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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공와우의 판도를 바꾼 소리의원 (상)ARTICLE 2026. 10. 1. 15:53
국내 최초 귀 전문 클리닉으로 전문성 확립한 전영명 대표원장,
‘세상의 모든 귀 환자가 오는 병원’으로 세계 청각의료 기준 세울 것!
소리의원 전영명 대표원장 소리의원 전영명 대표원장은 한국 인공와우의 판도를 개인병원에서 바꿔놓은 인물로 손꼽힌다. 2002년, 대학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귀 하나만 보는 병원을 세우겠다고 했을 때 당시 이를 지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작은 한 통의 질문이었다. 1997년부터 2년간 미국 하우스 이어 인스티튜트(House Ear Institute)에서 연수하던 전영명 대표원장은, 그곳에서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아이를 한국에 맡길 수 없어 몇 년째 미국을 오가던 한 어머니에게서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하느냐”는 물음을 받았다. 그 질문이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게 했고, 2002년 국내 최초의 귀 전문 클리닉 <소리이비인후과>가 문을 열었다.
이비인후과에서 전체 환자 가운데 귀 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왜 굳이 귀만 보려 하느냐’는 만류 속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전문성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귀 환자가 가장 오고 싶어 하는 병원’이라는 비전 아래 최상의 진료, 최상의 진료 환경, 선진국형 진료 서비스, 낮은 문턱이라는 네 가지 핵심가치를 세웠다. 전 대표원장은 이 비전을 두고 “병원의 헌법”이라 단언한다.
선택은 숫자로 증명됐다. 개인병원이 곧 무너질 것이라던 시선 속에서 소리의원의 인공와우 수술 건수는 굴지의 대학병원을 앞질렀고, 이후 대학병원들이 오히려 소리의원의 인공와우 센터와 청각재활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다섯 차례 개최한 ‘소리국제인공와우 심포지엄’은 세계 석학들을 불러들였으며, 오스트리아의 한 주임교수는 자신의 새 병원을 설계하며 소리클리닉에서 받은 영감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소리의원은 또 한 번 앞선 자리로 나아간다. 2010년 국내 최초로 EAS(전기음향자극) 수술을 시행한 데 이어, 올해 7월 EAS 인공와우 전문센터를 출범시키며 보청기와 인공와우 사이 사각지대에 놓인 부분 난청 환자에게로 치료 영역을 넓히고 있다. 매거진HD는 이번 인터뷰에서 한 사람의 질문에서 출발한 병원이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전문 클리닉이 되었는지, 그 24년의 선택과 원칙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전문성이라는 단어가 병원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 이번 기록이 그 답을 또렷하게 보여줄 것이다.
인터뷰이. 소리의원 전영명 대표원장
글. 박하나 편집장
사진. 백승휴 작가
1. 소리의원은 2002년 국내 최초의 귀 전문 클리닉 <소리이비인후과>로 문을 연 이래 올해로 개원 24주년을 맞았습니다. 대표원장님께서는 귀 클리닉 1세대를 이끈 선구자이자, 청력을 보존하는 인공와우 수술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명의로 알려져 계십니다. 특히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시다 2002년 개원을 결심하셨습니다.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이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한 뒤 어떤 분야를 전공할지 고민하다가 이비인후과를 선택하게 됐고, 당시 이비인후과가 귀·코·목, 즉 귀 분야와 코 분야, 두경부 분야로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귀 전문 펠로우십이 시작된 지 2~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저 역시 펠로우십을 마칠 무렵, 아주대학교병원이 개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안을 받아 아주대학교병원에서 교수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대학에 계속 남아 교수를 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대학병원에 오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일찍 병원을 나와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개원해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병원의 전문성보다는 우선 좋은 입지를 확보하고, 자신의 타이틀을 갖추면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저 역시 교수직을 특별히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저를 필요로 했고 자연스럽게 교수직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왕 교수가 된 만큼 이 길이 제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30대 중반이었고, 정년을 65세로 생각하면 앞으로 약 30년을 의사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을 10년 단위로 나누어 생각해봤습니다.
