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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명동성당volume.42 2023. 12. 12. 23:43
해마다 12월이 되면 명동거리는 분주해진다. 성탄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보기도, 새해를 기약하기도 한다. 불우이웃을 돕는 구세군의 종소리에 지갑을 여는 넉넉함이 생기고 최근에는 뜸해졌지만 명동의 거리와 상가들마다 반짝이는 성탄트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도 추억의 단편으로 소환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이 곳 명동에 시끌벅적한 상업시설과는 대비되는 고요하고 성스러운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사제관, 수녀원 등으로 구성된 가톨릭 클러스터는 오랜 역사를 지닌 명동의 또 다른 정신적 장소다.
몇 해 전에 명동성당 주임신부님을 우연히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명동성당을 스케치나 그림으로 기록해두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셨다. 그 이후 사무실과 지근거리의 명동성당을 자주 답사하게 되었고 성당 뿐 만 아니라 사도회관을 비롯한 부속건물들도 레트로 감성으로 친숙해졌다. 특히 외장 재료로 사용된 적벽돌의 치장쌓기 디테일에서는 벽돌공의 놀라운 숙련이 느껴졌고 여러 가지 다양한 색상과 종류의 벽돌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까이 보아야 예쁘고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처럼 건축도 자주 방문하고 자세히 볼수록 그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건축가들은 아름다운 건축에서 영감을 얻고 감동을 느끼는데 명동성당은 역사적으로도, 건축적으로도 완벽한 건축물이다.
“Without love, We have nothing.”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볼 때마다 경외감이 느껴지는 명동성당을 다양한 분위기와 계절감으로 표현하고자 주말마다 그림에 몰입했다. 작가는 대상을 보고 마음이 일체가 되어야 그림으로 표현한다. 내 재능의 한계로 그 성스러움과 장엄한 분위기를 다 표현하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성당을 스케치로 기록하는 시간만큼은 보람과 성취를 느낀다. 명동성당은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여 1898년에 완성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명동의 랜드마크다. 수직적인 종탑의 조형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경건함을 상징하고 있다. 명동의 역사와 장소적 가치의 중심이 되는 ‘사적 258호, 명동성당’의 히스토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명동의 조선시대 지명은 명례방이었다. 주로 몰락한 양반이나 가난한 선비들의 거주지였으며 남촌이라 불렸다. 조선 개국 이래 명동의 변화는 명동성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명동에서 제일 높은 명례방 언덕에 1898년 5월29일, 고딕건축양식으로 ‘종현성당’이 축성되었다. 당시에 대성당의 건립은 그 이전 조선 후기 100여 년 동안 모질도록 박해를 받아왔던 한국 천주교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획득했다는 의미다.
성당 건립을 계기로 한적했던 명동의 경관이 바뀌고 단번에 수직적인 종탑은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뾰족지붕의 이미지로 각인된 고딕양식의 명동성당은 천주교인들 뿐 만 아니라 전 국민들에게 평화의 상징으로, 자유와 민주의 성지로 여겨진다. 명동성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벽돌건축의 하나인 주교관과 교육관, 수녀원, 도서관, 가톨릭회관 뿐 아니라 최근에 지은 교구청 신관과 문화 홀 까지 많은 건물들이 클러스터를 이루어 명동의 오랜 역사와 장소성을 대표한다. 특히 명동성당보다 먼저인 1890년에 지어진 주교관은 초기에 주교숙소와 사무실, 출판사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사도회관으로 변신되었고 최종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가톨릭 역사의 중요한 많은 유산과 유물이 잘 정리되어 전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명동주변부에 일본인들이 상권을 형성했고 6.25 전쟁 이 후에는 문화와 낭만의 거리로 형성되었다. 1970에 본격화된 도심재개발로 땅값이 급등하면서 주점과 다방, 음악감상실은 은행과 보험회사, 증권사로 변모했으나 명동 국립극장은 명동예술극장으로 리모델링 후 남아있다. 명동은 서울의 문화, 예술,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서울의 도시 구조 재편과정에서 금융시설은 여의도로, 업무시설은 강남으로, 패션은 압구정, 청담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명동은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장소로 하루 15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넘실대고 한 때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발길이 멈칫했으나 여전히 관광 1번지, 핫 플레이스다.
