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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우리가 들인 시간만큼

어느새 11월입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가는군요. 달력에 이제 두 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시간이 참 빠르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냈는지 돌아보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 이야기를 자주 떠올립니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장미를 특별하게 여겼던 것은 세상에 그보다 아름다운 장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장미를 위해 자신이 들인 시간 때문이었지요.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장미를 위해 쓴 시간이야.”
참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문장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도, 관계도, 일도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그곳에 들인 시간과 정성만큼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저에게 매거진HD도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돌아오는 발행일을 맞추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원고를 살피고, 사진을 고릅니다. 그렇게 한 호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다음 호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지나고, 세상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저는 매거진HD를 매만지며 제 삶의 흔적도 함께 남겨왔습니다. 때로는 기쁜 마음을, 때로는 걱정과 고민을, 또 어떤 날에는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이 지면에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발행인의 글은 어느덧 저의 작은 기록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매달 빈 페이지를 열어놓고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도 한 줄씩 적다 보면 결국 그달을 살아낸 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곤 합니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어느덧 수십 편입니다.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의 제가 이곳에 머물렀던 셈입니다.
가끔 매거진HD를 읽으시는 분들을 만나면 발행인의 글부터 읽는다는 말씀을 듣곤 합니다. 제 평범한 일상과 생각에 말없이 공감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갈 한 편의 글이겠지만, 그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나갈 이유가 하나 더 생깁니다. 그리고 발행인으로서의 작은 소명의식도 느끼게 됩니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매거진을 오랫동안 지켜봐 주신 분들 중에는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그토록 미련스럽게 계속하느냐며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틀린 말씀도 아닙니다. 저 역시 이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였으니 이제는 무언가 경제적인 결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달 마감을 앞두고 편집장과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다가 결국 한숨 섞인 웃음으로 마무리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재주는 부리고 있는데, 정작 그 재주로 돈 버는 법은 아직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다음 달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고,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좋은 공간과 좋은 생각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서 얻는 배움이 저에게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또 다른 자산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뜻만으로 모든 일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인 시간과 정성이 앞으로는 조금 더 건강한 결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겠지요.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마음만큼이나 현실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이제 올해도 두 달이 남았습니다.
올 한 해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어디에 마음을 두고 시간을 들였는지 돌아보고 싶습니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사람들, 그럼에도 제 곁에 남아 있는 소중한 관계들, 그리고 여전히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제가 시간을 들여 가꾸어온 것들이 결국 저의 삶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거진HD 역시 그렇게 자라고 있습니다. 빠르지는 않지만 매달 한 걸음씩, 조금은 미련스럽고 때로는 서툴더라도 우리가 믿는 가치를 놓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꾸준히 무언가를 지켜낸다는 것은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일보다 더 많은 애정과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1월호를 마무리하며 또 한 번 생각합니다.
우리가 매거진HD에 들인 시간만큼, 이 매거진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있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참 잘 가꾸어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에도 변함없이 우리의 정성을 담았습니다.
늘 함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남은 두 달, 여러분도 자신이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가꾸어온 소중한 장미 한 송이를 떠올려보시면 어떨까요.
그 장미가 지금의 여러분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함께 말입니다.
매거진HD 발행인
노태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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