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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FOCUS] 2026년 병원경영과 의료정책 연수교육ARTICLE 2026. 2. 2. 17:38
2026년 병원경영과 의료정책 연수교육


(사)대한병원협회에서 주관하는 <2026년 병원경영과 의료정책 연수교육>이 지난 1월 20일 서초문화예술회관 아트홀에서 개최됐다. 이번 연수교육은 오전에 보건복지부에서 각각 ‘2026년 보건의료정책 방향’과 ‘의료 AI 기반 보건의료정책 방향’의 발표를 진행했으며, 오후에 Hm&Company 신승훈 대표가 ‘Measure what matters’에 대해, IBK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서경란 연구소장이 ‘2026년도 국내·외 경제환경 전망과 의료산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가톨릭대학교 보건의료경영대학원 박병태 교수(보건의료경영연구소장)가 ‘지속가능한 병원 경영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매거진HD에서는 오전에 발표된 ‘2026년 보건의료정책 방향’과 ‘의료 AI 기반 보건의료정책 방향’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았다.
취재. 박하나
‘2026년 보건의료정책 방향’
보건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 강준 과장(전 의료개혁추진단 의료개혁총괄과장)
보건복지부 기초의료보장과 강준 과장 새 정부가 저출생·초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와 지역·필수의료 붕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의료 정책의 대대적인 수술에 나선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1월,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로의 전환’을 핵심 비전으로 삼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한편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내용의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 위기의 진단: 인구 절벽과 필수의료의 공동(空洞)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비 통계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인구 비중과 노인 진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 인구 대비 노인 인구 구성비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총진료비에서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의료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고령자 중심 의료서비스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시사한다.
정부가 이번 정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심각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1960년 1,370만 명에 달하던 유소년 인구는 2022년 595만 명으로 급감한 반면, 고령 인구는 같은 기간 73만 명에서 898만 명으로 폭증했다. 노인 진료비 비중 역시 2019년 40.5%에서 2023년 43.0%로 증가하며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고령 인구 증가는 만성질환 관리, 장기 치료, 복합 질환 대응 등 의료서비스의 장기화·복잡화를 동반한다. 이와 함께 간병, 요양, 재택의료 등 병원 외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의료의 중심이 급성기 치료에서 일상적 건강 관리와 돌봄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 간, 진료과목 간 의료 불균형이다. 2023년 기준 서울의 인구 천 명당 의사 수는 4.4명인 반면, 경북은 2.2명에 불과해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이 25.5%, 흉부외과가 55.6%에 그치는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의 기피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 해법 1: 지역·필수의료 살리기… “사는 곳에서 치료받는다”
새 정부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은 5년 내 공공의료 강화 기반 ‘지역완결 필수의료 체계 구축’이다.
보상 체계 개편: 고위험·고난도 수술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공공정책수가’를 신설하고, 지역 의료 인프라 유지를 위한 ‘지역필수의료기금’을 조성한다.
인력 양성: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의대 신입생 중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하고,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에게 수련 수당을 지원하는 등 유인책을 강화한다.
인프라 확충: 응급·분만·소아 등 취약 분야를 위해 ‘달빛어린이병원’을 확충하고, 지역 내 역량을 갖춘 병원을 육성하여 24시간 진료가 가능한 체계를 만든다.
□ 해법 2: 예방 중심의 ‘일차의료’와 ‘마음 건강’ 챙기기
고령화 시대에 맞춰 치료 중심에서 예방 및 관리 중심으로 의료 패러다임을 전환한다.
주치의 제도 도입: 지역사회 내에서 만성질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주치의 모델’을 도입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한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지속한다.
정신건강 국가책임 강화: 자살률 악화와 마약류 중독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살예방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고, 중독성 정신질환의 치료·회복 체계를 강화한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의료 취약지 보건소를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와 원격 협진을 활성화하여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 해법 3: 간병비 부담은 낮추고, 바이오 산업은 키운다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의료비 부담 완화 정책도 포함되었다. 특히 고령화로 인해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간병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확대한다. 이를 통해 현재 100%인 간병비 본인부담률을 30% 내외로 낮출 계획이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바이오헬스 강국’ 도약 계획도 발표되었다.
-규제 혁신: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약가 보상을 강화하고, 식약처 허가와 건강보험 급여 평가를 동시에 진행하여 신약 등재 기간을 기존 330일에서 150일로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AI 신약 개발: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의사과학자 등 핵심 인력 11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들이 사회적 합의 속에 추진될 수 있도록 ‘의료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투명하게 논의 과정을 공개하고, 국회와 협력하여 관련 입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새 정부 보건의료 정책, 무엇이 달라지나?
