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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결국 마주하게 되는 공간
2월은 조금 특별한 달입니다. 새해의 분주함이 한 박자 가라앉고, 구정을 지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쳐 앉게 되는 시기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 말입니다.

이 나이가 되니, 부모님 문상을 드나드는 일이 잦아집니다. 모임에 나가면 자연스레 화제는 ‘어르신을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로 모아집니다. 아이들이 다 크고 이제야 숨을 고를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또래 친구들의 근심이,결국 부모님이라는 사실이 어느새 우리의 공통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요즘 친정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 시간들은 제게 또 다른 시선으로 병원을 보게 합니다.디자이너의 눈이 아니라, 보호자의 마음으로 공간을 바라보게 됩니다.
대기 공간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계신 어르신들의 무표정한 얼굴,진찰실에 들어가 넘어질 듯 불안한 의자에 간신히 몸을 기대는 어머니의 모습,그리고 보호자가 잠시 앉을 의자 하나 없이
배려라곤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진찰실의 풍경.
그곳에서 저는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그동안 나역시 이 분야에 올인하면서 정말 많은 의료공간들을 접해왔지만 우리가 만들어온 병원 공간이아직도 사람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병원은 치료를 받는 곳이기 이전에,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안고 들어오는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체력을 모두 쏟아야 하는 장소이며,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보며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공간은 여전히 ‘기능’에 머물러 있고,‘마음’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헬스케어디자인을 이야기해온 매거진HD가 이제는 더 세밀한 디테일을 들여다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창한 설계 개념보다, 작은 의자 하나, 안전한 손잡이 하나,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 공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배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어쩌면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디자인 그 자체가 아니라,‘무엇을 위해 디자인하는가’에 대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구정을 맞이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매거진HD는 한 번 더 질문해보려 합니다.공간을 통해 진정으로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우리는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말이지요. 우리가 결국 마주하게 되는 공간,그 공간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그 여정을 2월호부터 다시, 차분히 이어가고자 합니다.
2026년 2월
발행인 노태린728x90'ARTI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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