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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FOCUS] 한국병원경영학회 추계 학술대회카테고리 없음 2025. 11. 3. 10:36
2025년 한국병원경영학회 추계 학술대회
- 병원경영학회 30년 성과와 과제 -2025년 한국병원경영학회 추계 학술대회가 지난 10월 24일,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신촌) 331호에서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병원경영학회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 주최했으며, ‘병원경영학회 30년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1. <보건의료정책과 병원경영>, 2. <AI를 품은 미래의료>의 두 가지 주요 세션을 내세웠다. 먼저 김태현 학회장(한국병원경영학회)의 개회사로 문을 연 후, 이해종 원장(속초의료원)이 1. <보건의료정책과 병원경영> 세션의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함명일 교수(순천향대학교 보건행정경영학과)가 ‘건강보험 지불제도 변화와 병원의 방향 탐색’에 대해 발표했으며, 이필수 원장(경기도의료원)이 ‘포괄 2차 종합병원 지원정책 현황과 과제’를 설명했다. 이어 윤상현 부연구위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실)이 ‘의료이용 경로분석과 AI활용’에 대해 발표한 다음, 표창해 병원장(서남병원), 박병태 교수(카톨릭대학교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김양균 교수(경희대학교 경영학과)가 토론자로 나서 토론을 진행했다.
이후 2. <AI를 품은 미래의료> 세션은 유창훈 실장(서울의료원 의료정책실)이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김지은 파트장(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가 ‘의료 AI의 병원적용 사례와 과제’에 대해 설명했으며, 황준원 수석연구원(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의 ‘일차의료 혁신, 강화를 위한 디지털 주치의제 도입 필요성 검토’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강대욱 센터장(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의 ‘공공병원 건립추세 및 시사점 분석’ 발표 이후, 유기봉 교수(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부), 신동교 의료정보관리부장(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전병찬(헬스허브)이 토론자로 나서 토론을 진행했다. 이번 매거진HD에서는 두 번째 세션인 <AI를 품은 미래의료>에 대한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취재. 박하나 편집장

AI를 품은 미래의료

김지은 파트장(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의료 AI의 병원적용 사례와 과제’
_김지은 파트장(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이번 발표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ML), 딥러닝(DL)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김지은 파트장은 이 중 딥러닝이 현재 의료 영상 판독 등 가장 일반적인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 새로운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성형 AI(Generative AI)’로 진화하며 의료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분야에서 AI는 진단 및 판독 지원, 치료 의사결정 지원을 비롯해 행정 및 경영 효율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을 보이며 병원 경쟁력을 강화할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생성형 AI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현장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기록 보조 수준을 넘어 진단 정확도 향상과 병원 운영 효율성 개선 등 의료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고 있다.
미국 의회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진단·치료, 환자 치료 계획 수립, 행정 업무 자동화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역시 의료 자원 배분, 행정 효율화, 신약 개발 등에서 AI의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맥킨지, 엑센추어 등 글로벌 컨설팅사들은 로봇,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AI의 적용 범위가 임상 현장을 넘어 확장될 것이라 전망했다.