-동네 병원 강화: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응급·중증 치료까지 받을 수 있도록 지역 병원과 필수의료(소아과, 산부인과 등) 지원이 대폭 늘어납니다.
-간병비 절감: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환자 가족의 부담이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예방 중심 건강관리: 동네 의원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고,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되어 평상시 건강 관리가 쉬워집니다.
-바이오 산업 육성: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과 규제 완화로 더 빠르고 다양한 치료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향한 과제
인구구조 변화는 미래 세대의 의료 재정 부담 증가로 직결된다. 이에 따라 새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지속 가능성을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효율화, 예방 중심 정책, 지역사회 기반 돌봄 강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된 전략이다.
결국 새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얼마나 많은 치료를 제공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건강한 삶을 오래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조적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저출생·고령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의료의 역할과 방향을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의료 AI 기반 보건의료정책 방향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 박정환 의료AI팀장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데이터진흥과 박정환 의료AI팀장 Section 1: The Evolution of Insight
통찰의진화
의료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단순한 기술 혁신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의료 AI는 ‘정확한 도구’를 넘어, 의료 시스템 전반의 판단과 개입 방식을 재편하는 통찰의 메커니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의료 AI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박정환 의료 AI 팀장은 이를 “기술의 시대를 넘어 통찰의 시대로의 전환”이라고 규정한다. 박 팀장은 의료에서 ‘통찰’이라는 개념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통찰은 오랜 시간 의료를 지배해 온 핵심 작동 원리이며, 의료의 역사는 곧 통찰의 진화 과정이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근 들어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면서, 이 통찰의 진화 속도가 전례 없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의료 AI, 영상 판독에서 시작된 ‘AI적 통찰’
의료 현장에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2010년대 중·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엑스레이, CT 등 의료 영상 일부 영역에서 AI 기반 판독 기술이 도입되면서, 의료 AI는 처음으로 임상 현장에 발을 들였다. 박 팀장은 이 시점을 ‘AI적 통찰의 출발점’으로 평가한다.
초기 의료 AI는 특정 기능에 특화된 형태로 개발됐다. 영상 인식, 분류와 같은 단일 기능 중심의 솔루션들이 병원에 도입되며, 의료 현장에는 점진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최근에는 스마트 병상 모니터링 솔루션인 ‘씽크(ThynC™)’와 같이 실시간 바이탈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도 확산되고 있다. 다만 일부 임상 현장에서는 실제 필요 수준을 넘어선 기술 도입이 이뤄지는 사례도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1세대 의료 AI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하다. 박 팀장은 현재 의료 AI가 단편적 기능을 넘어, 임상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영역 중심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개발자 주도로 시작된 의료 AI는 이제 임상 현장의 요구를 중심으로 재편되며, 실제 의료 행정과 시스템 변화를 촉발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AUROC 0.99”, 명확히 정의된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
박정환 팀장이 의료 AI를 바라보는 관점의 핵심에는 ‘AUROC’라는 지표가 있다. AUROC는 진단 알고리즘의 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로, 값이 0.99에 가까울수록 오진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의미다.
그는 의료 AI 분야에서 AUROC 0.99에 이르는 사례가 이미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특정 기업이나 특정 알고리즘의 성과가 아니라, 의료적 문제가 명확히 정의될 경우 인공지능이라는 기술 자체가 매우 높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박 팀장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가 명확히 정의되면, 인공지능은 그것을 해결한다”는 깨달음이다.
인공지능은 전기와 연산 자원만 있다면 언제든 작동할 수 있다. 사람이 개입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도 상시 개입이 가능하다. 인력 부족으로 환자 상태를 충분히 관찰하지 못하는 병동,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중증 환자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의료 시스템에서 AI는 전혀 새로운 ‘개입 자원’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기존에는 자원 부족으로 불가능했던 의료적 개입이 가능해질 경우, 전체 의료 시스템의 효능감은 필연적으로 상승한다. 박 팀장은 이를 ‘추가적인 효능감(Additional Efficacy)’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러한 자원이 존재함에도 이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집 앞마당에서 유전을 발견하고도 파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유했다.
1세대 의료 AI의 한계, 워크플로우에 들어가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료 AI가 가진 한계는 분명하다. 1세대 의료 AI는 환자의 병원 내 여정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다. 환자, 의료진, 의료 자원이 복잡하게 얽힌 의료기관의 전체 흐름 속에서, AI는 단편적인 기능에 머무르며 워크플로우에 완전히 통합되지 못했다.
