, 이는 단지 보편적 접근성의 확보가 아닌,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구조’로 개편해 나가는 건축적 방향성일 것이다. 시니어를 위한 공간은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공간이어야 하며, 모든 세대가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공존할 수 있는 공간 전략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글. 신문정 건축사해안건축 개발기획본부 (시니어레지던스 TFT 팀장)
신 문 정
해안건축 개발기획본부 (시니어레지던스 TFT 팀장) | 건축사
시니어레지던스 분야 실적
- 신사동 시니어레지던스 개발 (2024~)
- 부산 센텀 시니어레지던스 복합개발 (2024~)
- 한남동 하이엔드 시니어레지던스 (2023~)
- 대구 동인동 시니어레지던스 개발(2023~)
- 인천 루원시티 시니어레지던스개발(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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