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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문화의 메카 대학로volume.40 2023. 11. 1. 23:07
대학로는 나에게 각별한 곳이다. 몇 년 전 회사를 이전하기 전까지 이화동에서 3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곳으로 동네 구석구석마다 정이 들었고 추억이 묻어나는 장소가 많다. 대학로는 문화의 메카로 젊은 거리다. 한 때는 주말마다 차량통행을 제한하고 보행전용의 거리로 개방한 적도 있어 많은 젊은이들에게 소통의 해방구로 활용되었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문화가 지금도 소극장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화동 사거리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대학로는 오래된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도열해 있고 좌측에는 홍익대 대학로 캠퍼스와 KT건물, 우측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 중학교와 방송통신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성북동 너머 북한산 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연결되는 주도로를 대학로라고 부른다. 이 도로에 면해있는 건물들은 일상처럼 친근하지만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이면도로 안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담겨있고 이 동네와 관계된 사람들마다 자신의 기억들이 세월처럼 쌓여있다. 급조된 신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런 흔적들 속에서 나는 과거를 더 많이 생각하고 추억한다.
혜화동 로터리는 대학로의 시점이자 종점이다. 오래전에는 고가도로가 있었지만 철거 후 한 층 밝아진 거리가 되었고 코로나 팬데믹 이전, 주말에는 혜화동성당 앞길부터 로터리에는 주로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동남아시장 풍물장터로 변신했었다. 분주하지만 왠지 왁자지껄한 활력이 솟아나는 거리다. 인근에는 혜화동 성당이 인접해 있는데 건축가 이희태가 설계했다. 그는 이전까지 현대 종교건축이 흉내 냈던 뾰족한 지붕과 첨탑으로 구성되는 고딕양식의 옷을 벗고 새로운 종교건축으로 변화시킨 사례를 보여준다. 붉은 벽돌의 십자가 종탑과 더불어 수평적인 매스의 전면에 조각과 성경말씀을 새겨 넣어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건축이다. 오래전부터 종탑은 혜화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주유소 옆 골목으로 방향을 틀어 진입하면 오래된 칼국수 맛집이 나온다. 외관은 얼핏 누추하게 보이지만 진한 사골국물을 자랑하는 오래된 원조집이다. 건축가 최욱이 특유의 감각으로 리모델링한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구 서울시장 공관)으로 가는 오르막길에는 노출콘크리트로 유명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도 볼 수 있으며 혜화문까지 연결된다. 이 길에는 빈티지 풍경이 그대로 남아 옛것과 새것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홍익대, 상명대, 동덕여대를 비롯한 각 대학교들이 대학로캠퍼스로 모여 있고 뒷골목에는 학생들의 입맛과 취향, 그리고 주머니사정을 고려한 핫플레이스도 생겨나고 있다.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대학교로 연결되는 길을 대명길이라고 부른다. 늘 대학생들로 붐비며 그래서 더욱 젊고 활기가 넘치는 거리다. 다양한 업종의 상가들이 밀집해 있어 간판들도 자유분방하고 저마다 자신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한 여름 소나기가 내리면 여유 있게 CGV 극장에 들러 영화라도 한 편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명륜동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주거지와 일부 신축한 소소한 건축들이 이웃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이 골목을 탐험하듯 답사하는 일도 재미있다.
대학로 JS빌딩은 건축가 조건영의 작품으로 당시 그는 철과 유리, 콘크리트같은 현대적인 건축 재료를 활용하여 기하학적인 이미지로 붉은 벽돌의 대학로 거리에 신선함을 추구했다.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오래된 갈비집, ‘낙산가든’과 이웃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가보니 이미 헐리고 다른 새 건물이 생경하게 들어서있다. 그림으로 기록해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979년 완공된 샘터사옥은 서울 대학로 터줏대감 격으로 붉은 벽돌건축의 규범을 보여준다. 샘터파랑새 극장이 지하에, 난다랑, 밀다원같은 찻집이 1층에 위치해 있었다. 대학로의 중심에 서서 길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공공성을 담아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한 건축이다. 김수근 건축가 특유의 붉은 벽돌을 외장재로 디자인 한 건축인데 한 여름에는 외벽에 벽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담쟁이가 덮여 있어 세월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대학로 중심에는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이곳 역시 건축가 김수근의 유작인 아르코 예술극장과 전시장이 면해 있어 많은 문화행사가 열린다. 특히 만추의 계절에 마로니에 공원의 오래된 은행나무는 풍경의 압권이다. 붉은 벽돌과 노랑단풍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요즘처럼 낙엽이 지는 가을풍경이 아름답고 그래서 가을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장소이며 문화발전소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서울대 문리대 이적지에 붉은 벽돌의 건축은 대학로 문화거리에 정체성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 또 하나의 건축인 예술가의 집 (구 경성제국대학 본관)은 일제 강점기인 1924년 설립되어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계획에 따라 관악캠퍼스로 이전 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구조에 갈색 타일로 마감된 근대건축의 전형으로 고전적인 어휘인 아치로 이루어진 창문 등은 보행자들에게 친근한 풍경을 선사한다.
방송통신대 옆 골목을 따라 들어오면 이탈리안 정통피자 맛집, ‘디마떼오(구 토탈디자인 사옥)’가 나온다. 인근에는 쇳대박물관과 동숭교회가 위치해 있어 건축답사의 주요 루트로 활용된다.
내친김에 낙산공원까지 올라가서 대학로를 내려다보는 것도 권장할 만 하다.
길 건너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혜화역 3번 출구에 가까이 있는데 아침마다 출근길로 분주하다. 가을 햇볕을 피해 보도에 설치한 파라솔이 정겹고, 왕래하는 인파를 붙잡는 다양한 상품들이 흥미롭다. 샛노랗게 만추를 맞이한 은행고목은 갈색 타일로 마감된 건물의 외벽색상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울대 병원 본관 앞에 있는 대한의원 본관(사적 제248호)은 1908년 대한제국 내부의 서양식 병원으로 설립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의 맥을 잇고 있다. 중앙의 시계탑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고전적 비례로 바로크 건축의 의장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현재는 의학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정하게 지어진 붉은 벽돌은 서울대병원 캠퍼스 내에서 레트로한 존재감을 갖는다.
이화동 주민센터를 끼고 동숭교회, 이화장, 낙산이화마을 등으로 연결되는 길목도 추억이 많다. 겨울이 오면 함박눈이 내리는 날, 다양한 색상의 붉은벽돌 건물들과 흰 눈이 병치되는 풍경은 각별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멀리 낙산은 눈 속에 함몰되고 거리에는 발자국과 자동차 타이어 자국이 과거시제형으로 기록된다.
벽돌로 지은 고만고만한 건축들이 서로 기대어 모여 사는 정겨움이 있고 뒷골목에는 정다운 사연이 묻어나는 곳, 대학로는 걷고 싶은 거리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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