기업들은 의료 현장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의사, 간호사, 병원 경영 전문가를 채용하며 개선을 시도해 왔지만, 구조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했다. 박 팀장은 이것이 바로 1세대 의료 AI의 본질적인 한계라고 평가한다.
2세대 의료 AI, LLM과 ‘맥락 엔지니어링’의 등장
박정환 팀장은 현재를 ‘2세대 의료 AI 혁명’의 문턱에 서 있는 시점으로 규정한다. 이 세대의 핵심은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맥락 엔지니어링이다. ChatGPT, Gemini와 같은 기술은 단순한 기능 수행을 넘어, 정보를 읽고 이해하며 맥락에 따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2세대 의료 AI는 문제가 완벽히 정의되지 않더라도 높은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으며, 문제가 명확해질수록 인간을 능가하는 판단력을 보이기도 한다. 일부 최신 연구에서는 의사와 AI가 협업할 경우, 오히려 AI 단독 판단보다 성능이 저하되는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이는 의료 AI가 더 이상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님을 시사하는 상징적인 변화다. 박 팀장은 이 변화의 핵심을 ‘맥락 이해’에서 찾는다. 의료 행위는 본질적으로 고차원적 맥락의 연속이며, 이제 AI가 이 맥락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는 ‘확률 머신’, AI는 증거 수집의 셰르파
박정환 팀장은 의료 시스템을 ‘확률 머신’으로 정의한다. 의료 판단은 끊임없는 증거 수집과 사전 확률에서 사후 확률로의 이동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의료진 곁에서 증거 수집을 돕는 ‘셰르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AI는 실시간으로 위험도를 계산하고, 상황에 맞는 의료적 대응을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진료 지원을 넘어, 의료 시스템 전반의 가치와 성능을 향상시키는 역할로 확장된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AI를 박 팀장은 ‘에이전틱 AI’로 규정한다.
자동화와 효율, 병원 성과를 바꾸는 또 하나의 축
의료 AI의 영향은 진료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행정, 원무, 청구, 시설 관리 등 병원 운영 전반의 자동화와 효율화는 환자의 치료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 연구에서는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 부서의 업무 만족도가 높아졌을 때, 환자의 치료 성과가 개선되는 결과가 확인된 바 있다. 박 팀장은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의료 AI가 병원 운영 전반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도구에서 동료로, 의료 AI와 함께할 준비
미국에서는 이미 ChatGPT Health와 같은 서비스가 등장하며, 환자·의료진·AI가 함께하는 ‘3자 대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의료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의료 생태계의 동료이자 파트너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정환 팀장은 이제 의료계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열린 자세로 의료 AI와 함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료 AI는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 통찰의 시대를 함께 열어갈 필수적인 파트너라는 메시지다.
Section 2: The Containerization Moment
“컨테이너화”의 시기
의료 AI 산업화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한계 비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에 있다. 박정환 보건복지부 의료 AI 팀장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역사적 발명품을 소환한다. 바로 ‘컨테이너’다. 과거 대륙 반대편에서 생산된 물건이 오늘날처럼 저렴한 비용으로 우리 집 앞까지 도착할 수 있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컨테이너의 발명이었다. 컨테이너 이전의 항구는 비표준화된 나무 상자와 수작업 중심의 하역 방식으로 운영됐고, 운송 비용은 막대했다. 당시에는 수십 개의 ‘박스 제조사’가 각기 다른 규격을 사용하며, 크레인 고리, 팔레트, 선박 구조까지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컨테이너 규격이 통일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20피트, 40피트 등 표준화된 크기의 방수 컨테이너가 등장했고, 무게·적재 방식·결합 구조까지 통일되자 운송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물류 혁신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했고 결과적으로 인류의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박 팀장은 이 과정을 의료 AI 산업의 미래와 정확히 겹쳐 본다.
의료 AI도 ‘컨테이너화’가 필요하다
박정환 팀장이 제시하는 의료 AI 산업화 전략의 핵심은 의료 AI의 컨테이너화다. 이는 의료 AI를 특정 병원, 특정 기업, 특정 환경에 종속된 고가의 맞춤형 솔루션으로 남겨두지 않고, 표준화된 형태로 대규모 확산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AI를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정의하고, 이에 맞춰 의료 AI 기업들이 제품을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국가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정부는 개별 기업이 컨테이너 안을 어떻게 채우는지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표준화된 박스 단위로 의료 AI를 배포할 수 있는 인프라다.
이 국가 플랫폼은 물류에서의 항만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보건복지부가 먼저 이 ‘항만’을 구축하고, 이후 민간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의료 AI 컨테이너를 병원에 공급하고, 나아가 해외로 수출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박 팀장은 이를 “보건복지부의 꿈이자 개인적인 비전”이라고 설명한다.