의료계, “AI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 긍정 인식 확산
OECD가 회원국 18개국의 의사 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70% 이상이 ‘AI의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대부분은 의료진의 역할은 여전히 핵심적이라면서도, 책임 소재 및 윤리 문제를 주요 우려 요인으로 지목했다.미국에서도 AI 도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200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AI 활용률은 2023년 대비 2024년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진료 기록 요약, 보험 청구, 리서치, 진단 보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다만 법적 책임 문제와 데이터 보안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
국내 AI 도입률 19%…“정확도·보안 우려 여전”
국내에서는 의사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병원 시스템에 AI를 도입해 활용 중인 비율은 약 19%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진단’이며,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로는 비용과 효과의 불확실성, 정확도 한계, 정보 보호 우려, EMR 연동 미비 등이 지적됐다. NVIDIA 조사에서도 국내 의료기관의 주요 AI 활용 영역은 진료 기록 요약, 챗봇, 신약 개발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실제 임상 적용 비율이 7% 수준으로 낮지만, 관심 단계 기관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정부, 의료 AI R&D 15조 원 투자…“AI 3대 강국” 목표
국내 의료 AI 산업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빠르게 성장 중이다. 지난 10년간 국가 R&D 과제 중 의료 AI 관련 투자 규모는 약 15조 원에 달하며, 연평균 성장률은 48%를 기록했다. 정부는 2023년 9월 ‘국가 AI 전략 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AI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세부 과제를 제시했다. 같은 시기 보건복지부는 의료 AI R&D 로드맵을 발표, 응급실 특화 인공지능 모델 등 의료 서비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주요 병원 AI 적용 사례
최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의료 AI 적용 사례 보고서’에는 총 7개 병원의 사례가 소개됐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등 국내 주요 병원들이 참여했으며, 각 기관의 전문가 9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삼성서울병원: AI 기반 스마트카트 및 로봇 기반의 병실 물류 시스템
삼성서울병원은 AI 기반 물류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 병동 간 물류를 자율주행 로봇이 야간 시간대에 자동 운송하도록 했다. 현재 병원 내 물류의 약 75%를 로봇이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의료진의 비임상 업무 부담이 크게 줄었다. 또한 입원 환자 위험 감시 시스템을 도입해 낙상, 욕창, 질환 악화 등을 사전 예측하고 환자 안전을 강화했다.
▷ 서울아산병원: AI 진료 음성인식 및 디지털 트윈 기술
서울아산병원은 AI 진료 음성인식 시스템을 도입해 의료진의 진료 효율을 높였다. 환자와 의료진 간의 실시간 대화를 자동 기록하고, 회진용 모바일 버전으로도 적용해 응급 상황에서도 실시간 처방 기록이 가능하다. 또한 양악수술 디지털 트윈 모델을 개발, 환자 개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술 결과를 예측한다. AI 예측 결과와 실제 수술 결과의 오차가 1.5mm 미만으로, 높은 정확도를 입증했다.
▷ 서울대병원: AI 시대의 생체신호 모니터링
서울대병원은 ‘AI-CDSS(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 개발 사업을 통해 중환자실 및 수술실 특화 AI 시스템을 구축했다. 100만 명 규모의 임상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46개의 AI 모델을 개발했으며, 다수의 모델이 식약처 2등급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대표 사례로는 24시간 심정지 예측 시스템(뷰노 DeepCARS)과 중환자 재입실 예측 모델이 있다.
▷ 연세의료원: 생성형 AI 기반 의무기록 초안 작성 서비스
연세의료원은 2024년 11월부터 응급실 퇴원 요약지와 마취전 평가서 자동 작성 서비스를 도입했다. 문서 작성 시간이 평균 66% 단축되었고, 업무 부담 역시 크게 줄었다. AI는 환자의 병력, 내원 사유, 치료 이력 등을 기반으로 초안을 자동 생성하며, 의료진은 검토 후 보완만 하면 된다.
