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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의 병원 중간관리자 이야기] 태움은 왜 유독 병원에서 생기는가ARTICLE 2026. 7. 3. 08:18
필자가 병원에서 24년을 일하는 동안, '태움'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병원 밖 사람들은 이 단어를 대개 인성의 문제로, 혹은 세대의 문제로 읽는다. 모진 선배와 버티지 못하는 후배. 하지만 현장을 오래 지켜본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태움은 특정한 사람의 문제이기 이전에, 특정한 조건을 가진 조직에서 반복적으로 생겨난다.
병원은 긴장도가 극도로 높은 조직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 긴장 자체는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없애서도 안 된다. 환자를 지키는 힘이 바로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위에 또 하나의 조건이 겹친다는 데 있다. 누가 무슨 일을 어디까지 하는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 병원은 일을 분명하게 나눠주기보다 선배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게 하는 곳이었다. '알아서 배워라', '눈치껏 해라'가 곧 교육이었고, 그래서 업무의 경계가 늘 정해지지 않은 채로 굴러갔다.

이 두 가지가 겹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극도의 긴장이 정해지지 않은 일과 만나면, 그 압박은 시스템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쏠린다.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은 일이 결국 누군가의 몫이 되고, 압박이 한계까지 쌓이면 일이 아니라 사람을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터진다. 그게 태움이다. 분명히 해두자. 태움은 나쁘다. 사람이 사람을 악의로 괴롭히는 일에 변호의 여지는 없다. 다만 짚어야 할 것은, 병원에 정작 필요했던 것은 '긴장' 자체였다는 점이다. 그 긴장은 그 자체로 의료사고를 막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수술방에서 집도의가 사소해 보이는 실수 하나에 날카로워지는 것도, 그 밑바닥에는 '이 작은 것이 환자를 잃게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화를 내는 방식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선이 갈린다. 긴장이 '일'을 향하면 안전을 지키는 힘이 되지만, 그 긴장이 '사람'을 향해 인격을 깎아내리는 순간 태움이 된다. 같은 강도라도 과업을 겨누느냐 사람을 겨누느냐, 그것이 둘을 가른다. 문제는 그 필요한 긴장을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풀어 왔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필요한 긴장은 유지하되, 정해지지 않은 일을 구조로 정리하는 것이다. 출발점은 역할 정의다. 각 자리가 무슨 일을 어디까지 책임지는지 한 줄로라도 적어두는 것. '알아서'의 영역이 줄어들수록, 압박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 쏠릴 자리도 함께 줄어든다.
다음은 일을 나누는 것이다. 데스크 마감, 비품 관리, 환자 동선 정리, 컴플레인 1차 응대처럼 그동안 눈치껏 하던 일을 담당자와 당번으로 눈에 보이게 만든다. 특히 누구 일인지 애매한 그레이존 업무에는 '기본 담당'과 '백업'을 함께 지정해, 한 명이 모든 것을 떠안거나 반대로 아무도 손대지 않는 상황을 막는다. 여기에 에스컬레이션 경로(어디까지는 현장에서 처리하고 어디부터는 위로 올릴지)를 정해두면, 긴장이 한 사람에게 고이지 않고 구조를 따라 흐른다.
이 정리를 실제로 설계하고 굴리는 자리가 중간관리자다. 위에서는 성과를 요구하고 아래에서는 사람이 흔들리는, 진료를 뺀 거의 모든 충돌이 모이는 자리다. 정해지지 않은 일을 구조로 바꾸고, 압박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을 향하도록 설계하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거꾸로 이 자리가 비어 있으면, 흩어진 일은 다시 누군가의 몫이 되고 태움이 자라던 조건은 그대로 남는다. 태움을 사람의 문제로만 보는 한, 그 악순환은 끊기지 않는다.
긴장을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푸는 것, 그것이 태움을 막는 시작이다.

정 경
·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 협회장
· 바스제로 컨설팅 대표
· 경영컨설턴트 · 전문면접관
24년간 병원 현장을 지켰다. 직원이었고, 팀장이었고, 중간관리자였다. 중간관리자는 단순하게 연차가 쌓여서 되는 자리가 아니라 병원의 경영파트너로 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바스제로 컨설팅 대표이자 경영컨설턴트로,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다. 조직에 필요한 AI 직무교육, 중간관리자 교육, 면접관 교육을 설계하고 진행하며, 의료기관과 기업을 대상으로 강의와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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