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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건축사의 Care-Full Space] 일본은 왜 지금 ‘집’과 ‘돌봄’의 경계를 다시 정립하는가ARTICLE 2026. 10. 6. 13:22
일본은 왜 지금 ‘집’과 ‘돌봄’의 경계를 다시 정립하는가
-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시니어 레지던스의 조건일본은 왜 다시 제도를 정비하고 있는가
최근 일본은 유료노인홈 제도를 다시 손보고 있다. 2026년 6월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일정한 유료노인홈에 새로운 등록제를 도입하고, 현재 구체적인 등록기준과 운영기준을 논의 중이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향후 한국의 시니어 레지던스가 마주하게 될 문제를 미리 엿볼 수 있다. 생활지원 중심의 ‘주택형’ 유료노인홈과 개호보험에 따라 직접 개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개호형’의 경계가 입주자가 그 곳에서 나이들면서 점점 흐려진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도 두 유형이 실제 기능 면에서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최근 제도개선의 배경으로 들고 있다.
일본은 고령자가 자신의 집이나 고령자주거에서 가능한 한 오래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와 의료, 개호, 예방 생활지원을 지역 안에서 연결하는 ‘지역포괄케어’체계를 발전시켜왔다. 사코주(서비스형 고령자주택)나 주택형 유료노인홈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 집은 집으로 두되, 필요해지면 방문개호와 방문간호 등의 서비스를 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집 안에서도 고령자는 계속 나이가 들고, 필요한돌봄 수준 역시 달라진다는 점이다. 최근 조사에서는 주택형 유료노인홈에서는 요개호 3이상 중증 입주자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상당수 주택형 유료노인홈과 사코주에 개호, 의료사업소가 병설 또는 인접해있다. 처음에는 ‘주택’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한 수준의 케어가 이루어지는 주거로 변화한 것이다.

[개호형·주택형 유료노인홈, 사코주 입주자 요개호도(2025년도), 한글번역 재작성 출처: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그래서 지금 일본은 주거와 요양시설의 사이의 또 다른 주거유형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케어 까지를 ‘주택’으로 볼 것이며, 어느 정도부터 케어 시설에 준하는 안전과 운영의 책임을 요구할 것인지를 재정립하는 과정에 있다. 실제 새로운 등록제 논의도 중·중증 요개호자나 의료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주 대상으로 하는 홈뿐 아니라, 처음에는 경증자를 받더라도 상태가 악화된 이후 계속 거주할 수 있다고 하는 홈까지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공급의 시간, 그러나 준비는 지금
반면 한국의 시니어 주거 시장은 아직 일본과 같은 단계에 있지는 않다. 노인복지주택에 더해 고령자 복지주택, 실버스테이, 어르신 안심주택, 서울형 시니어주택, 은퇴자마을 등 다양한 이름의 상품과 정책이 등장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공급은 이제 시작 단계에 가깝다.
따라서 한국이 지금 일본처럼 이미 공급된 수많은 고령자 주거의 케어 수준을 재분류하고 규제를 세분화하는 단계는 아니다. 지금 우리의 우선 과제는 여전히 다양한 가격과 유형의 시니어 주거를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공급 초기인 지금이 ‘어시스트 케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70대의 건강한 입주자를 기준으로 만든 집은 10년 뒤 80세의 입주자가 살아가는 집이 된다. 처음에는 식사와 커뮤니티, 운동시설을 중시하던 입주자는 약 복용을 잊거나, 욕실에서 넘어질까 불안해지고,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바로 요양시설로 옮겨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 사이에는 ‘조금의 도움이 있으면 여전히 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시기’가 분명 존재한다.
이처럼 필자가 생각하는 ‘어시스트 케어(Assisted Care)’는 ‘약해진 기능을 필요한 만큼 보완해 독립적인 생활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것’에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달라지는 독립적 일상생활의 제한, 출처: 통계청, 보건복지부] 돌봄이 보이지 않는 집, ‘Care-ready Home’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결국 공간이다. 어시스트 케어를 준비한다고 처음부터 모든 공간을 요양시설처럼 만들면 정작 액티브 시니어가 살고 싶은 집과는 멀어진다. 눈에 띄는 안전손잡이, 장애인용 화장실을 연상시키는 욕실, 비상호출 벨 등은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건강한 시니어에게는 자신의 쇠약한 미래를 미리 마주하게 하는 기분 좋지만은 않은 공간이 되며, 결국 상품의 매력도는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케어가 보이는 집’이 아닌, ‘필요할 때 케어를 도입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집’, ‘Care-ready Home’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욕실은 일반 주거처럼 보이되 벽체 안에는 향후 안전 손잡이를 설치할 수 있는 벽체 구조를 마련해 두고 샤워 공간은 처음부터 단차는 없애고 필요할 경우 샤워 벤치를 설치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한다. 출입문 폭과 침실공간은 향후 보행보조기를 사용해도 무리가 없도록 미리 확보하고, 필요시 전동침대나 추가 센서를 연결할 수 있도록 전원과 통신설비를 미리 준비할 수도 있다. 건강한 상태로 입주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10년뒤, 20년뒤 내가 필요해질 때 즉시 변할 수 있는 집이다.
공용공간에서 중요한 부분은 ‘얼마나 많은 시설을 제공하는가’보다 ‘어떻게 이동하고 머물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어시스트 케어가 필요해 질수록 집에서 멀리 있는 대형 커뮤니티 시설보다 일상 동선에 있는 작은 공간의 역할이 커진다. 최근 고령자 주거 연구에서도 복도는 단순히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통로가 아니었다. 길고 단조로운 복도는 이동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반면, 주변 생활을 바라볼 수 있거나,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고령자의 이동과 교류를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이미 2009년 ‘HAPPI(Housing our Ageing Population: Panel for Innovation)’를 통해 고령자주택의 설계원칙을 제시했다. 충분한 공간과 자연광, 외부공간뿐 아니라 향후 케어와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Care-ready’ 설계, 시설처럼 보이지 않는 복도와 동선, 주민의 교류를 지원하는 공용공간을 함께 강조한다.


