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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옛 궁궐들을 찾아서 1 - 경복궁과 창덕궁ARTICLE 2025. 1. 5. 15:21
옛 궁궐들을 찾아서 1 - 경복궁과 창덕궁
새해가 밝았다. 정초에는 민속 명절이 있는 이유로 전통 건축이 생각나고 이따금씩 서울에 보석처럼 남아있는 옛 궁궐들을 가보고 싶어진다. 금회에는 경복궁과 창덕궁을 소개하고 다음 회에 창경궁과 종묘, 덕수궁을 다루고자 한다.
뜬금없지만 몇 년 전에 사무실을 이전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그 당시, 대학로 초입, 이화동에서 40여 년 간 운영하던 회사를 옮기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대표직을 맡고 있던 나는 임직원들이 미래 비전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도약의 터전을 찾아보려고 여러 장소를 물색했다. 서울의 강동, 강서, 강남지역을 발품을 팔아가며 폭넓게 기웃거려 보았지만 결국 역사와 사연이 켜켜이 쌓여있고 대한민국 수도의 심장부인 태평로 (현 세종대로) 인근으로 결정했다. 강북의 4 대문 내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 만으로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중요한 장소이며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북의 도심은 내사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과 외사산(삼각산, 덕양산, 관악산, 아차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산을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한양도성과 중심에 위치한 남산 역시 한강과 더불어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강한 랜드마크라서 이 곳에 자리를 잡기를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강북의 지형은 평지도 있지만 언덕과 경사진 땅도 많아서 산을 배경으로 경관이 독특하고 배치는 자유롭다.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진 궁궐과 민가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근대화의 과정을 겪으며 파괴되기도, 난개발이 되기도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의 빠른 경제성장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회적 단면이기도 하다. 특히 서울 강북은 조선시대부터 반만년의 역사가 누적된 곳이라서 오래된 건물과 역사적인 장소들이 많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강북을 둘러싼 한양도성을 비롯하여 경복궁 같은 고궁들이 남아 옛 궁궐 건축을 접할 수 있고 북촌 일대에는 전통 가옥들이 도시 속에 현대건축과 공존하고 있다.
서울을 세계적인 역사 도시라고 한다면 한양도성 안에 존치하는 역사적인 건축물 덕분이기도 하다. 600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 시절, 현 경복궁 터를 중심으로 새 도읍지로 정하기까지 태조와 정도전, 무학대사에 얽힌 스토리는 조선왕조실록으로부터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다.
경복궁
현재 서울의 역사는 조선의 건국으로 출발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천도를 추진하여 1394년 8월에 한양을 조선의 수도로 정했다. 경복궁은 천도 직후부터 건축되었고 조선의 정궁이었으니 많은 궁들 중에 중심이며 으뜸인 셈이다. 정사를 보는 근정전, 침전, 후원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경복궁의 건축물 역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특히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본은 궁궐, 종묘와 사직, 도성의 기본구조와 형태를 철저히 파괴하기 시작했다. 근정전 앞에 석조건물인 조선총독부 청사를 새로 건축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신을 훼손시키는 시기도 있었으니 현재까지 조금씩 원형을 복원 해가는 경복궁을 보노라면 눈물겹도록 애잔하기도, 다행스럽기도 하다.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이다. 광화(光化)는 왕의 덕이 햇빛처럼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다. 이름과는 다르게 이리저리 옮겨지고 불타고 복원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지금은 중건되어 당당하게 남문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한성의 주산인 백악을 배경으로 잘 어울리며 시민들에게 전면 광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 광장 역시, 많은 변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현재 광화문광장은 그동안 세종대로와 함께 역사성과 국가 상징성을 살리려는 노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다. 이 곳은 한양천도 이 후 육조거리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모두 품고 차곡차곡 쌓여져 이어져 오고 있다. 근대 이후,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함께 해온 이 장소는 2002 월드컵 때는 붉은 악마들이 군집하여 응원하고 세월호 사고와 국정농단 때는 촛불집회의 시민들이 역사를 만들어 왔다. 현재는 세종대왕 동상까지 더해져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는 시민의 보행광장, 시민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 공간으로 친근하게 변신하고 있다.
