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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Column] 예민한 사람이 마음 편하게 사는 법volume.33 2023. 4. 1. 03:54
일레인 아론이라는 학자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매우 예민한 사람)’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런 예민함은 단순히 타고나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황을 겪으며 살아왔는지에 따라 심해지기도, 덜해지기도 한다. 예민한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은 일반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HSP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느냐’고 비난하지 말길 바란다. 이들은 교감신경계가 과각성돼 있거나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진 경우가 많은데 스트레스 호르몬에 과다하게 노출되면 우울, 공황 위험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예민함은 삶의 고달픔과 양의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다.
정신과 진료실에 오는 분들은 대다수가 “내가 너무 예민한 것 같아요”라며 스스로를 탓한다. 예민한 것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예민한 것이 나쁜 것인가? 모든 성격이나 기질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동전이 양면과 같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섬세한 사람들은 모든 감각에 일반인들보다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예민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예민함의 스위치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예민함은 능력이 된다. 나만의 예민함의 스위치를 끄고 싶다면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극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흑백논리, 즉 ‘all or nothing’에 가까운 편협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쉽게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거나,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이 강한 부류인데, 생각의 전환을 이렇게 해보자. ‘그래! 사람이 다 그렇지.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사람이 다 나와 같을 수는 없다.
예민해서 삶이 고달프고 피곤한 분이 있다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첫째, 모든 상황을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려라. 어떤 상황이든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는데 자신에게 꼭 불리한 생각만 선택하려 든다.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는 3 대 1의 비율을 추천한다.
둘째, 자기 중심성을 버려라. 자신의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상사는 단지 업무적으로 주의를 준 것일 뿐 상처를 주려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제3자의 입장에서 예민해지고 상처받았던 상황들을 살펴보는 작업이 바로 심리치료의 과정이다. 그 훈련으로 효과적인 것은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상처받은 며느리는 자신이 시어머니가 됐을 때를 상상해보면 그 상황에 대한 객관화가 쉬워진다.
셋째, 예민함을 누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은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다. 불안이나 예민함에 더 붙들리지 않고 ‘생각과 감정은 바람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안한 감정도 날씨 같아서 어느 날은 심해지고 갑자기 개기도 한다. 예민함에 붙들려 삶을 고달프게 만들지 말라. 그러나 예민해졌을 때는 생각의 꼬리를 물게 되고 우리 뇌에서도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런 상태를 벗어나는 것은 호흡과 수면이다. 호흡이나 수면으로도 조절되지 않는 예민함은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처방받길 권한다. 평정심과 행복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은 향정신성 약물이 아니므로 중독이나 의존의 염려 없이 예민함을 줄여준다.
정신의학은 과학이다. 예민함에 대해 자책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흔히 관계가 가까울수록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하는 식으로 예민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식의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가해자들이 항상 있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는 분들에게 항상 위로해주는 말이 ‘당신이 예민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너무 한 거다.’ 였다. 이 말이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 한 거야>라는 책 제목이 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많은 분들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예민해지면서 단단한 마음력을 가져야 하는 자생의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 상사(또는 부하)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는데, 그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가도 똑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직장을 그만두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지 않고 단단한 마음력을 가질 수 있을 수 있을까?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잘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감정적으로 갑을관계에서 을을 자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내가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과 잘 지내려고 하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하는데, 잘 보이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가 수직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패턴이 반복된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지금 내가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인가? 먼저, 잘 지내고 싶다면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2단계로는 상대방에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선 단호하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선이 있어야 한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더라도 이 부분은 꼭 지켜야만 하는데 이런 단호함 없이 참고 넘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고 오히려 무례하게 보인다. 3단계로는 객관적으로 그런 인연을 끌고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관계를 멀리하거나 손절할 수 있다. 차단할 수 없는 관계라면 그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내 시간적 여유와 의사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심리적 거리를 확보해 두는 단계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이라는 개념에 많이 익숙해졌다. 포스트 코로나에는 심리적 거리두기(psychological distancing)을 통해 상처를 주는 사람들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마음의 백신을 맞을 차례이다.
글.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초좋은의원, 굿이미지 심리치료센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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