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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교수의 '맛있는 집'] 해녀의 부엌volume.39 2023. 10. 3. 23:32
작년 제주 여행 중 공연과 다이닝을 접목한 ‘해녀의 부엌’을 TV뉴스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여행 기간 중에는 이미 만석이어서 다음을 기약했는데, 운 좋게(?) 예약이 되어 이번 여행에서 방문하게 되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자리한 공간은 약 30년 전에 어판장으로 지어졌고 이후 오랫동안 창고로 방치되다가, 해녀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해녀들과 함께 자란 30대 초반의 한 젊은이에 의해 3년 전 공연장 겸 식당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예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출신의 그녀는 비슷한 연배의 예술인들과 일종의 스타트업을 결성해서, 연출, 조명, 음악, 무대 장치 등을 분담하였다고 한다. 단순히 해녀들이 잡아 온 해산물로 만든 음식을 내어 놓는 식당이 아니라, 음식에 ‘해녀들의 진솔한 삶과 애환’이라는 스토리텔링을 덧입혀 창의적인 문화, 예술 콘텐츠를 개발하였다.
가운데가 비어 있는 ㄷ자 모양의 식탁 한편에 자리를 잡으니 이내 여성 배우 두 명이 꾸려가는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 내용에 맞추어 먼저 식전 음식으로 밀가루로 만든 술떡 같은 ‘상외떡’이 제공된다. 무대 화면에는 떡 만드는 장면이 나오고, 배우는 제사상에 올리는 것과 올리지 않는 것을 구분해 ‘상에떡’, ‘상외떡’으로 불린다고 설명한다.
두번째 음식으로는 쫄깃쫄깃한 식감의 뿔소라 꼬치구이가 나왔다. 껍질 표면에 튀어나온 뿔을 바위에 끼워 넣어서 제주의 거친 풍랑에서 버텨내는 것이 거친 파도 속에서 물질하는 제주 해녀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닮았다고 하는데, 뿔소라 꼬치는 제주의 혼사에는 꼭 제공되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해녀들이 힘들게 채취한 뿔소라는 그동안 제값을 받지 못하고 일본에 싼값으로 수출되었다고 하는데, ‘해녀의 부엌’ 팀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제값을 받고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약 한시간 동안 두 명의 배우가 해녀의 고달픈 삶과 애환을 이야기하듯 풀어낸 후 드디어 한상 차림이 제공되었다. 한상에는 고구마밥에 조배기 (메밀가루로 만든 수제비의 제주 방언) 미역국’이 나왔는데, 조배기 미역국은 만삭인 해녀가 물질하다가 갑자기 산통이 오면 배위에서도 출산하는 경우가 있었다는데, 그런 해녀들에게 최고의 산후조리 음식이었다고 했다.
반찬으로 나온 밍밍한 톳 무침은 몇 달 전 아내가 만들었던 으깬 두부-톳 무침 보다는 못하였지만 제주 자연산이라 신선한 느낌이 들었고, 어릴 적 부산에서는 ‘군수’라고 불렀던, 쫄깃하고 쌉사름한 맛의 군소-오이 무침도 맛있었다. 돔배고기(도마에 얹은 돼지고기 수육)와 신선한 제주산 갈치와 무 그리고 입맛에 딱 맞는 양념의 조합으로 완성된 갈치조림은 입안의 감각 세포 하나하나에 행복감을 느끼게 하였다.
식사 후에는 “우리한테 바다가 뭐냐고? 뭐긴, 우리 부엌이지”라고 말하는 해녀들의 진솔한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가 상영되었다.
‘해녀의 부엌’은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의 저자인 모종린교수가 언급한 ‘지역, 거리, 골목의 특성을 창의적으로 살려 콘텐츠나 공간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지역 문화를 창출하는 로컬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것 같다. 또한, 수익금의 일부는 종달리 어촌계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고 하니, 이들의 진정성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글. 박효진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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