처음 10년은 제 자신의 발전을 위해 투자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개인적인 삶의 우선순위는 조금 뒤로 미루더라도 의사로서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그다음 10년은 그동안 제가 쌓은 경험과 역량을 환자들에게 돌려드리는 시간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더 좋은 치료를 제공하고, 당시 한창 성장하던 아이들과 가족에게도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0년은 조금 더 자유롭게, 제가 원하는 의사로 살아가는 시간으로 생각했습니다.
교수로 일한 지 10년 정도가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제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내가 대학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없어도 대학은 잘 운영될 수 있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이죠. 결국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2년, 내가 아니어도 대학에는 똑똑한 후배들이 많고 잘 돌아가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소리의원 전영명 대표원장 2. 그렇다면 교수직을 내려놓고 귀 전문 클리닉이라는 새 길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또 미국 House Ear Institute에서의 연구 경험이 이후 병원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하우스 이어 인스티튜트(House Ear Institute)에서 2년간 연수를 했습니다. 기초 연구를 위해 간 곳이었는데, 당시 이곳은 귀 분야를 전공하는 의사들에게는 일종의 꿈의 병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유명한 의사와 대학 교수들이 펠로우십을 받기 위해 찾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면 각국에서 귀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정도였습니다.
House Ear Institute는 귀 질환 치료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곳입니다. 당시 귀에 착용하는 보청기 기술을 개발했고, 청신경종양 수술에서도 획기적인 치료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청신경종양은 뇌와 가까운 곳에 발생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신경외과적 접근으로 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수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귀를 통해 접근하면 뇌를 직접 손상시키지 않고 종양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House Ear Institute를 설립한 윌리엄 하우스 형제는 이러한 수술법을 발전시켰고, 수술 성공률과 생존율을 크게 높였습니다. 이후 현미경을 활용한 귀 수술 기술 역시 이곳에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인간의 감각기관이 기능을 잃었을 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청각장애는 시각장애와 성격이 다릅니다. 시각장애는 대부분 중도(中途) 장애인 반면, 전혀 듣지 못하는 고도난청은 대부분 선천성입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면 말을 배울 수 없고, 말을 배우지 못하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결국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맙니다.
이러한 청각 기능을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개발된 것이 인공와우, 즉 코클리어 임플란트(cochlear implant)입니다. 기능을 상실한 달팽이관을 대체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로, 의학의 역사에서도 매우 획기적인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ouse Ear Institute는 인공와우 수술을 세계 최초로 시행하고 발전시킨 곳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환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연수하던 중 한국에서 온 한 어린아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아이였는데, 1년에 한 번씩 미국을 방문해 관리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한국에서 온 펠로우라는 사실을 알고 아이의 어머니가 저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였는데, 아이가 미국에서 수술한 뒤 한국에서 관리를 받기 위해 국내의 대표적인 두 병원을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료 수준과 시스템의 차이를 크게 느껴 결국 아이를 한국에 맡길 수 없었고, 몇 년째 직접 미국을 오가며 치료와 관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 질문이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한국에서도 과연 이런 병원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본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대학에 계속 남는 것이 과연 제게 맞는 길인지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제가 없어도 대학은 충분히 훌륭한 교수들이 있고 시스템도 잘 운영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환자를 직접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가르치는 일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데 제 시간과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저에게는 훨씬 큰 행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의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과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대학에 남아야 한다는 미련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제가 2년간 경험했던 House Ear Institute였습니다.
‘과연 한국에도 House Ear Institute와 같은 병원을 만들 수 있을까.’
