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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린의 헬스케어 이야기] 비대면이 바꾼 집의 풍경volume.23 2022. 6. 3. 07:28
“나만의 유튜브 방송실을 만들어 주세요.”
의뢰가 들어온 것은 2020년 겨울쯤이었다. 비대면 수업이 확산하면서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던 의뢰인 딸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두 아들과 부모를 포함해 총 5명의 가족이 30평대 아파트에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방이 부족하다 보니 컨설팅이 주 업무인 의뢰인 부부는 주로 거실에 모니터를 놓고 줌 회의를 했고, 음악을 하는 아들은 연습실을, 딸아이는 자기만의 방이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니즈들이 맞물리면서 가족들은 결국 도심을 벗어나 근교의 주택으로 이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살기 편하고 통학이 수월한 도심 아파트라는 여건을 과감히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은 더 넓고 많은 사적인 공간들에 대한 필요성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도심 아파트를 팔고 교외의 더 넓은 집을 구해서 가족들이 원하는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었으니 이 역시 비대면 세상이 만든 필연이었으리라.
아파트에서 두 아들은 한 방을 같이 썼지만 새 집에서는 각자의 방을 두고, 그 사이에는 음악을 연습하거나 개인방송을 할 수 있는 조용한 방음실까지 마련할 수가 있었다.
예전에도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집에 음악실을 두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개인방송을 위한 방음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꽤 많이 들어오고 있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방음부스를 만드는 회사들은 넘쳐나는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어 일손이 부족해진 상황이다. 결국 새집 리모델링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간신히 부스를 만들 수가 있었다.
이 집에 만들었던 방음부스는 가로 2m, 세로 3m 가 좀 안 되는 1.5평 정도의 작은 크기다. 본래 이 공간은 음악을 하는 아들의 방 한구석에 위치해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지속되면서 부모님의 사업에 없어서는 안 될 절실한 공간이 되었고, 아들 또한 언제라도 음악을 만들고 청음 할 수 있는 소중한 오두막과 같은 곳이 되었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집 한켠 작은 방음부스에서 시작된 누군가의 존재가 전파를 타고 온 세상을 여행하는 요즘. 코로나19는 그렇게 우리의 시공간 개념을 흔들고, 새로운 비즈니스들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또 다른 차원으로 안내하고 있다. ■
글. 노태린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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