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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낙산이화마을volume.32 2023. 2. 27. 21:34
낙산이화마을
건축가와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이 반드시 지방이나 해외일 필요는 없다. 서울 한복판에도 가볼 만한 장소는 넘친다. 낙산구간의 한양도성 성벽을 중심으로 이화마을과 장수마을, 창신동은 서울의 보석 같은 동네다. 경사진 산동네에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이곳은 서울의 풍경 중에서 드물게 남아있는 산동네의 정서를 물씬 풍겨내고 있다. 동대문에서 바라본 조감도가 있다면 성벽 왼쪽이 이화, 충신동이고 오른쪽이 창신, 숭인 지역이다. 즉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화, 충신동은 성곽 안쪽의 마을이고 창신, 숭인동은 성곽의 바깥 마을인 셈이다.
지금은 태평로(세종대로)에 면해있지만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로 이화사거리에 40년 넘게 자리하고 있었다. 업무 중에 바람도 쐴 겸, 당시 15층 사무실의 옥상에 오르면 이화동의 무질서한 이면도로가 내려다보이기도 하고 멀리 아름다운 낙산이화마을의 변함없는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져 보였다.
아마도 도시의 현대화 과정에서 과거의 방식처럼 사업자 중심의 개발 즉, 철거 후 재개발 방식을 택했다면 낙산의 이런 오랜 풍경은 증발되고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발의 속도는 느리지만 낙산에 모여 있는 이화, 충신, 창신동은 도시재생으로 접근되고 있어 다행이다. 도시재생사업은 개별적 터전의 존중과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장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서울시의 정책이다.
낙산공원을 오르며 이화마을을 답사하면 이곳은 나누고 사는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오롯이 남아있는 장소라서 그런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정겹다. 경사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소박한 집들에서는 삶의 고단함과 애잔함까지 느껴진다. 특히,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소환해준다.
최근에는 서울의 야경이 가장 잘 보이는 낙산에서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낙산, 이화마을 야행’ 프로그램도 있어 시원한 저녁시간에 답사도 가능하다. 서울시에 이런 장소가 잘 보존되어 있다니 신기한데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스케치북에 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이미 해외관광객들에게는 강북의 핫플레이스로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도 잘 보존되어 서울의 역사를 올곧이 담아내는 동네로 남아주길 기대한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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