홍위병이 지키는 광화문으로 입장하여 흥례문과 근정문을 지나면 왕이 정사를 보던 근정전이 위엄을 지니고 맞이한다. 경복궁 내, 근정전 앞의 위요된 광장에 서면 과거의 시간으로 우리는 단번에 이동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이제 경복궁의 뜰을 산책해 보자. 조선 후기 연회 장소로 이용된 궁궐 건물로 경회루가 있다. 잔잔한 수면 위에 자리 잡은 경회루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 건물이다. 연꽃이 피어난 연못가의 벤치 주변에는 나처럼 바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관광객들이 분주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뒤쪽 후원으로 이동하면 소박한 연못 중앙에 향원정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향원정 역시 백악을 배경 삼아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은 역사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사연들이 쏟아지는 눈과 함께 소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로 창건된 대규모의 경복궁은 오늘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창덕궁
창덕궁은 140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은 평지여서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 축을 가진 반면, 창덕궁은 경사를 따라 건물들을 자유롭게 배치했고 비정형적 조형미가 아름답다. 따라서 경복궁이 형처럼 근엄하고 엄격하다면 창덕궁은 아우처럼 친근하고 다정하다.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 이라 불렀다.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 인정문, 숙장문으로 이어지는 사다리꼴의 공간이 나온다. 당시 건축가 박자청이 직사각형으로 만들라는 태종의 지시를 어기고 자연에 순응하는 배치를 위해 사다리꼴로 변형했다는 설도 있다. 사실이라면 건축가의 자존심을 왕에게도 굽히지 않았던 대단한 선배님이다. 이 곳을 지나면 선전정과 희정당이 나온다.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과 수시로 만나 나랏일을 논의하던 편전이다. 더 오르면 후원으로 가기 전 창경궁에 인접한 승화루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세자의 전용 도서실로서 세련된 조형과 여러 동을 연결한 난간의 독특한 디테일을 볼 수 있으며 당시로서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한때 일제는 조선 왕실을 감시하고 탄압할 목적으로 승화루를 창덕궁경찰서로 활용하기도 했다.
창덕궁은 1405년에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은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 축을 가진 반면, 창덕궁은 경사를 따라 건물들을 자유롭게 배치했고 비정형적 조형미가 아름답다. 함박눈이 내린 1월, 창덕궁 보춘정 앞에서 시공간을 과거로 옮긴 방문객들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새하얀 감성에 젖는다.
창덕궁 후원으로 넘어가면 비원(秘苑)이라 부르는 정원을 답사할 후 있다. 이 곳에 부용정, 주합루, 관람정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정자와 수목, 괴석, 연못 등이 자연과 어울려 조화롭게 배치되어 한국정원의 정수로 꼽힌다.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 위에 열십자 모양의 부용정이 소박한 자태로 두 발을 부용지에 담그고 있다.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안내자는 설명한다. 가을을 맞아 수목들은 울긋불긋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인근의 연경당은 조선 후기 사대부 주거 공간으로 상류 주택으로서 공간 배치가 빼어나며 이른바 99칸 집으로도 불린다. 연경당 마당에 수목의 그림자가 집주인처럼 깊이 들어서있다. 창덕궁의 후정은 말 그대로 비밀스러운 정원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내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자연과 조화하는 창덕궁의 건축물과 조경에는 선조들의 예술적 안목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누구나 감탄하고 또 매료된다. 시나브로 창덕궁 담장에 겨울이 오고 있다. 나무들은 지난여름, 푸르른 녹음을 바닥으로 내려놓고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오늘도 겨울 햇살이 남아있는 사고석 담장 길을 따라 산책하는 행인들의 발걸음은 분주하기도 한가롭기도 하다.
(2편에서 계속...)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ARTI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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