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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Focus] 헬스케어 대전환 시대, 우리의 미래를 세계에 묻다 - 2 (1)volume.47 2024. 6. 3. 09:09
The 15th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4 - 2
헬스케어 대전환 시대, 우리의 미래를 세계에 묻다 - 2Posing Our Future to the Global Hospital Landscape in the Era of Great Healthcare Transformation
이번 기사는 지난달에 게재된 ‘2024 Korea Healthcare Congress’의 ‘헬스케어 대전환 시대, 우리의 미래를 세계에 묻다-Posing Our Future to the Global Hospital Landscape in the Era of Great Healthcare Transformation’의 두 번째 기사로, 지난 4월 12일, 분과발표 16의 주제였던 ‘병원 건축의 새로운 경향(The New Trends in Hospital Architecture)’을 심도 있게 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발표는 이승훈(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병원장, 한국)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이현진(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 부교수, 한국)과 정지연(㈜브리크컴퍼니 대표, 한국), 박혁수(㈜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바이오헬스본부 본부장, 한국)가 연사로 나섰다. 먼저 이현진(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 부교수, 한국)은 ‘안전한 병원 vs 지속가능한 치유 환경(Safe Hospital vs. Healing Space Design)’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으며, 정지연(㈜브리크컴퍼니 대표, 한국)은 ‘웰니스 시대의 공간 디자인(Space Design in the Wellness Era)’은 무엇인지, 제3자의 입장에서 해석한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혁수(㈜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바이오헬스본부 본부장, 한국)는 ‘건축가가 만드는 미래 병원(The Future Hospital by Architects)’을 주제로,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대해 3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대표적인 병원 건축 프로젝트를 사례로 들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취재. 박하나 편집장
1.
안전한병원 vs 지속가능한 치유 환경
Safe Hospital vs. Healing Space Design
_ 이현진 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 교수
『건양대학교는 원래 건축학과와 인테리어학과가 있었으며, ‘앞으로 비전 있는 의료 공간의 전문가를 양성’하고자 두 학과를 합쳐 의료공간디자인학과로 개편했다. 그래서 지금은 건축 설계뿐만이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공학까지 넓혀 교육하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의료공간디자인학과가 사실 전국의 유일한 학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를 특화하다 보니 ‘일반 건축뿐만이 아니라 병원 건축에 대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더 배출할 수 있을까?’라는 취지로 교육하고 있다.
건축은, 건축법 시행령에서 용도별 건축물의 종류를 27가지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주거부터 시작해서 근린생활시설이라고 하는 각종 편의점, 미용원, 목욕탕, 세탁소, 도서관, 은행 등 모두가 잘 아는 상가부터 문화 및 집회시설, 종교시설, 판매시설, 운동시설, 업무시설, 숙박시설 등 다양한 분야가 건축을 아우르고 있다. 그만큼 하나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데 굉장히 큰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병원이라는 곳은, 건축에서 모든 용도의 공간을 아주 작지만, 전부 아우르면서 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병원을 과거의 작은 사회 또는 작은 도시라고 얘기할 만큼, 포괄적인 기능과 삶을 담아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병원은 병실이나 외래진료부, 병동부, 공급부, 관리부, 교육 연구부, 게다가 부대 시설까지 들어오면서 매우 럭셔리한 곳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이에 우리나라 병원이 지금까지 어떤 흐름으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안전한 병원과 지속가능한 치유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기능적이고, 가장 효율적인 공간으로 디자인했던 게 초기 병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좋은 병원은,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디자인으로, ‘환자를 위해서 기능을 타협하면 안 된다’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펑셔널리즘이 성했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과 의학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장비도 많이 발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건축이 이러한 부분들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앞서 코로나처럼 많은 질병들의 변화 또 새로운 어떤 신종의 병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는 이에 대응하는 시설을 만드느라고 굉장히 분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기술적인 발전에 따라서 병원은 굉장히 플렉시블한, 다시 말해서 이렇게도 사용하고, 저렇게도 쓸 수 있는 오픈형 공간이 병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굉장히 하드한 부분, 다시 말해서 움직일 수 없는 구조라든가, 설비 부분들은 픽스해놓고, 그렇지 않은 소프트한 시설들은 조금 가변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테크놀로지에 대응하는 오픈형의 유니버셜 모듈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의 정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들어 언급되고 있는 치유 환경(healing environment)의 2단계가 아닐지 생각한다.
