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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의 힐링여행]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volume.47 2024. 6. 1. 03:07
신성한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
'신성한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이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피렌체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 3분 거리에 위치한 피렌체 역 이름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인 것은 이 성당이 오래전부터 피렌체의 관문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성당은 도미니크회의 성당 중 최대 규모로 1278년 착공해 1350년 완공됐다. 흰색과 짙은 초록색 대리석을 번갈아 끼워 넣은 파사드(건물 정면)는 100년이 지난 1456년 피렌체의 거부인 루첼라이 가문의 지원을 받아 공사가 시작됐다.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추앙받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설계를 맡아 1470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명성에 비해 겉모습의 첫 인상은 참으로 밋밋하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건너뛴다면 피렌체의 보석을 그냥 지나친 셈이 될 것이다.
알베르티는 금융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알베르티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24살에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음악, 수학, 희곡, 그림, 건축을 섭렵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던 그는 두 개의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를 완성한 브루넬레스키에게 헌정한 ‘회화론’이 그 하나이다. 여기서 그는 2차원 화면 위에서 3차원 공간을 보여 주기 위한 수학적인 설명과 함께 회화와 조각에서 어떻게 이를 구현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다른 책은 최초로 건축이론을 정립한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참고로 쓴 ‘건축론’으로 조화와 균형, 비례의 규칙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런 배경 설명만으로 알베르티가 구조물을 어떤 식으로 설계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에는 군더더기 없는 형태만으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알베르티의 건축 철학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파사드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이런 조화로운 배치를 통해 알베르티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장식성이 있는 독특한 화면을 만들었다. 은은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성당을 미켈란젤로는 “나의 신부여!”라고 부르며 특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겉보기와 달리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에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주요 작품들이 그득해서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조토의 ‘십자가형’,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와 성 요한의 생애’, 보티첼리의 ‘ 동방박사의 경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사초(1401~1428)의 ‘성 삼위일체’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수학적 선원근법을 엄밀하게 적용해 르네상스 회화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토스카나 지방의 산 조반니 출생인 마사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피렌체와 로마에서 후원자들의 가족 예배당 프레스코화를 제작하거나 성당의 의뢰로 제단화를 그리던 그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건축에서 브루넬레스키, 조각의 도나텔로와 함께 회화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교회당의 왼쪽 벽 중간쯤에 그려져 있는 ‘성 삼위일체’는 완숙한 원근법의 정수를 보여 준다. 마사초는 착시 현상을 이용한 중앙 원근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2차원의 평면이지만 물체는 3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이 보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자연광의 효과까지 계산에 넣어 평면에 그렸음에도 가장 안쪽처럼 보이는 천장의 아치 모양이 마치 벽을 뚫어 놓은 듯 착시를 일으킨다.
기품이 넘치는 부드러운 색조에 화면 전체는 완전한 대칭을 이루며 가운데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를 소실점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뒤에 서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빛이 퍼져 나가는 효과를 냈다. 그림 속 건물 안쪽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발아래에는 마리아와 요한이 있다. 그림 하단 양쪽(화면 속 예배당 바깥쪽)에는 이 그림을 주문하고 기증한 도메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이들은 마리아와 요한이 입은 것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마사초는 당시 이탈리아 남자의 평균 키 162㎝에 맞춰 눈높이(약 153㎝)를 기준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 높이가 기증자 부부가 무릎을 꿇고 있는 면과 일치한다. 그림 아래쪽에는 해골이 누워 있는 석관이 그려져 있다. 해골 위에는 이탈리아어로 문장이 적혀있는데 해석하면 이런 뜻이라고 한다.
‘나는 과거에 현재의 당신이었으며, 당신 또한 나와 같이 되리니.’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한가운데 걸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형’과 맞은편 중앙 제단 왼편 벽에 걸린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도 눈여겨볼 거리다. 특히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는 원래 조각가로 출발했던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도나텔로의 산타크로체 십자가와 대비되게 이 십자가는 고통스럽게 떠난 인간 예수의 모습이 절절하다.
발길을 붙잡는 또 다른 작품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94)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다. 질서와 균형이 돋보이고 우아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귀족들로부터 부름을 받을 정도로 인기 절정의 화가였다. 메디치가와 사돈 관계인 토르나부오니 집안에서는 당대 최고의 인기 화가에게 예배당을 장식할 벽화를 외뢰했다. 기를란다요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을, 오른쪽에는 마리아의 일생을, 그리고 왼쪽에는 세례 요한의 일생을 그려 넣었다. 우아한 선과 부드러운 색감으로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뛰어났던 기를란다요의 손끝을 통해 완성된 프레스코화에는 르네상스 여성들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 있다.
최근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다시 찾았을 때는 7월 첫째 토요일이었는데 마침 성당 초기의 프레스코화를 매달 첫 번째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개하고 있었던 덕분에 전에 보지 못했던 14세기~15세기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유화로 된 대형 작품 뒤편 벽에 그려진 초기 르네상스 프레스코화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발견됐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600년 동안 그림 뒤에 숨겨져 있던 프레스코화의 부드러운 색감과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보면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중앙 제단 왼쪽으로 나가면 수도원으로 이어진다. 수도원의 조용한 정원과 회랑, 그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도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어 분위기가 좋고 멋지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에서는 오래전부터 장미 화장수, 수분크림, 비누 등을 만들어 수도원 자립금으로 사용해 왔는데 요즘은 인기가 좋아 명품으로 대우받으며 많은 나라에 수출도 한다. 성당 광장을 가로질러 오른쪽 골목에 판매점이 있다.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굳이 사지 않더라도 구경 삼아 가볼만하다.
글 · 사진.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문화예술 전문 온라인 매체 <컬처램프> 발행인.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 제2대학에서 언론학 박사과정(D.E.A.)을 마쳤다. 30년 일간지 기자 경력을 살려 문화와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 차례에 걸친 프랑스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쓴 프랑스 사회비평서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2009),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아틀리에, 풍경』(2014), 유럽 유수의 미술관 건축을 소개하는 『미술관의 탄생』(201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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