[Daventry House, London: 고령자형 임대주택으로 영국 HAPPI 원칙을 적용, 출처: mae.co.uk] 그렇다면 어시스트 케어에 대비한 공용공간은 더 많은 시설을 제공하기보다는 세대에서 엘리베이터, 식당, 정원 등으로 이어지는 일상 동선 중간에 잠시 앉고, 대화를 나누고, 단지 내 활력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작은 장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건강할 때는 편안한 휴식공간이지만, 이동능력이 떨어진 뒤에는 주거공간 밖의 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첫번째 목적지가 될 수 있다. 좋은 공용공간은 케어를 제공하는 장소라기 보다 케어가 필요해진 뒤에도 나의 일상의 범위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공간이다.
모든 세대를 어시스트 케어형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세대는 ‘Care-ready’형으로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하고, 그보다 높은 수준의 케어가 필요해지면 동일 단지 내 소규모 어시스트 클러스터를 조닝하여 이동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같은 레스토랑을 이용하고, 같은 정원을 산책하며, 알고 지내던 이웃과 계속 교류하면서 조금 더 도움받기 편한 집으로 이동하는 것도 ‘Aging in Place’라고 볼 수 있다. 익숙한 사람과 공간, 생활권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연속성이다.
어시스트 케어의 목적은 너싱홈이 필요해지는 시점을 무조건 늦추는 데 있다기보다,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하기 전까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주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시스트 케어라는 새로운 시설을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공급할 시니어 레지던스가 입주자의 변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집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건강할 때 입주하고 싶은 집이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집.
집은 사람과 함께 늙어갈 수 있어야 한다.
글. 신문정 건축사해안건축 개발기획본부 (시니어레지던스 TFT 팀장)

신 문 정
해안건축 개발기획본부 (시니어 TFT 팀장) | 건축사
시니어레지던스 분야 실적
- 동작구 시니어레지던스 개발사업 (2026~)
- 부천 요양시설 신축공사 (2025~)
- 구리갈매 역세권 실버스테이 (2025~)
- 과천 막계 시니어 레지던스 복합개발 (2024~)
- 한남동 하이엔드 시니어레지던스(소요한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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