그 질문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3. 소리의원은 1세대 귀 전문 클리닉 소리이비인후과에서 2세대, 3세대로 진화해왔고, 2012년에는 병원명을 ‘소리의원’으로 바꾸셨습니다. 세대를 거치며 진료 시스템과 공간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병원명을 바꾸신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1세대’, ‘2세대’라는 표현은 사실 제가 처음 붙인 것은 아닙니다. 저희 팀에서 병원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의 패러다임도 조금씩 변화했고, 각 시기의 방향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처음 병원을 시작할 때는 제가 구상한 병원의 방향에 뜻을 같이할 여러 사람을 모으고, 함께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동의를 구해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을 운영해보니 하나의 철학과 방향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유지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병원을 시작한 지 약 8년이 지난 시점에 저는 기존 조직에서 독립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의 이름을 정하는 일도 중요한 고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비인후과’라는 이름을 사용하면 귀·코·목을 모두 진료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런데 저희는 귀, 특히 소리를 중심으로 진료하는 병원이었기 때문에 ‘이비인후과’라는 명칭이 오히려 병원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리의원’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리의원’이라는 이름이 환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생각보다 이름 때문에 혼란을 겪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사나 구성원들이 ‘이렇게 이름을 지어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병원이 무엇을 잘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반대와 우려가 있었지만, 병원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소리의원’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지향하는 방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4. 소리의원은 본원을 비롯해 강동점과 강서점까지 열며 네트워크 병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귀 치료 분야에서 새로운 개념과 수술법, 진료 시스템을 만들며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고, 다수의 임상 실적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소리의원만의 차별화된 진료 프로세스와 운영 시스템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소리의원 네트워크는 일반적인 병원 네트워크와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저희 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함께 일했던 의사들이 독립해 자신의 병원을 운영할 때, 소리의원과 같은 원칙을 공유하며 진료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각자의 병원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되, 소리의원이 추구하는 아이덴티티만큼은 일정 수준 공유하자는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귀만 100%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귀 질환 환자가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일반적으로 10%에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처음 다른 의사들을 영입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왜 굳이 귀만 보려고 하느냐”, “이비인후과의 다른 진료도 함께 하면서 귀를 특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전문성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다른 진료과에도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 병원의 모델을 다른 진료과의 의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안과에서도 녹내장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피부과에서도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의 전문병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 진료과에서 다양한 영역을 모두 진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저희 병원을 보면서 ‘한 분야에 집중해도 하나의 병원으로 성장할 수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의사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전문성은 단순히 의사의 개인적인 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능력만 놓고 보면 저보다 뛰어난 의사는 수천, 수만 명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이야기하는 전문성은 하나의 전략이자 개념이며, 수십 년 동안 병원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입니다.

소리의원 전영명 대표원장 5. 대표원장님께서 병원을 운영하시며 가장 중요하게 지켜오신 경영 원칙이나 비전, 철학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병원 운영과 의료서비스 전반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스스로를 ‘비전 중심의 병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 중심의 경영이 저희 전략의 핵심입니다. 저희 병원의 비전은 ‘이 세상의 모든 귀 환자가 가장 오고 싶어 하는 병원’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고, 네 가지 핵심가치를 정했습니다.
첫 번째는 최상의 진료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귀 환자가 오고 싶어 하는 병원이 되려면 무엇보다 환자의 병을 잘 치료해야 합니다. 따라서 진료의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 가치입니다.
두 번째는 최상의 진료 환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가 있어도 시설과 시스템, 장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풍부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중심의 임상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상의 진료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두 번째 가치로 삼았습니다.
세 번째는 국제적인 선진국형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료 수준이 높고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환자를 대하는 서비스가 부족하다면 환자가 다시 찾고 싶은 병원이 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의료의 질뿐 아니라 환자가 경험하는 서비스의 수준까지 높이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모든 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진료를 제공하더라도 진료비가 지나치게 높아 일부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면 ‘모든 귀 환자가 가장 오고 싶어 하는 병원’이라는 비전과 맞지 않습니다.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자의 문턱을 낮추는 것 역시 중요한 가치입니다.
처음 이러한 비전을 이야기하면 ‘꿈만 먹고 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비전 자체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의사뿐 아니라 모든 전문직 구성원에게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할 것을 요구합니다. 학회에 참석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현장에 적용하도록 합니다. 이미 자격을 갖추고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 계속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병원의 비전에 동의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최상의 진료를 추구한다는 핵심가치를 받아들였다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 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구성원들에게 공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면 저 역시 그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결국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비전을 세우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전은 병원의 헌법과도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뀌는 목표가 아니라, 병원이 오랜 시간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전과 목표를 혼동합니다. ‘최고의 병원이 되겠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나 구호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전은 쉽게 달성할 수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꿈은 이루는 것보다 꾸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이룰 수 있는 꿈이라면 애초에 꿈을 너무 작게 잡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더 큰 꿈을 세우고, 그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의원의 가장 큰 차별점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많은 투자를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생기고, 때로는 큰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순간에도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입니다.