정부는 표준과 고속도로를 깐다
이 전략에서 정부의 역할은 명확하다. 자본을 앞세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벤처캐피탈, 패밀리오피스, 글로벌 투자은행의 몫이다. 대신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역할, 즉 표준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하며 고속도로를 닦는 일에 집중한다.
한국 정부는 의료기관과 직접 협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고, 의료 표준과 법·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의료 AI가 병원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한계 비용이 낮아질수록 그 혜택은 환자와 병원, 의료 종사자에게 돌아간다. 업무 효율이 높아지면 의료진의 노동 강도는 줄고, 이는 결국 의료 서비스의 질과 환자 경험 개선으로 이어진다. 박 팀장은 이러한 변화가 의료 종사자 개인의 삶의 질까지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툴킷까지 포함한 ‘사용 가능한 의료 AI’
보건복지부의 구상은 단순한 기술 보급에 그치지 않는다. 의료기관이 실제로 의료 AI를 쉽게 도입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툴킷까지 포함한 패키지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단계별 로드맵을 설정하고 있으며, 초기 1~3년은 제도·기술·현장 적응 과정에서 어려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반이 완성되고, 의료 AI 컨테이너 모델이 해외로까지 확산될 경우, 이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술의 민주화, 환자 혜택의 보편화
의료 AI 컨테이너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술의 민주화(Democratization)다. 특정 대형 병원이나 일부 의료기관만이 아닌,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클라우드와 엣지를 조화시키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클라우드는 중앙 데이터센터의 연산 자원을 활용하고, 엣지는 의료기관 내부에서 표준을 준수하는 장비를 통해 보안을 확보한다. 다만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구조는 지양하되, 원내 설치를 요구하는 일부 의료 환경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할 계획이다.
CAPEX에서 OPEX로, 표준화가 답이다
의료 AI 도입의 가장 큰 장벽은 초기 투자 비용(CAPEX)이다. 이를 사용량 기반 비용(OPEX) 구조로 전환함으로써, 의료기관은 필요할 때 사용하고 원할 경우 언제든 중단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의료 AI의 한계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결정적 수단이다. 박정환 팀장은 이 모든 전략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결국 답은 표준화다.”
Section 3: The Vision - AI-Native Patient Journey
비전: AI-네이티브 환자의 여정
보건복지부가 제시하는 의료 AI 정책 비전의 궁극적 목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다. 그 핵심에는 ‘AI-네이티브 환자의 여정(AI-Native Patient Journey)’, 즉 집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AI가 연속적으로 개입하는 끊김 없는 의료(Seamless Patient Journey)의 구현이 있다.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특정 질환이나 단일 에피소드 중심으로 설계돼 있으며, 의료기관과 진료과 간 데이터는 사일로(Silo)에 갇혀 단절돼 있다. 이로 인해 환자는 진료 단계마다 반복적인 설명과 검사를 감내해야 하고, 의료진 역시 제한된 정보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정환 보건복지부 의료 AI 팀장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AI를 통해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다.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측으로
AI-네이티브 환자 여정의 핵심은 사후 대응 중심 의료에서 사전 예측·선제 대응 중심 의료로의 전환이다. AI는 환자의 일상 데이터와 의료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분석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병원 진료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보다 정밀하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의료 자원은 더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이러한 기능들은 앞서 제시된 ‘의료 AI 컨테이너’ 안에 통합돼 제공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진료 증강·예측·연결 기능은 개별 솔루션이 아닌 하나의 표준화된 패키지로 작동하게 된다.
진료 현장의 변화: 환자에게 집중하는 환경
AI-네이티브 여정은 진료실 풍경 자체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진료량 증가로 인해 의료진이 겪는 과도한 타이핑과 행정 부담을 줄이고, 환자와의 대화와 판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첫 번째 변화다. AI는 진료 과정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존재’로 작동하며, 처방 확인, 과거력 검토, 반복적 행정 업무를 자동화한다. 이를 통해 의료진은 판단과 설명이라는 본질적인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병원 내에서는 스마트 병상 모니터링 솔루션과 같은 AI 기반 시스템을 활용해 입원 치료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높이는 구조를 지향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AI 기반 진료가 실제로 의료적 가치를 입증할 경우, 수가 정책 등 제도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검토된다. 이는 AI를 단순 보조 기술이 아닌, 의료 체계 내 정식 구성 요소로 편입시키기 위한 중요한 전제다.
