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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옛 궁궐들을 찾아서 2 - 창경궁과 덕수궁 그리고 종묘ARTICLE 2025. 2. 4. 10:19
옛 궁궐들을 찾아서 2 - 창경궁과 덕수궁 그리고 종묘
지난 1월 칼럼에서는 경복궁과 창덕궁을 소개했고 2편으로 이어서 창경궁과 덕수궁, 더불어 종묘를 다루고자 한다. 강북에 보존되어있는 궁궐과 종묘는 서울을 역사 도시로 빛나게 하는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건축자원이자 우리네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창경궁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 옥천교 창건 이래 끊임없는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며 수난이 가장 많았던 궁궐이다. 왕실의 품격과 위상을 지켜왔던 창경궁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1907년 순종의 즉위 시절부터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즉위하자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겼고 이 일을 계기로 일제는 1909년 창경궁 내의 전각들을 헐어 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며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불운한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원지로 이용되다가 오랜 복원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창경궁이라는 이름도 되찾게 되었다. 식민지 국가의 궁궐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우거나 왕궁을 유원지로 전락시키는 일본의 정책은 무도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다. 기억해보면 창경원은 1970년대까지 줄곧 서울의 대표적 유원지로 이용되었고 능동의 ‘서울어린이대공원’이나 과천 의 ‘서울대공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나 역시, 부모님의 손을 잡고 희귀동물들을 신기한 시선으로 구경하거나 놀이기구를 즐겼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다. 특히 창경원의 밤벚꽃놀이는 70년대 낭만을 대표하는 단어 중에 하나다.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을 통과하면 옥천교를 넘어, 외전 영역으로는 동쪽의 명정문과 서쪽의 빈양문을 경계로 명정전·문정전·숭문당이 있으며, 내전 영역으로는 함인정· 경춘전· 환경전· 통명전· 양화당· 영춘헌· 집복헌 등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창덕궁에 속한 부용지 일대까지 아우르던 후원 영역에는 춘당지와 관덕정, 그리고 일제시대 때 세워진 식물원이 남아 있다.
왕실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에 창경궁에는 왕실 가족 사이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 왕후를 독살하려다 오히려 사약을 받은 곳이 취선당이고,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였던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불행한 죽음을 맞았던 곳은 선인문 안뜰이었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사연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곳이지만 흰 눈이 내리는 날에는 무심하게 쌓여가는 눈 속에 애달픈 사연의 역사도 함께 묻혀가는 듯하다.
덕수궁
덕수궁 조감도 덕수궁은 조선의 다른 궁궐들과는 다르게 전통과 근대가 만나는 장소다. 정릉동 행궁에서 출발하여 경운궁이 되었다가 덕수궁이 되기까지의 장구한 이야기가 숨을 쉬고 있고, 특히 고종의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 덕수궁은 명실 공히 '조선'의 국호를 바꾸고 선포한 '대한제국'의 황궁인 셈이다. 서구 문물 수용에 적극적이고 개방적 사고를 가진 고종은 궁궐 안에 르네상스 스타일의 서양 건축물을 세웠으며 전각 내에도 전화와 전등 같은 신문물을 설치했다. 덕수궁 석조전(현 대한제국 역사관)이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것은 새롭게 출발하는 대한제국이 서구의 근대국가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천명했음이다. 서관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의 정문은 대한문이다. 작년 쯤 전면의 월대 공사가 마무리되어 개방되었다. 서울시 심장부 세종대로 복잡한 고층빌딩의 도심에서 대한문을 통과하면 주파수가 다른 영역을 체험할 수 있다. 대한문은 현재에서 과거로 즉시 이동하는 관문과도 같다.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즉시 발걸음도 느려지고 녹음이 우거진 장소와 전통건축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다른 궁들도 마찬가지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한문은 특히 여러 수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현재 당당하게 덕수궁의 정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덕수궁을 입장하는 이들과 정동 산책자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안내한다. 대한문 옆길은 ‘광화문연가’의 노랫말에서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다. 이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왠지 이 풍경에는 연인들이 잘 어울린다. 이 길을 걸었던 커플 수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돌담을 따라 이어진다. 만추의 돌담길도 좋지만 비오는 날에는 우산 속의 작은 공간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 가는 연인들의 발걸음은 낭만적이다.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내의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 정전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1902년)에 창건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초기에는 2층 건물이었으나 화재로 손실 후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저녁 무렵의 햇볕을 받으며 거친 화강석으로 포장된 넓은 마당에는 벼슬의 서열에 따라 위치를 알리는 표석들이 남아 침묵하며 옛 역사를 증언하듯 존재한다.