저희는 결국 하나의 전문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택과 집중 없이는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분명하다면 그 방향을 놓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소리의원이 다른 병원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6. 대표원장님께서는 국내외 귀 질환 석학들이 참여하는 ‘소리국제인공와우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셨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학술 행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심포지엄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의미와 효과는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소리국제인공와우 심포지엄’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총 다섯 차례 개최했는데, 저에게는 이 다섯 번의 심포지엄이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의미 있었던 것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수술을 직접 보면서 국내 의료진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세계 최고의 서전들이 하는 수술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했지만, 직접 라이브 서저리를 보고 함께 교류하면서 오히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의사들이 마치 하늘처럼 바라보던 세계적인 의사들이 직접 와서 수술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도 수술 과정에서 실수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직접 확인하면서 국내 의료진 역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심포지엄에 참여했던 젊은 의사들이 이후 중견 의사로 성장해 인공와우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지금도 당시 심포지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계적인 전문가의 수술을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교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심포지엄에는 House Ear Institute의 의사들도 초청했습니다. 지금은 House Ear Institute가 과거와 같은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인공와우 분야를 이끌던 뛰어난 의사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약 10명이 한국을 찾아와 이틀에 걸쳐 라이브 서저리를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세운 비전은 처음부터 국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직접 초청해 저희 병원에서 수술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분들이 저희 병원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청각재활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청각재활은 저희가 오랜 시간 집중해온 분야이기도 하고,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개인 클리닉에서 어떻게 이 정도 수준의 청각재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례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한 유명한 이비인후과 외과의가 심포지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을 둘러본 뒤 상당히 놀라워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당시에는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약 2년 뒤 그분이 새로운 의과대학으로 스카우트돼 주임교수로 가게 됐고, 저를 오스트리아로 초청했습니다. 그곳에 갔더니 그분이 자신의 은사인 80대의 원로 교수에게 저를 소개하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새로운 병원을 설계하면서 한국의 소리클리닉을 직접 보고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병원 디자인에 여러 요소를 반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의료환경과 병원 시설은 해외의 선진 병원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진이 직접 저희 병원을 방문하고, 지금보다 시설이 부족했던 당시의 병원을 보면서도 공간과 운영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그분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환자를 중심에 두고 의료의 본질과 기능에 집중한,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인 공간과 시스템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은 단순히 럭셔리하고 화려한 공간보다 그 안에 담긴 본질과 개념을 먼저 바라본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온 방향이 세계적인 기준에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7. 이처럼 소리의원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병원이 되었습니다. 대학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서 이러한 성과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의원이 인공와우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귀에는 난청, 청각재활, 보청기와 인공와우, 어지럼증, 이명, 선천성 귀 질환 등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대학을 떠날 때도 이런 여러 분야 가운데 제가 꼭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것은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과연 나에게 맡겨진 사명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공와우를 하는가.’ 처음에는 House Ear Institute에서 만났던 환자 어머니의 이야기가 출발점이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렇다면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것이죠.
당시 저희가 인공와우 수술을 시작했을 때 대학병원들은 저희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중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공와우는 당시 이비인후과, 특히 귀 분야의 의사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수술 가운데 하나였고, 병원의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대학병원에서도 인공와우 수술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와우 수술은 생각처럼 쉽게 정착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인공와우 수술을 시행하던 병원도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일부 대학병원에 한정돼 있었고, 지방에서는 동아대학교병원과 경북대학교병원 정도였습니다.