향후 과제: 인프라·표준화·법적 가이드라인 시급
전문가들은 의료 AI의 확산을 위해 △병원 단위 인프라 구축 지원 △AI 비즈니스 모델 실증 사업 확대 △EMR 표준화 △개인정보 보호 및 인증 제도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병원별 상이한 EMR 시스템의 표준화, 음성 기반 AI의 개인정보 처리 지침 마련, 정부 차원의 재정 바우처 지원 등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생성형 AI가 의료 현장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과 함께 제도적·인프라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황준원 수석연구원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
‘일차의료 혁신, 강화를 위한 디지털 주치의제 도입 필요성 검토’_황준원 수석연구원(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직면한 한국 의료체계의 해법으로 ‘디지털 주치의제도’ 도입이 강력하게 제시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황준원 수석연구원은 24일 한국병원경영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일차의료 혁신, 강화를 위한 디지털 주치의제 도입 필요성 검토”를 주제로 발표하며, 디지털 헬스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황 수석연구원은 기존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사회 일차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헬스 기술과 한국형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주치의제도는 스마트 의료 시대에 일차의료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의료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만성질환의 효과적인 관리를 포함한 지역사회 일차의료 강화가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의료비 지출과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특히 지방 지역의 의료 접근성 부족, 만성질환 환자 증가, 수도권 중심의 의료 집중 현상은 고령사회가 불러올 의료 격차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코로나19와 최근의 의료 갈등 사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차의료, 그리고 주치의 제도의 본질
1차의료는 ‘최초 접촉, 접근성, 포괄성, 지속성, 통합 조정 기능’을 핵심 속성으로 한다. 이는 단순히 동네 의원의 개념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건강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국민 건강의 첫 관문’이다. 주치의 제도 역시 이러한 1차의료의 연장선상에 있다. 환자의 상태를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필요 시 전문의나 병원으로 연계하는 ‘문지기 기능(게이트 키핑 시스템Gate-Keeping System)’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치의 제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논의됐지만, 낮은 인센티브와 제도 설계 미비로 제도화에 실패했다. 이후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 등으로 확대됐으나, 여전히 환자 중심의 신뢰 체계와 데이터 기반 관리 시스템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디지털 헬스로의 전환, 새로운 주치의 모델 등장
최근 주목받는 것은 ‘디지털 주치의제’다. 이는 1차의료 체계에 디지털 헬스 기술을 접목해, 만성질환 환자의 건강정보를 빅데이터와 AI로 분석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의료진은 환자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원격 모니터링 기기와 모바일 앱, 의료진용 대시보드를 통해 개인별 관리 계획을 수행한다. 이러한 접근은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충청권이나 지방 응급의료 공백 지역에서는 이러한 디지털 기반 1차의료 강화 모델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국내외 확산되는 디지털 주치의 흐름
영국은 NHS 개혁을 통해 디지털 진료를 적극 도입하며 1차의료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프랑스 역시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의료를 중심으로 한 주치의 제도를 강화했다. 국내에서도 부산의 ‘실시간 스마트 커뮤니티 케어 서비스’, 세종의 ‘스마트 홈 주치의 서비스’, 송파구의 ‘스마트 주치의 서비스’ 등 디지털 주치의 모델이 단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이와 함께 네이버는 ‘HyperCLOVA X’를 기반으로 독거노인을 모니터링하는 AI 안전 돌봄 시스템을 지자체와 협력해 운영 중이며, 이는 향후 스마트 건강관리 모델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AI와 마이데이터, 건강관리의 새 패러다임
현재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데이터 기반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보건의료 마이데이터를 활용해 국민 스스로 자신의 건강정보를 관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AI가 예방 중심의 서비스를 제안하는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예방·지역·맞춤형 중심으로 의료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핵심 정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 의료 인력의 디지털 역량 강화, 데이터 윤리 기준 확립 등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의료진과 AI 간의 신뢰 형성,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필수 과제로 꼽힌다.결국 목표는 ‘국민이 건강한 사회’
결국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로 나아가기 위해 “AI 기반의 스마트 건강관리 체계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주치의제는 단순한 의료 디지털화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건강을 평생 관리하는 새로운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방 중심의 1차의료 강화,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서비스, 그리고 지역사회 돌봄의 유기적 연계. 이 세 축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한국은 초고령사회 속에서도 국민 모두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의료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강대욱 센터장(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공공병원 건립 추세 및 시사점 분석’
_강대욱 센터장(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최근 감염병 재유행 가능성과 의료 공백 사태를 겪으며 공공병원 확충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공공병원의 단순 진료 기능을 넘어선 사회적 기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강대욱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장은 24일 한국병원경영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공공병원 건립 추세 및 시사점 분석’을 발표했다. 강대욱 센터장은 공공병원이 단순한 지역 거점 병원을 넘어, 감염병 대응, 지역 의료체계 강화, 필수 의료 공백 해소 등 다양한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는 다기능 플랫폼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공공의료는 OECD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관 수 기준 5.2%, 병상 수 기준 8.8%로, OECD 평균(병원 수 53.1%, 병상 수 72.0%)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민간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의료의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공공병원’이란 무엇인가
‘공공보건의료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혹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공공단체가 공공보건의료의 제공을 주된 목적으로 설립·운영하는 기관을 말한다. 여기에는 국립대학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적십자사, 지방의료원, 국립암센터,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이 포함된다. 특히 감염병 대응, 의료 취약지 지원, 사회적 약자 보호 등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수익성이 낮고 행정 절차가 복잡해 신규 설립이 쉽지 않다.민간 중심 의료체계의 한계
현재 국내 공공병원은 주로 요양병원(36.4%), 중소 규모 종합병원(300병상 이하 16.8%)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대형 상급종합병원의 비중은 11.4%에 불과하다. 특히 지방의료원의 상당수가 노후화되어 있어 지역 내 필수의료 제공 능력이 떨어지는 실정이다.민간병원을 포함한 전체 병원 중에서도 공공병원의 비중은 상급종합병원(26.7%)을 제외하면 대부분 3% 미만에 머물고 있다. 의료 접근성의 격차는 지역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감염병·응급의료 상황에서는 그 공백이 더욱 뚜렷해진다.
