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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우즈베키스탄의 유적지, 사마르칸트(Samarkand)와 히바(Khiva)volume.23 2022. 5. 30. 22:00
우즈베키스탄의 유적지, 사마르칸트(Samarkand)와 히바(Khiva)
중앙아시아의 터줏대감 격인 우즈베키스탄은 신 실크로드의 중심이자 신 북방정책의 주요 파트너로 국내 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4년 전쯤에도 다녀왔지만, 최근 ODA(공적개발원조)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해 건축분야 책임자로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이 나라의 경제 여건은 우리나라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지만 정책 변화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에는 농업, 자동차, 에너지 인프라, 의료 분야에 진출을 유망분야로 꼽고 있다. 역사가 깊은 도시라서 수도인 타슈켄트 시내에 보존되어 있는 궁전이나 사원과 같은 전통건축들은 건축적 완성도가 높은 편이지만 이에 비해 대부분의 일반적인 현대 건축물들의 수준은 과장된 건축어휘와 디테일 처리의 미숙으로 기대에는 못 미친다. 시내의 이면도로에는 소박한 재료로 지어진 오랜 주거지들을 볼 수 있는데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어 친근하고 정겹다. 오래된 나무들도 제법 많고 녹지 면적도 넓어 환경은 좋다. 최근에 고층빌딩들이 지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도시 밀도가 낮아 하늘도 넓게 보인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 나라에서 밭을 갈고 있는 일반적인 부녀자의 외모 수준이 우리나라의 유명 연예인 뺨칠 정도라는 소문은 사실무근이니 현혹되지 마시라.
타슈켄트에서 한 시간 넘게 차량으로 이동하면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아미르소이’를 방문할 수 있다. 2,290m 고지라니 한라산보다 높은 산이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접근할 수 있는데 겨울에는 스키 리조트로도 유명하다. 오래된 유적지를 보고 싶어 검색해 보니 우즈벡의 이름난 3대 유적 도시로 사마르칸트(Samarkand)와 부하라((Bukhara), 그리고 히바(Khiva)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마르칸트나 히바의 유적지 ‘이찬칼라’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감동을 준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유적지는 존재감의 아우라가 대단하다. 우선 사마르칸트는 유적지와 현대도시가 공존하고 있으며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궁궐이나 분묘, 학교 등은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이에 비해 히바의 유적지는 시내에서 거리도 멀고 성곽마을이라 보존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투박한 황토벽의 성곽은 방어가 목적일 텐데 오히려 둥글고 완만한 곡면의 여유로움은 방문객을 환영하며 맞이해 주는 듯하다. 이곳은 아무다리야강 하류에 위치한 호라즘 주(州)의 도시로 기원은 200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페르시안, 몽골, 이란, 러시아 등 여러 나라로부터 수난을 받아 폐허와 재건을 거듭해온 이유로 현재 건물의 대부분은 18~19세기의 것이지만 중앙아시아 중세도시의 양상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성 안에는 궁전과 마스지드(사원), 마드라사(신학교), 묘당들이 있고, 성 밖에는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직종별로 구역을 형성해 거주하였다는데 건물들은 호라즘 제국의 전통적 건축기법과 아랍-이슬람식 건축이 융합되어 있다. 특히, 히바의 성곽도시는 전체가 박물관이란 평을 받을 정도로 많은 유적들이 분포되어 있다. 아랍어로 ‘빛을 두는 곳, 등대’를 의미하는 '미나레트' 몇 개가 마치 성 안을 수호하는 장승처럼 높은 첨탑의 형상으로 스카이라인을 지배하고 있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아랍의 전통문양은 건물의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고 신비스러울 정도로 고색창연한 푸른 빛깔의 색상은 거친 황토색 벽돌 벽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조화한다. 늦은 오후의 강렬한 햇빛은 방문객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려 자코메티의 작품 이미지처럼 성벽과 거친 보도에 중첩시킨다. 침략과 방어, 통치와 수탈, 잔인한 형벌까지 거친 벽돌의 문양으로 이루어진 성곽의 광장 바닥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났을까. 그렇게 이 자리를 지키며 목도해왔던 주변의 건축물들은 그 사건들을 모두 망각한 듯 무심하게 침묵하고 있다. 웅장한 진입부는 중건되어 화려하게 새로 단장한 곳도 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부분은 노후되어 세월의 흔적을 초라하게 안고 있다. 한때는 중앙아시아의 융성했던 실크로드 문화를 주도했던 장소였지만 지금은 폐허처럼 존재하는 부분을 볼 때면 인간의 욕망도 세월 앞에서 부질없음을 실감하게 한다.
그동안 코로나로 끊겼던 관광객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곳 유적지 역시 유명세를 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장소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담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켜낼 수 있을까.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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