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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Column] 함혜리의 힐링여행 #2volume.39 2023. 10. 4. 05:15
남프랑스 기행 #2
보르도 현대미술관보르도에 가면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보르도 현대미술관 (CAPC, Musée d’Art Contemporain de Bordeaux)이다.
1990년 개관한 현대예술문화센터인데 19세기까지 창고로 쓰이던 곳을 현대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창고 건물이 그렇듯이 투박한 덩어리의 3층 벽돌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 딴 세상이 펼쳐진다.
건물은 1824년 클로드 데샹 Claude Deschamps이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해상운송창고 건물이다. 설립자이자 초대 관장 장 루이 프로망이 보르도 시의 후원을 받아 문화공간으로 개조했다. 건축가 드니 발로드, 장 피스트르가 리모델링하고 내부 건축은 앙드레 푸트만이 작업했다. ‘창고 Entrepot’ 본연의 역사를 남기기 위해 내부 벽에는 19세기 창고 인부들이 써 놓은 낙서도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하는데 방문 시 육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현관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높은 천정과 함께 290평 규모의 광활한 공간이 느닷없이 들어온다. 특별한 장식도 없이 수직으로 솟은 듯한 높은기둥들과 천정의 궁륭, 높이 난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둔탁한 내부를 비추면서 마치 허물어진 성당에 들어온 듯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중앙 전시홀 Grande Nef로,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을 초대해 특별 기획전을 연다.
내가 방문했을 땐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현대미술작가 잔 보 (DANH Vo, 1975~)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베트남계 덴마크 국적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잔 보(혹은 얀 보). 4살 때 가족이 베트남을 탈출해 보트피플로 망망대해를 떠돌다 덴마크 국적 머스크호에 의해 구출돼 덴마크에 정착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어린 시절 난민이 된 가족사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주로 사진, 뼈 등 오래된 사물들을 이용해 과거의 맥락 속에서 개인사를 다루면서 문명과 사회를 에둘러 비판한다. 보르도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은 대리석산에서 발굴 작업을 한 결과물들인지 (실제로 했을지도 모른다), 돌덩어리와 유물들을 설치했는데 난해하지만 멋진 작품이었다.
중앙 전시홀 양측으로 난 계단으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긴 회랑이 마치 수도원처럼 침묵 속에 펼쳐져 있다. 양측으로 상설전을 하는 갤러리들이 이어진다.
현대미술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미술관의 주인공은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리처드 롱(Richard Long, 1945~)인 듯했다. 리처드 롱은 세인트마틴 미술학교 출신으로 조각가로 대지와 자연을 이용한 설치미술(대지예술), 개념미술을 주로 한다. 자연적인 지형에 돌을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놓는 게 그의 독특한 작업방식이다. 리처드 롱의 작품이 미술관 3층 옥상 공간에 설치돼 있다. 흰 돌을 깔아놓은 것과 검은 돌을 깔아 놓은 것이다. 1990년 작품 ‘ White Rock Line’ ‘Black Rock Line’인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말없이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는 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3층 뮤지엄 레스토랑의 마주 보는 벽화 2개도 리처드 롱이 드로잉 한 Circle이다.
리처드 롱의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는 젊었을 때부터 지구 위를 걸으며 돌을 옮기고,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일렬로 늘어놓기도 하고 원형으로 돌들을 쌓기도 했다. 위의 Circle은 그의 텍스트 작업 중에 이런 것도 있다. ‘5일간 걷기’라는 제목인데 내용은 이렇다. ‘첫째 날 10마일, 둘째 날 20마일, 셋째 날 30마일, 넷째 날 40마일, 다섯째 날 50마일‘. 텍스트의 디자인과 이미지를 함께 봐야 하니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보길 권한다. (보르도 현대미술관 웹사이트 http://www.capc-bordeaux.fr/actuellement)
‘걷는 돌 Walking Stones’이라는 작품은 대서양의 해안에서 북해 해안까지 영국을 횡단하며 작업한 작품이다. 총 382마일을 11일간 걸으며 돌을 날랐다. 첫날 한 개의 돌을 집어 둘째 날 여정 중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다른 돌을 주워 다음 날 내려놓고, 다시 다른 돌을 주워 다음날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다른 돌을 줍는 식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롱과 함께 돌들이 걸은 셈이다. 현대미술은 아이디어와 재료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롱의 작품을 보면 그 말이 실감이 난다.
과거의 건물과 현대미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보르도 현대미술관을 생각하면 지금도 처음 들어섰을 때의 강렬한 첫인상과 햇살이 눈부신 옥상에서 마주친 리처드 롱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글.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문화예술 전문 온라인 매체 <컬처램프> 발행인.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 제2대학에서 언론학 박사과정(D.E.A.)을 마쳤다. 30년 일간지 기자 경력을 살려 문화와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 차례에 걸친 프랑스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쓴 프랑스 사회비평서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2009),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아틀리에, 풍경』(2014), 유럽 유수의 미술관 건축을 소개하는 『미술관의 탄생』(201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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