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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린의 헬스케어 이야기] 멋진 공간이 환자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volume.19 2022. 2. 7. 18:42
어느덧 나이 50을 넘기면서 조금씩 거뭇거뭇 기미들이 거울에 비치곤 한다. 피부라면 자신 있어했던 지난날의 과신도 이제는 저만치 가버렸으니 가끔 SNS에 뜨는 피부과 할인광고에 빠져 당장에라도 가봐야 할 것 같은 심정으로 이름을 남기곤 했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다음날 연락이 오면 적당히 거절을 했지만 몇 달 전 눈가 밑에 착색된 기미를 없애버리겠다는 의지에 이끌려 직접 가서 상담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
날을 잡고 도착했던 그곳은 가히 강남 압구정과 청담동 등 최근 피부과와 성형외과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테리어 컨셉으로 멋지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화이트와 우드 투톤에 값비싼 예술작품으로 멋을 낸 병원은 호텔 그 이상의 럭셔리함으로 방문객을 한껏 위축시켰다.
그러나 업이 업인지라 혹시 동선은 어떤지 마감재는 무엇을 썼는지 보기 위해 일부러 화장실도 들르고, 파우더룸도 들어가서 머리도 손질하면서 공간을 살펴보니 소품 하나하나에도 세심히 신경 쓴 것을 대번 알 수 있었다. 명품 핸드워시, 다이슨 드라이기, 거기에 쓰레기통마저도 디자인 작품을 활용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인테리어 공사업체가 별도로 디스플레이 업체를 연결해 소품 전반까지 신경을 썼거나 병원장님의 센스 있는 안목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이 병원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움에 기꺼이 투자하는 젊은 여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잘 공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싶을 만큼 구석구석 예쁜 인테리어들을 핸드폰에 담아놓고 말았다.
나의 상담시간이 되었다. 친절한 상담실장에 마음이 동요되어 결국 몇 회차 시술이 묶인 거액을 결제하고 바로 레이저 시술을 받기로 하였다. 드디어 나의 시술 차례가 되어 비로소 원장님을 만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이 덮인 채로 원장님을 대면했고,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바로 시술에 들어갔다.
실로 묘한 경험이었다.
아니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그건 바로 레이저 치료의 따끔거림이나 시술 시간에 대한 안내도 없이 거의 20분이 넘는 시간동안 그저 내 얼굴을 지져댔던 것이다. 오히려 내가 조금이라도 머리를 움직이면 내 머리를 치료하기 좋은 위치로 잡아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의 경험을 생각하면 그 좋았던 인테리어의 첫인상과 고품격 소품들의 기억은 온대 간 데 없이 그저 그날 하루의 시술비만 계산하고 오고 싶었다. 시술을 마치고 상담실장에게 치료에 대해 원장님이 아무런 안내나 설명이 없었던 것을 말했다. “우리 원장님께서 잘 설명은 하시지 않지만 꼼꼼하셔서 치료는 진짜 잘하세요. 꼭 끝까지 시술을 받아보셨으면 합니다.” 애써 애원하듯 붙잡는 상담실장님의 설명에 나는 몇 차례 더 남은 비용을 생각해 방문을 했지만, 더 이상 다른 치료나 시술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다시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고객경험은 매우 통합적인 맥락에서 온다.
누구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술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의사를 대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픔에 대한 강도와 시간에 대한 언급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의사에게 환자는 치료경험에 대한 당황스러움으로 결코 그 병원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그건 내가 너의 젖은 신발을 신어보면 그 발 시림을 알게 된다는 것. 물론 이 일화는 나의 매우 주관적인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곳이 제아무리 반짝이게 멋진 곳이었을지라도 의사에게 겪었던 당황스러웠던 치료경험으로 인해 그 병원은 이미 차갑고 무서운 병원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글. 노태린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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