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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체스키크롬로프카테고리 없음 2026. 6. 4. 05:11
동화 속의 도시, 체스키크롬로프 Český Krumlov
전편 프라하에 이어 후속편으로 체스키크롬로프를 소개한다. 체코의 남쪽 끝, 블타바 강이 S자로 휘감아 도는 동화 속 마을로 이동해 보자.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까다로운 '체스키크롬로프'라는 전통 마을이 있다.
프라하에서 버스로 세 시간 남짓, 창밖의 풍경이 완만한 구릉으로 바뀌더니 어느덧 비현실적인 16세기 중세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작은 도시로 붉은색 계열의 경사지붕과 뾰족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 안동의 하회마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하회마을도 이 곳처럼 낙동강이 유연하게 마을을 휘감으며 흐르는 형상이니 비교가 재미있다.





마을 전체가 동화책 속에서 '갑툭튀' 한 것 같은, 아름다운 중세풍의 경관 덕분에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 사랑받아 왔다.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일루셔니스트 (2006)와 아마데우스 (1984)가 대표적이다. 특히 거장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는 영화 속 18세기 비엔나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일부 활용되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 같아서,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나 판타지 영화의 단골 배경이 되곤 한다.
체스키크롬로프는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3세기 남 보헤미아의 비테크 가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고딕 양식의 성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마을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역사 도시의 보존과 전통 건축의 활용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 후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즐비한 체스키크롬로프 역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이 좁은 길에는 커피와 함께 식사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있고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많아 관광객들의 입과 눈을 즐겁게 한다. 때로는 답사 일행을 이탈해서 햇볕 좋은 강변 벤치에 홀로 앉아 게으름을 피우며 슬로우 라이프를 체험해 봐도 좋겠다. 에곤쉴레의 박물관인 아트센터 관람도 추천한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한 곳은 체스키크롬로프 성이다. 성의 타워에 오르자 끝없이 펼쳐진 테라코타 기와의 지붕들이 마치 붉은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인다. 마을을 완벽하게 감싸 안은 블타바 강의 물줄기는 이 요새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거대한 석조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이 도시가 선사하는 최고의 낭만이다. 특히 체스키크롬로프 성의 상궁(Upper Castle)은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천연 암반 위에 바로 세워진 것이 특징이며, 블타바 강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장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부분이다.



성에서 내려와 마을의 중심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으로 향하는 길은 길을 잃어도 좋은 미로였다. 파스텔톤의 건물들 마다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그려진 벽면들은 마치 연극 무대 세트장처럼 보여 신기하고 정교하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상점, 수공예품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나무 향기와 장인들의 솜씨는 빈티지와 어울어지며 인상적이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블타바 강변의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여행의 피로를 녹여준다. 강물을 따라 흐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이 마을의 배경음악이 되어주는 여유롭고 매력적인 마을이다. 여러 여행지를 다녀보았지만 다시 가고 싶은 1순위의 장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곳을 선택하고 싶다. 체스키크롬로프는 단순히 '예쁜 마을'을 넘어, 근현대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지켜낸 고집 있는 예술품 같다. 화려한 프라하가 소설이라면, 이곳은 한 편의 서정시와도 같은 곳이다.

강물은 S자로 굽어 돌며
마을의 허리를 감고 가는데
붉은 지붕들 사이로
시간은 중세의 성벽에 갇혀 있다
이발사의 다리 위에서
누군가 던진 동전 한 닢이
내 전생의 눈물인 것만 같아
나는 오래도록 강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성 비투스 성당의 종소리가
공중의 새들을 흔들어 깨울 때
내 안의 낡은 감옥 하나가
조금씩 문을 열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 낯선 길 위에서
이름 없는 풀꽃 하나와 눈을 맞추는 일
흐르는 강물에 내 젖은 그림자를
잠시 비추어 보는 일
세상의 끝 같은 이 고요한 마을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잃어버리고
다시 나를 찾아 길을 나선다
---- 문정희 作 체스키크롬로프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