특히 2003년에는 사스(SARS), 2009년에 신종 인플루엔자(H1N1 influenza), 2015년에 메르스(MERS), 2019년에 코비드(COVID) 등의 이슈들이 나왔던 시기에 처음 미국에서도 병원 건축에 있어서 변화를 주었는데, 우리는 이것보다는 한 템포 늦게 따라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이러한 치유 환경(healing environment)은 처음 시작할 당시에, 환자 중심의 치유 환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몸담고 있는 의료진이나 스태프들을 위한 치유 환경의 중요성도 굉장히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2000년 초반부터 시작해서 2019년도까지는 대형 병원들에 있어서의 어떤 로비, 공용 공간이 환영하는 공간인 반면, 뒤에 숨어 있어 환자들이 가지 못하고 의료진이나 관리하는 이들만 이동하는 물품의 동선이나 의료진의 동선은 아주 타이트한 상황이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과연 앞으로의 미래 병원은 어떤 병원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키워드를 제시했을 때, 전문가들은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EVIDENCE-BASED DESIGN)이라고 해서 근거에 입각한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또 지금으로는 병원 건축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건축, 모든 사회 분야에서 지속가능한(서스테이너블한 sustainable) 요구들을 수용해야 되지만, 병원 건축은 아직까지도 이 지속가능에 다가가기 참 어려운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사스나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 등 계속 새로운 신종 감염병을 겪으면서 환자는 침대 하나와 TV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차가운 SGP 판넬의 병실에 머무르게 됐다. 이는 메르스 이후 2017년에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한 환자가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이 1인실 같은 경우에는 10제곱미터, 그리고 음압격리 병실 같은 경우에는 15제곱미터로 그나마 확대된 면적이었다. 특히 환자들이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는 병실은 감염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바닥, 벽, 천장이 전부 SGP 판넬과 내화학성 살균에 조금 유리하다고 얘기하며 수술실에나 있을 법한 재료들이 병실로, 환자의 주거 환경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현재 긴급 치료 병상에 관여하면서 이런 환경들에 대한 니즈를 ‘지금 어떻게 가야 될지’에 대해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그중 환자가 유일하게 외부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은 기밀성을 확보해야 된다며, 창문 하나 열 수 없는 공간이 대부분이다. 또한 계속해서 증축하고 리모델링하면서 발생하는 음압을 만들기 위한 공조실이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병실 옆에 또 다른 병실을 할애해서 공조기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의료진들도 굉장히 피곤할 것으로 생각하고, 또 환자들 역시 너무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만큼 감옥 같은 병실을 우리는 많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병원이나 의료에서도 “First, Do No Harm(우선 해를 입히지 마라)”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First, Do No Harm”은 시설이나 환경, 공간이 환자들에게 또는 의료진들에게, 거기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된다는 뜻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 리서치(EVIDENCE-BASED DESIGN Research)를 들 수 있는데, “물리적인 환경이 건강과 치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미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 그만큼 이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이 병원 설계에 반영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건축이라는 게 병원이면 병원, 주거면 주거, 학교면 학교라는 고유의 기능을 토대로 디자인해야 하지만, 많은 건축가가 주관적인 어떤 경험이나 철학으로 설계를 진행하고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런데 병원 같은 경우에는 소수의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과 많은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근거에 입각한 디자인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은 에비던스 베이스드 메디컬에서 의료에 대한 부분들이 어떤 한 의사의 경험이나, 한 건축가의 경험에 의한 게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로 가야 하는 리서치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런 리서치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리서치를 바탕으로 병원 설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국내는 이런 흐름들을 진작에 건축가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용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한국의 병원 건축이 미국에서 진행했던 연구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적용하기에는 그 시스템과 문화적인 측면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클라이언트가 담당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미국에서는 감염이나 낙상, 의료 실수, 환자 만족도, 통증, 입원 기간 등 어떤 효율성에 입각해서 다양한 연구들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연구들은 병원을 건축하는 이들뿐만이 아니라 의료진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서 매 설계할 때마다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 있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병원의 데이터 역시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POE(거주 후 평가의 약어로서, 건축물이 완공된 후 거주자의 입장에서 사용 환경의 질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것)가 되어야 한다. 