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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러시아 예술의 성지, 상트페테르부르크volume.33 2023. 3. 31. 18:52
러시아 예술의 성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의 시인인 푸쉬킨이 '유럽을 향해 활짝 열린 창'이라고 이야기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에 대한 교역을 꿈꾸며 만들었던 러시아 제2의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고전양식을 가진 성당, 궁전, 광장, 첨탑, 정원들로 빼곡히 채워져서 도시는 볼거리도 많고 잘 정돈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는 대신들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한 도시계획 의지로 신도시를 건설했고 자신의 무모한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북방의 베니스' 혹은 '물의 도시'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이 도시는 암스테르담을 벤치마킹하여 해수면보다 낮은 땅에 많은 운하를 만들고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한다는 당찬 계획으로 무려 15만 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그는 서유럽에 뒤처진 러시아의 열등감을 해소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상트의 백미,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루브르박물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답게 방대한 물량의 전시품(300만여 점)과 크고 화려한 전시공간에 놀라고 작품관람을 위해 모여드는 관광객들의 인산인해에 또 한번 놀란다.
특히, 예술품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예카테리나 여제는 각 식민지에서 약탈하지 않고 작품들을 구입하여 수집했다고 하니 그녀의 예술적 안목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외에도 성 이삭 성당, 카잔성당, 피의 사원은 장엄하고도 거대한 종교건축 3종 세트로 보석처럼 이 도시에 박혀있다. 이 중 피의 사원은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성당을 떠올리게 하는데 동일한 건축가 알프레드 파를란의 설계로, 성당 이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동화 속 궁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운하를 따라 도열되어 있는 건축물들은 르네상스의 디테일에 충실하고 고전적인 비례감이 충만하다. 수로의 물과 어우러진 고전건축의 조화는 환상의 궁합이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공연 한 편을 감상하는 것도 러시아 문화 체험의 중요한 방법이다. 특히 백야 시즌에는 밤늦게 공연을 마치고도 밖은 초저녁처럼 환한데 이런 독특한 체험도 추억의 단편으로 남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약 30km 떨어진 곳 빼째르코프에 위치한 여름궁전은 표트르 대제의 여름휴가를 위한 장소다. 또 푸쉬킨 시에 위치한 예카데리나 궁전답사도 빼놓을 수 없는 여정이다. 이 두 곳의 공통점은 화려한 왕족의 삶을 잠시 엿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여름궁전의 잘 가꾸어진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신세계가 열린다. 급격한 지형을 활용하여 조성된 황금조각상과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는 계단식 분수를 지나면 바다 해안까지 아름다운 물의 정원이 펼쳐진다. 건물과 조경의 규모는 당시의 권력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푸쉬킨 시로 이동하여 예카테리나 궁전의 드넓은 정원을 찾은 관광객들은 아마도 누구나 이 궁궐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한 번쯤 느껴보고 싶어진다. 방문객들의 느릿느릿한 발걸음조차 귀족처럼 여유와 품격이 있어 보인다. 마차를 빌려서 타고 넓은 정원을 한 바퀴 도는 방문객들은 왕족의 체험을 직접 해보고 싶어서일까? 드넓은 인공호수에는 물오리 가족들이 평화롭다. 느릿한 걸음으로 산책하는 내내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마다 풍경화가 한 장씩 만들어진다.
지어진 지 오래된 붉은 벽돌 성당의 빈티지한 매력 때문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예정에도 없던 번개 답사의 기억도 흥미롭다. 상트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흔들리며 그렸던 그림이다. 도시를 이동 중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러시아 특유의 넓은 하늘과 뭉게구름들을 품 안에 가득 안고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이 일품이다.
아내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신청했던 죽음의 결투에서 서른여덟의 시인 푸쉬킨은 짧은 생을 마감한다. 결국 욱하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노여움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그의 아이러니한 시는 아직 우리 귓전에 생생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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