연결되는 의료, 정밀해지는 의뢰와 회송
AI-네이티브 환자 여정은 병원 내부에 머무르지 않는다. 진료 정보 교류의 고도화와 마이데이터(MyData) 활용을 통해, 의료기관 간 정밀한 의뢰와 회송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핵심 과제다. AI는 환자의 상태와 필요에 맞는 의료기관을 연결하고, 불필요한 중복 진료와 이동을 줄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환자 경험을 개선하는 동시에, 의료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다시 집으로, 그리고 완성되는 케어 루프
의료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병원을 떠난 이후다. AI-네이티브 환자 여정은 환자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케어가 중단되지 않도록 설계된다. 원격 환자 모니터링(RPM)을 통해 회복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이상 징후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하도록 한다. 이로써 Home to Hospital to Home, 즉 집–병원–집으로 이어지는 완결된 케어 루프가 형성된다. 환자는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회복할 수 있고, 의료진은 필요할 때만 정확하게 개입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의료 생태계를 잇는 ‘결합 조직’으로서의 AI
박정환 팀장은 AI-네이티브 환자 여정을 의료 생태계의 ‘결합 조직(Connective Tissue)’에 비유한다. AI는 의료기관, 진료과, 환자, 데이터 사이의 단절을 연결하며, 기존에 존재했던 의료적 개입의 공백을 메운다. 이러한 연결이 축적될수록 의료의 결과는 점점 더 좋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AI-네이티브 환자 여정은 단순한 기술 도입 계획이 아니라, 의료 제공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정책적 비전이다.
Section 4: Policy & Infrastructure Support
정책 및 인프라 지원
보건복지부가 제시하는 의료 AI 전략의 핵심에는 분명한 역할 분담이 있다. 정부는 직접 플레이어가 되기보다 ‘플랫폼으로서의 정부(Government as a Platform)’를 지향하고, 의료기관과 민간이 그 위에서 가치를 창출하도록 기반을 제공하는 구조다. 박정환 보건복지부 의료 AI 팀장은 “AI가 의료의 특정 단계가 아니라 전 단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정책과 인프라를 설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기초 기술 연구개발부터 국가 의료 인프라 고도화, 안전성과 신뢰를 담보하는 제도 마련까지 다층적인 지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과 에이전틱 AI, 기초 기술에 대한 국가 투자
정부 지원의 첫 축은 기초 기술(R&D)에 대한 집중 투자다. 복지부는 의료 AI의 근간이 되는 파운데이션 모델과 에이전틱 AI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특정 기업의 단기 성과를 지원하기보다는, 의료 AI 생태계 전반의 기술적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한 공공 투자에 가깝다. 이와 함께 마이헬스웨이(MyHealthWay), 진료 정보 교류 시스템 등 국가 차원의 의료 데이터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보강하고, 해당 인프라에 AI가 자연스럽게 탑재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단순한 데이터 축적이 아니라, AI 활용을 전제로 한 인프라 고도화가 목표다.
안전한 혁신을 위한 조건, 레드티밍 AI
의료 AI 확산의 전제 조건은 무엇보다 안전성과 신뢰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레드티밍 AI(Red Teaming AI)’ 연구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레드티밍은 공격자 관점에서 시스템의 취약점을 선제적으로 탐색하는 방식으로, AI 보안과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핵심 기법이다. 복지부는 향후 의료 AI 시스템에 대해 레드티밍 테스트를 의무화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구글, 메타, 네이버 등 플랫폼 환경 어디에서든 공격 시나리오를 가정해 검증을 수행하도록 하는 구조다. 이는 이미 자살 유해 콘텐츠에 대해 SNS 사업자에게 필터링 의무를 부과한 제도와 유사한 접근이다. 나아가 의료 광고나 의료 정보 콘텐츠 가운데 유해성이 우려되는 영역에 대해서도, AI 기반 필터링과 검증 체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대한 콘텐츠 환경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모듈 기반의 자동화된 검증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이다.
스마트 병원에서 스마트 생태계로
복지부가 지향하는 목표는 개별 병원의 디지털 전환을 넘어선 스마트 생태계(Smart Healthcare Ecosystem)다. 스마트 병원이 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데이터, 정책 인프라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병원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분명하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병원은 임상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역할 분담이다. 행정·기술적 부담을 정부 플랫폼이 흡수하고, 의료기관은 진료의 질과 성과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정부는 플랫폼, 병원은 플레이어
박정환 팀장은 의료 AI 시대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정부는 플랫폼, 병원은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정부는 표준과 인프라, 안전장치를 설계하고 제공하며, 병원과 민간은 그 위에서 다양한 의료 AI 활용 모델을 실험하고 확장한다. 이러한 역할 분담이 정착될 때, 의료 AI는 일회성 기술 도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의료 혁신의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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