덕수궁 즉조당과 준명당 덕수궁 석어당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고궁 산책은 반드시 화창한 날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만 버리면 비 오는 풍경도 새로운 체험을 선물한다. 함녕전을 둘러쌓은 담장의 기와에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감상하며 젖은 비포장 보행로를 천천히 걷자니 빗방울로 인해 바닥에서 튀어 올라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묻어나는 흙조차 정겹다. 툭툭 털고 더 걸으면 석어당을 앞에 두고 즉조당과 준명당이 연결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담장 너머 배경에는 고층의 현대건축들이 마치 호위병처럼 서 있어서 현대와 전통이 대비를 이룬다.
눈에 띄는 색상의 우산을 쓰고 산책하는 관광객들이 고궁을 배경으로 어우러지며 비 내리는 풍경이 시선에 포착된다. 잔디밭은 퇴색한 채 초록의 봄을 꿈꾸며 동면 중이다. 석조전 전면에 있는 오래된 배롱나무는 지난 여름, 온통 붉은 꽃으로 자신을 치장하여 강렬한 색상을 자랑했을 터인데 지금은 안쓰럽게 알몸으로 추위를 견디는 중이다.
덕수궁 중명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후미진 골목 깊숙한 곳에 고독하게 서 있는 건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서양식으로 지어진 2층의 근대건축물인 중명전이다. 원래는 덕수궁 내의 건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로를 내면서 현재는 궁궐 밖으로 나앉은 형국이 되었다. 구한말 조선의 운명이 기울던 시기에 대한제국의 황제가 머물며 국제외교사의 주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광명이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의미를 가진 중명전은 현재, 역사전시관으로 사용되는데 구한말 조선의 비극적인 을사늑약과 관련된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근대화의 상징인 경운궁이 1904년 큰 화재로 소실 후 고종은 그동안 황실도서관으로 사용되던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기고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 장소로 활용했다. 서양식 고전주의 양식의 붉은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로 근대건축 고종의 개혁 정책으로 근대문물 수용 의지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1905년 군사 압박에 의한 한일협상조약 불평등 조약은 고종의 서명도 없는 ‘을사늑약’이었지만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진 이 후 치욕의 현장으로 기억된다. 때마침 올해가 을사년이니 120년 전의 사건인 셈이다. 1907년 고종은 세 명의 신하를 불러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네덜란드 헤이그로 친서와 함께 특사를 파견하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고 그것을 빌미로 고종 폐위되는 운명을 맞는다. 국가의 대외적 주권을 상실한 사건과 시련 속에서도 활로를 모색하려 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오랜 세월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중명전의 뜨락에서 고독했던 고종의 탄식을 위로하듯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종묘
서울 종묘 서울 종묘 지금까지 소개한 4개의 궁궐 건축이 살아있는 자의 공간이었다면 종묘는 망자를 위한 공간이다. 종로구에 있는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유교적 왕실 제례 건축으로서 도심 내 우거진 숲 속에 들어앉은 건축물의 배치와 디자인도 뛰어나고 보존 상태도 우수하다. 한국의 건축가로서 외국 건축가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한국 전통건축 1순위다. 14세기 말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7세기 초에 중건 후 조금씩 증 개축되며 현재에 이르렀다.
종묘 정전은 위엄이 느껴지는 장대한 크기의 기와지붕과 장대한 정전의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구성되어 볼수록 감동을 자아낸다. 망자를 위한 침묵의 공간에 서면 그 장엄함이 자연스럽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스스로 되묻고 성찰한 후, 거친 박석 포장의 길을 되돌아 나올 때는 가슴에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태조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아 한양으로 도읍지를 정한 후에 우선으로 건립했다고 하니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근본을 종묘와 사직에 두었음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의 상징이며 서울의 건축적 유산이자 자랑이다.
서울 종묘 마치며....
자연지세에 잘 순응한 궁궐 배치 속에서 전통 건축물과 정원의 조화로운 풍경은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한 폭의 수채화로 마음속에 그려진다. 그동안 무한 질주의 경쟁과 분주한 삶의 반복으로 지치고 방전된 현대인들의 심신은 고궁 속 치유 환경 속에서 회복되고 다시 충전된다. 특히 동안거(冬安居)의 계절을 보내는 동안 몸매를 드러낸 겨울나무와 퇴색한 잔디를 밟으며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자에게는 현대적인 빌딩으로 가득 찬 서울 도심에서도 풍부한 감성을 찾을 수 있다.
이상의 고궁 답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건축가의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도시, 서울은 자랑스럽다. 600년을 훌쩍 넘은 역사가 대서사로 숨 쉬는 도시다. 옛 궁궐들에서 발견되는 아름답고 전통적인 건축미를 다양한 컨텐츠로 개발하여 한국의 새로운 문화로 재창조하는 것도 미래를 견인하는 과제 중 하나다. 이러한 궁궐 건축의 활용 가치는 물리적인 유형의 자산일 뿐 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새로운 해석과 가치의 재발견을 통하여 무형자산으로도 무한 확장될 수 있다. 이렇듯 옛 궁궐들과 종묘는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자연과 어우러진 조화로운 전통 건축과 조경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큰 자부심을 얻는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ARTI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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