만들어놓은 병원에서 이용자들의 니즈나 평가들이 쌓이고 쌓여서 연구 데이터가 되는 것인데, 이런 데이터들을 만들기가 참 어려운 실정이다. 나조차도 이런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협조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아직까지는 한국형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현재 한국 의료복지건축학회에서 많은 전문가와 교수들이 한국형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을 만들어보고자 논의하고 있다. 이에 여러 디자이너나 건축가, 병원 시설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을 교육해서 같이 프로젝트 할 수 있는 부분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이 적용된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소음(NOISE)이다. WHO에서는 병원의 소음 지침을 주간에는 35데시벨, 야간에는 30데시벨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 5년 전에 건양대학교 병원의 병실에다 소음 측정기를 들고 가서 ‘우리 병원이 얼마나 소음에 영향을 받고 있을까?’를 측정해 봤더니, 45~50 정도의 데시벨이 나왔다. 이는 굉장히 큰 기계가 돌아가는 정도의 소음이다. 대부분의 병원이 많게는 60데시벨까지 소음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 소음으로 인한 영향을 살펴보면, 유아의 산소 포화도 감소, 혈압상승, 호흡수를 높임, 환자 수면의 질 악화, 환자 정신건강의 악화, 직원의 업무 스트레스 증가, 직원의 긴장과 피로도 증가, 직원과 환자 간 소통의 어려움 등이 있었다. 이에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 연구를 통해 천장 타일 설치, 소음이 흡수된 미끄럼 방지 병실 바닥재 사용, 그리고 심지어 모 병원에서는 소음 측정 장치를 설치해 소음이 커지다 싶으면 빨간불이 들어와 각자 소음을 낮출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노력들을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노력으로 환자 수면의 질이 10점 만점 기준으로 4.9에서 7.3까지 향상되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우리가 병원에서 보통 쓰고 있는 바닥재는 비닐 시트다. 병원의 상황과 역량에 따라 고급 재료를 쓰는 곳도 있지만, 해외 병원에서 주로 쓰는 바닥재는 카펫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카펫 문화가 아니어서 외국에서 쓰는 바닥 카펫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일본 병원에 방문할 당시 공용 부분에는 바닥 카펫이 사용된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이 미국형 에비던스 베이스 디자인 리서치를 우리가 다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음은 천장형 리프트 설치다. 병실에 보조장치의 설치나 행동 방식의 변경, 병실 디자인의 개선을 통해 근무자의 허리부상이 경감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천장형 리프트를 설치한 시설은 설치 후 일 년 동안 전년도에 비해 직원의 부상에 따른 지급요청 비용이 70% 감소되었고, 18일간의 근무일 손실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천장형 리프트가 없는 시설에서는 부상에 따른 지급요청 비용이 241%나 증가하였고, 전년도와 비교해 499일간의 추가 근로가 필요했다(Miller 등 2006). 또한 의료진의 부상(환자를 들거나 이동하면서 발생되는 근골격계 부상을 줄임)을 감소시키고, 또 의료진의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만큼 앞으로 이런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을 수용하는 병원은,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은 병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6인 병실에서 4인 병실로 줄어든 것이 굉장히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앞으로 4인실의 문화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이쯤에서 한번 해봐야 할 것이다. 연구 결과에서는 다인실과 1인실로 놓고 봤을 때 감염에 대한 문제라든가, 의료 실수에 대한 문제, 낙상에 대한 문제, 그리고 만족도에 대한 문제, 환자를 관찰하는 것에 대한 문제, 환자와 어떤 대화를 하는 부분들까지도 1인실이 굉장히 만족도도 높고, 감염 역시 좋은 성과를 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수가나 의료 체계의 구조 때문에 1인실로 완전히 바꾸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각종 감염병을 겪으면서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꾸준한 논의가 필요하다. 더욱이 이제는 멀티룸과 싱글룸의 관계성을 좀 좁혀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7년에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기존의 6인 병실을 4인 병실로 줄이면서, 병원이 얼마나 많은 병상을 손실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꽤 많이 손실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부족한 병상을 더 확충하기 위해서 병원은 증축이라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이런 부분을 놓고 봤을 때, 우리 병원의 구조가 병실 하나를 줄이거나 늘리는 것들이 쉬운 환경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건강한 또는 지속 가능한 의료 환경을 위해서는 조금씩 싱글룸 쪽으로 가야 되는 방향들을 잡아야 할 것이다.