공공병원 정책 변화의 흐름
1950~70년대 전후 복구 시기에는 보건소 중심의 전염병 대응 체계가 핵심이었다. 이후 1980~90년대 의료보험 전면 도입으로 민간병원이 급격히 늘면서 공공의료는 정체기를 맞았다. 2000년대 들어 ‘공공보건의료법’ 제정과 지방의료원 복지부 이관을 통해 법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지역 간 격차 해소에는 미흡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했다. 정부는 2020년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감염병 대응병원 확충,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지역 필수의료 중심병원 확충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했다. 이후 2021년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과 2023년 ‘필수의료혁신전략’이 연이어 발표되며 공공의료의 방향이 “생명을 살리는 의료, 지역 중심의 필수의료체계”로 재정립됐다.예비타당성조사, 공공병원 확충의 가장 높은 벽
공공병원 건립은 지자체의 기본계획 수립부터 복지부 협의, 기재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국회 예산 의결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특히 예타 통과 여부는 사업 추진의 성패를 가른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국비 300억 원 포함)인 경우 필수 절차로, 비용 대비 편익(B/C) 비율이 1에 미치지 못하면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보건의료 사업이 갖는 공공성과 사회적 편익이 단순한 경제지표로 측정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은 각각 0.63~0.65 수준의 B/C 비율로 ‘경제성 부족’ 판정을 받았다. 반면 지역 균형발전이나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 등 질적 편익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른다.각 지역별 추진 현황
대전의료원은 민간 중심 의료공급 구조로 인해 공공의료의 불균형이 심각한 지역이다. 2019년부터 KDI와의 논의가 이어졌으나 타당성 평가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정책적 판단에 따라 예타 면제 대상으로 지정됐다. 서부산의료원은 강서·사하·사상 지역의 필수의료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추진 중이다. 부산의료원과의 거리로 인해 접근성 문제가 제기돼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경상남도 진주권은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이후 공공병원이 전무한 지역이다. 정부의 공공의료체계 강화 정책에 따라 2020년 예타 면제 대상으로 선정돼 현재 건립이 진행 중이다.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은 각각 예타 재조사에서 낮은 B/C 비율로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지자체와 전문가들은 “응급의료 수요를 과소평가했다”며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성보다 생명 가치 중심의 평가체계로”
전문가들은 예비타당성조사의 본질이 ‘재정 효율성 평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의료의 공공성과 생명 보호라는 목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응급사망 범위를 기존 3대 중증응급질환에서 28개 질환으로 확대하고, 신종 감염병 대응 등 사회적 편익을 수치화하는 새로운 평가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병원 설립으로 인한 지역 의료체계 강화 효과를 정량화하고, 보건의료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는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 기반의 평가체계 개선도 제안되고 있다.공공의료, ‘지속 가능한 국가 안전망’으로
공공병원은 단순히 ‘적자 병원’이 아니라, 재난과 감염병, 의료격차에 대응하는 국가의 마지막 안전망이다. 예비타당성 조사의 틀 안에서 경제성만으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공공병원의 확충은 재정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지역의 안전”이라는 국가적 책무의 문제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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