환자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병원조차 어려움을 겪던 분야였기 때문에 개인병원이 인공와우를 전문적으로 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개인병원이 과연 가능하겠느냐’, ‘조금 하다가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 병원이 오히려 삼성서울병원보다 더 많은 인공와우 수술을 시행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대학병원들이 저희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개인병원에서도 인공와우 수술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습니다. 인공와우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술 자체가 아니라 통합적인 재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인공와우는 수술만 하고 끝나는 치료가 아닙니다. 부모 교육이 필요하고, 환자의 지속적인 청각재활이 필요하며, 환자와 가족이 서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진정한 치료가 완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대학병원들이 저희 병원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공와우 센터를 만들고 청각재활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해 의료진을 보내기도 했고, 저에게 병원이나 센터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자문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 병원이 의도했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병원도 충분히 높은 수준의 인공와우 치료와 재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 모델이 대학병원으로 확산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병원들이 저희가 하던 것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우리가 계속 앞서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병원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만을 경쟁력으로 삼았다면 결국 언젠가는 추월당했을 것입니다.
어떤 기업이나 비즈니스도,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최고라고 해서 영원히 최고일 수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곳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또 다른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병원과 비교했을 때 저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있어봤기 때문에 대학병원의 시스템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필요성을 주장해도 조직 전체를 움직여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면 저희는 제가 ‘이것을 바꿔보자’고 결정하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다음 날부터 새로운 방향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희 병원이 가진 가장 큰 강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박하나 편집장, 소리의원 전영명 대표원장, 노태린 발행인 8. 올해 7월에는 EAS(Electric Acoustic Stimulation) 인공와우 전문센터를 출범하셨는데, 센터가 맡게 될 역할과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답변한 내용에 이어 우리는 또 다른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인공와우 치료의 다음 단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인공와우는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청각을 제공하는 수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의학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뿐 아니라, 어느 정도 청력이 남아 있지만 더 잘 듣기를 원하는 사람에게까지 치료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력이 60~70% 정도 남아 있는 사람의 경우, 현재 상태에 어느 정도 만족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말 삶의 100%를 만족시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처럼 더 잘 듣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사회생활도 더 원활하게 하고 싶어 합니다.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과, 방법이 있음에도 치료받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의사의 역할은 ‘안 된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방법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환자에게 열어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부분 난청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부분 난청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젊은 시절부터 소음에 노출되는 환경이 늘면서 소음성 난청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유전성 귀 질환 역시 부분 난청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청기는 청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 사용하고, 인공와우는 청력을 거의 또는 완전히 잃은 사람에게 시행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중요한 치료의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바로 부분 난청 환자를 위한 EAS(Electric Acoustic Stimulation)입니다.
EAS는 보청기와 인공와우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입니다. 기존의 인공와우는 남아 있는 청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청력을 잃은 환자에게 전극을 달팽이관에 삽입해 손상된 청각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력이 60% 정도 남아 있는 환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굳이 남아 있는 청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청력이 좋으니 나중에 오라’고 하면, 몇 년 뒤에는 이미 너무 늦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40대, 50대, 60대는 사회생활이 가장 활발한 시기입니다. 그 시기에 더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 세계적으로 일부 뛰어난 의사들이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희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EAS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2010년 우리나라 최초로 EAS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쉽게 배울 수 있는 수술은 아니었습니다. 수술 자체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충분한 경험을 쌓기도 어렵습니다.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없기 때문에 수술에 대한 확신을 갖는 과정 역시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충분한 준비와 경험, 그리고 세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인공와우 치료와 청각재활 시스템은 많은 대학병원이 저희를 벤치마킹하면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EAS와 같은 새로운 영역은 쉽게 따라올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봅니다.
저희 역시 지난 10여 년 동안 이 분야를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팀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수술을 정말 환자에게 권할 수 있는 수술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 스스로 정직하게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가 자신은 확신하지 못하면서 환자에게 수술을 권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면 이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환자에게는 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됩니다.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정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이 분야에 집중하는 이유도 병원을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저희가 세운 비전을 실현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당장은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 치료가 실제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그 가능성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저희가 축적해온 데이터를 다시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확신도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EAS를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문센터를 출범한 것입니다. 연구팀도 새롭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2년 안에 그동안 축적해온 연구 결과를 정리해 세상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열어주는 것, 그것이 앞으로 저희가 집중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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