다인실에는 물론 다양한 장점들도 가지고 있다. 프라이버시도 중요하지만, 또 옆에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학부 시절 교수님께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문화의 변화 또 흐름의 변화에 따라서 우리 한국도 비용(코스트 Cost)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프라이빗한 부분들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이 다인실은 프라이버시 침해나 감염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불평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먼저 온 사람이 창가에 면해 있고, 다른 사람들은 창문이 전혀 없는 공간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불평등에 대한 부분들이 많다. 앞으로 소개되겠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다인실의 경우에도 개인이 창을 가질 수 있는 구조의 환경들을 계속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현재 1인실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국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 보편적으로 국내에서 하고 있는 1인실의 상태가 의료법에서는 10제곱미터라고 규정을 하고 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10제곱미터보다 훨씬 넓다. 그 이유는 언제 이 1인실이 다인실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하기 위해서 일단 크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중간에 가벽을 두면 나중에 다인실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병실을 디자인할 때 낙상을 줄이고, 감염을 줄이고, 관찰을 늘리고, 의료 실수를 줄이고, 소음을 줄일 수 있는 환경들을 위한 병실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한다.
한 연구에서, 환자가 벽을 보는 병실과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병실을 비교했을 때, 자연을 바라보고 있는 병실에서 진통제를 요구하는 횟수나 재원율이 낮아진다고 보고 되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은 네모 박스형의 구조다. 그래서 창문은 동향과 서향, 남향과 북향 중 어느 한 곳만 바라볼 수 있게 설치되었다. 사실 1층에 병실을 배치하는 경우가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다. 해외에서는 1층이나 2층에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경관들, 실내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굉장히 많다. 동양에 있는 병실의 경우, 아침 햇살을 15,006수만큼 받을 수 있지만, 서양 병실은 14,006수만 아침 햇살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햇볕을 받는 부분에 있어서 환자의 치유 속도와 스트레스, 수면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친환경 설계가 반영된 대표적인 병원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스위스에 있는 재활병원인 ‘REHAB, Clinic for Neurorehabilitation and Paraplegiology Basel, Switzerland’의 경우, 병실은 전부 고층이 아닌 저층에 위치해 있다. 2층짜리 병실이고, 2층의 평면은 병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주부에 병실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네모난 박스 형태의 2층짜리 건물 내부 공간은, 창문이 없는 실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의 중정과 정원들을 안으로 끌어들여 환자나 의료진들에게 자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병원 전체에 사용된 재료는 녹색지붕, 단열재, 골판 아크릴 시트, 목재 피복재, 콘크리트 슬래브, 나무데크, 플렉시 유리, 나무발 순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플렉시 유리는 나무발 사이에 끼워져 있어 열을 흡수하는 역할과 어두울 때 빛을 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나무발은 열을 흡수하면서 병실을 둘러싸고 있어 시각적인 차단 효과까지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괄목할 만한 부분은 수치료실이다. 이 수치료실은 플라스틱 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병실 역시 천정이 플라스틱 공으로 설치되어 있다. 각 병실 천장에 전등 대신 이러한 특수 플라스틱 공들이 설치되어 있어, 낮에는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하늘을 볼 수 있으며, 또 공이 열을 흡수하여 저녁때까지도 빛을 발산하기 때문에 병실과 수치료실이 환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만큼 지속가능한 에너지 재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나무발의 경우, 나무발 안에서 열을 흡수하고 또 병실 앞에는 지붕 처마의 형태를 끌어들여서 여름 햇빛을 어느 정도 차단해 주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만큼 지속 가능하다는 말은, 에너지 측면에서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50년 이상이 되더라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의료 환경을 수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또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의 규모를 갖고 있는 것이 지속 가능한 병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는 싱가포르에 있는 ‘Khoo Teck Puat Hospital(KTPH)’이다.
