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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북촌화첩volume.39 2023. 10. 4. 04:18
600년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정체성은 한양도성을 비롯하여 오래된 궁궐건축과 면면히 이어져 온 전통한옥들이 잘 나타내준다. 특히 북촌과 서촌에 남아있는 가옥들은 주민들의 삶과 일상으로 이어지며 오랜 역사를 지닌 서울의 자랑거리 중에 하나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 북촌 한옥마을을 주제로 홍보용 탁상 캘린더를 제작했는데 그때 우연히 기회가 되어 북촌풍경 그림을 그려서 재능기부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서울에 보존되고 존치된 전통가옥들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경사진 골목길을 답사하면서 한옥들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은 나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을 통칭하여 '한옥'이라고 한다. 이러한 한옥들과 골목길 풍경을 몇 장 소개하며 독자들께 답사를 권유하고 싶다. 서울 시민들은 잘 알고 있는 친근한 장소들이지만 스케치를 통해서 본 한옥 풍경들은 조금 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을 전달해 준다.
사무실과 지근거리에 위치한 북촌은 늘 가깝고도 친근하다. 종로와 청계천의 윗동네라 하여 ‘북촌’이라고 불리어진 이 동네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가회동과 삼청동 지역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주거지였던 이곳은 오래된 전통가옥들과 골목길, 그리고 옛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경사진 골목길과 계단을 오르며 답사하는 일도 이 곳 북촌에서는 놀이처럼 느껴진다. 전통담장의 문양이며 처마, 서까래, 창살, 대문장식 등 숨겨진 전통미를 하나씩 발견하며 돌아보기 때문이다. 북촌의 또 다른 감상포인트는 기와집들이 중첩된 풍경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 중 군집미를 대표한다.
“무채색의 기와지붕들이 이뤄내는 거대한 합창은 도시 속에서 차라리 하나의 인공적인 숲이고, 역사로 다가온다.”라고 한예종의 김봉렬 교수가 표현한 한옥의 집합적 아름다움에 무한 공감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들 사이로 처마가 보이는 골목길에는 여유로움이 담겨있다.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어서 조용한 주거지를 원하는 주민들에게 다소 피해를 주었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발걸음이 현저하게 줄어들더니 최근에는 다시 관광객들의 찾고 있다. (2,2-1).
한옥은 4계절 모두 스토리텔링이 있는 풍경채집이 가능하다. 봄날 연산홍이 피어나는 인촌기념관의 안 뜰,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날의 가회동 경사길, 홍시감이 영그는 가을날, 낙엽이 떨어지는 북촌의 골목길, 각 계절이 모두 좋지만 특히, 눈이 내리는 한옥지붕은 아름다움이 더욱 선명하다. 골목길에 시간에 따라 중첩되며 찍히는 발자국이 어지럽다.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북촌문화센터의 담장너머에 봄이 멀지 않음이 느껴진다. 겨울이 지나고 북촌에 다시 봄이 왔다. 한겨울, 추위를 툭툭 털고 볕이 잘 드는 창덕궁의 담장 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며 봄을 기다리는 행인들의 발걸음은 한가롭다.
이렇듯 사시사철, 한옥의 아름다움은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공간도 단아함으로 나타난다. 시각적 디자인도 우수하지만 창호지로 바른 미서기문과 대청마루가 제공하는 열림과 닫힘의 융통성, 그리고 소통의 공간개념은 다목적의 장소로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북촌의 한옥으로부터 교훈은 곧 현대건축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대지의 효율과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용적률과 건폐율사이에 최대 공약수를 찾아서 지어지는 현대건축물은 우리에게 과연 좋은 도시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어느덧 우리는 단지 확보한 면적이 곧,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체계를 지향하는 현대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도시는 고밀도일수록 도시 경쟁력이 생긴다지만 그럴수록 공원이나 운동장 같은, 상대적으로 비워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북촌의 주거 밀도는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오래된 주거건물들은 모두 마당을 공유하고 있다. 이 마당이라는 중간영역은 동네 혹은 도시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기능한다. 이 비움의 공간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정서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일지도 모른다. 이 마당은 장소적으로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의 매개체로서 중성적 개념이 강하며 이곳을 통하며 자연스럽게 공간의 전이를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의 전통건축에도 나타나는 마당은 비워있음으로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고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든다.
그 그릇의 빔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 노자 도덕경 11장 -
이처럼, 북촌의 한옥마을을 비롯한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많은 전통건축들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소중한 보석처럼 박혀 존재하는데 즉, 오래된 민가마을과 전통사찰, 그리고 서원(書院)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국에 흩어져있는 9개의 서원들은 성리학의 이념으로 설립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문화재로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러한 전통건축은 답사할 때마다 옛 선인들의 장인정신과 지혜를 배우게 되고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것은 단지 옛날 집이 아니라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전통가옥 중에는 개조되어 현대인의 삶으로 이어지며 생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집도 있지만 박제가 되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로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한옥들을 개조하고 성능을 개선하여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아가서 고유한 한옥문화와 전통적인 건축미를 다양한 콘텐츠로 개발하여 미래를 견인하는 한국의 새로운 문화로 재창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네 전통문화의 계승과 재창조야말로 세계적인 무대에서 독창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자랑이며 새로운 미래를 여는 문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방식으로 전통한옥에 대한 재창조의 길을 찾아 걷고 있다. 서울의 전통건축들을 찾아 꾸준히 걷고 느끼고 그린다. 즉, 그림으로 기록하고 역사를 찾아보고 느낀 점을 소감을 적는 일이지만 나의 작은 재능으로 한옥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이제 시나브로 가로수는 옷을 벗고 다음 계절을 준비 중이다. 선조들의 지혜를 찾는다면 우리네 삶도, 건축공간도 새롭게 진화해 나갈 것이다. 북촌의 한옥마을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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