이 병원은 들어가는 순간, ‘정글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에 둘러싸여 있고, 앞에 큰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병원은 호수를 끼고 건물을 배치한 것이다. 병원은 처음부터 ‘이 곳에 지어야겠다’는 목적으로 땅을 구입했고, 병원 안에 들어가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도시적인 맥락에 있어서 ‘이 병원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 병원이 혼자 살아 남지 않고 지역과 어떻게 조화롭게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 병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각 병실에는 작은 플랜트 디자인들을 입면에 적용해서 다양한 루버들을 활용한 모습이 특징이다. 또 외래 부분의 옥상에는 지역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과일이나 채소들을 심어 모든 먹거리를 병실에서 다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병원의 리사이클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병원의 하이라이트 부분 중 하나는 중정이다. 중정에는 큰 복도가 있는데, 그 복도는 내부 복도가 아니라 외부 복도이다. 이곳은 굉장히 넓어 환자들이 산책하듯이 계속 배회하면서 치유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만큼 중앙부에 위치한 중정은 인접한 연못까지 정원이 이어져 ‘열린 정원’이라는 개념을 가지게 됐다.
세 번째는 싱가포르 주롱 이스트에 위치한 700병상 규모의 ‘Ng Teng Fong General Hospital(NTFGH)’이다. 이 병원은 인접한 Jurong Community Hospital(JCH)과 함께 통합 개발의 일부로 구성되었다. 병원은 부지가 넓어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급성기 병원과 외래병원, 노인병원의 재활병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조가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다. 또한 도심지에 있어 양옆 사면으로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그래서 병동의 형태도 바람개비 모양처럼 디자인되어 양쪽에서 바람이 통할 수 있는 창문을 가지고 있다. 6인실의 형태가 우리나라처럼 네모반듯한 것이 아니라 나뭇잎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사이사이에 침대와 창문의 형태를 비틀어 모든 환자가 개인의 창문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래서 환자들이 나만의 작은 창문으로 환기도 하고 자연을 바라볼 수 있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네 번째는 결핵병원인 ‘GHESKIO Tuberculosis Hospital’이다. 아이티에 있는 2층짜리 작은 규모의 병원은, 처음 설계한 건축가가 ‘환경이 어떻게 환자의 치유와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디자인한 것이다. 그래서 병실은 큰 중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중정도 마찬가지로 내부가 아닌 외부 복도로 둘러싸여 있게 구성되었다. 각 병실은 관리자가 바깥에서 들어오는 결핵환자를 케어해야 되기 때문에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바깥 화장실을 두어 양쪽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결핵 환자들이 ‘햇볕을 받으면 감염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착안해서, 환자들이 서로 바깥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병실과 병실 사이를 외부공간으로 구성했다. 그래서 의료진과도 병실의 어두운 공간이 아닌 밝은 공간에서 소통할 수 있게 디자인한 사례다.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EVIDENCE-BASED DESIGN) 특징을 설명하고자 한다.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은 건축과정에서 최선의 치유 효과를 내기 위해 신뢰성 있는 연구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과정(The Center for Health Design)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결과물(Production)이 아니라 과정(Process)으로, 건축디자이너와 건축주가 공동으로 최선의 디자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또한 융통성이 없는 규칙이나 표준이 아니며, 디자인의 질(Quality)과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경제성(Economy)과 향상된 성과(Improved Outcomes)를 의미하는 것으로, 건축디자이너와 건축주 상호 간의 신뢰구축(Credibility)이 우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근거에 입각한 디자인은 어떤 흐름이라기보다는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자기의 생각과 경험 +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병원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건축물도 코스트(Cost, 비용)의 문제가 가장 크다. 하지만 코스트뿐만이 아니라 건축주의 리더십, 게다가 좋은 파트너와의 어떤 프로젝트가 앞으로의 병원 건축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친환경 설계(Sustainable Design)는 그 안에 담아내려고 하는 의료진과 환자 또는 많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디자인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2) 웰니스 시대의 공간 디자인_ 정지연 브리크(brique) 대표
(3) 건축가가 만드는 미래 병원_ 박혁수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바이오헬스본부 본부장
글, 취재. 박하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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