이 곳 명동의 터줏대감 격인 명동성당은 한국 근 현대사의 격변기를 관통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120여 년을 한 결 같이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함께 했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며 소외된 소수 약자의 편에 서서 숭고한 책무를 지켜왔다. 명동성당은 명실 공히 서울시민 뿐 만 아니라 한국인의 가슴속에 우리 사회와 건축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추진된 종합계획 1단계 사업은 성당권역 전체의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명동성당의 보존과 복원’/‘시민과 공유하는 열린 광장’/ ‘천주교 신자들의 교류 공간 확보’라는 3가지 비전을 토대로 계획되었다. 이로써 명동성당은 과거와 현재를 엮어 미래로 견인하는 플랜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성당을 오르는 계단 주변에는 크고 작은 광장과 숲길이 조성되어 오늘도 시민들은 작은 쉼터에서 여유를 가진다. 방문자들에게 산책과 만남과 휴식이 가능하도록 도심 한복판에서도 개방된 장소를 제공하여 사회적 기여를 실천하고 있다.
성당의 좌측에 자리 잡고 있는 가톨릭회관은 1958년에 준공해서 초창기에 가톨릭대학 성모병원으로 이용되다가 병원 이전 후 가톨릭 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0년 노후화된 외장 커튼월의 전면교체 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야외 기도장소인 성모동굴 역시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공사 이 후 지금의 성당진입계단 좌측으로 위치가 이전되었으며 기존의 주변석재를 이용하여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1898은 지하공간에 조성된 시설로 서점, 꽃집, 기념품점, 커피숍, 갤러리, 식당 등, 만남과 교제가 있는 다용도 문화공간이다.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절제하고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했다.
이제 성당을 사계절에 각각 답사해보기로 하자.
대체로 성당의 전면부분은 일반 대중들에게 익숙하다. 주출입구 쪽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사진화보집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단 뒤 쪽의 외부공간은 전면과는 분위기가 다른 조형의 독특성을 느낄 수 있다. 전면이 수직적이고 남성처럼 강한 조형언어라면 후면부는 둥근 외관과 높고 낮은 매스의 중첩, 아기자기한 작은 원형창문의 구성으로 부드러운 엄마의 품 속 같은 아늑함이 느껴진다. 친근감이 있는 후면 광장에는 때마침 봄비가 내려 소생하는 계절의 만물을 축복하고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뭇잎들이 짙어가고 꽃들은 만발하여 성당주변은 신록이 푸르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고 쉬어가기에 좋은 장소다.
내부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엄숙함, 경건함, 거룩함의 분위기로 압도된다. 수직적인 모티브의 고딕 양식은 실내에도 첨두아치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회중석의 배치는 신랑(nave)과 측랑(aisle),그리고 제단부의 반원형 애프스(apse) 등, 전형적인 바실리카 형식에 충실하다. 주일 미사시간이 아닌 평일에도 기다란 목재의자에는 신도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다. 조용히 읊조리는 그들의 기도가 성스러운 공간에 이어지고 어떤 이는 고해성사 순서를 기다린다. 분주한 도심 속 이지만 잠시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찜통더위를 식혀주듯 장대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게릴라성 호우가 잦았던 지난여름처럼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면 대략난감이다. 준비한 우산을 써도 바짓가랑이를 다 적신다. 빗속에 계단을 오르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신도들의 경건한 기도와 바람도 저 빗줄기처럼 하늘에 맞닿기를 소망한다. 광장에 올라서 뒤를 돌아보면 현대식 빌딩들은 빗속에 함몰되고 성당의 디테일과 초목들은 물기를 더해 더욱 선명하다. 광장에 물이 고이면 성당이 그 안에도 담겨있다.
외벽 첨두아치의 반복과 하늘로 치솟은 뾰족한 종탑은 신을 향한 염원을 형상화한 고딕건축 양식의 특징이다. 벽돌공이 한장 한장 쌓은 벽돌은 외장재료 이전에 건축물에 담긴 애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에 대한 경외감이요 정성이다.
하늘이 푸르고 넓어지는 가을이 오면 공기도 청명하다. 광장의 나무들은 겨울을 준비하며 색동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있으니 동안거(冬安居)를 앞두고 일제히 마지막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듯하다. 사도회관 후면 정원에도 오래된 회화나무들도 가을앓이가 한창이다. 바닥에 수없이 낙엽이 쌓이며 만추는 깊어간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을 맞아 주변을 돌아보며 좀 더 넉넉한 인심을 가져야하겠다. 인생에서도 가을이라면 삶의 여백을 생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침내 첫눈이 내린 이른 아침, 전면광장에는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다. 성당 옆 문화관 지붕에도 흰 눈이 쌓였다. 미사에 늦지 않기 위해 수녀님도 총총걸음, 발길이 분주하다. 멀리 남산타워도 새벽을 맞이한다. 시간이 더 지나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단번에 동심으로 돌아간다. 한 장 남은 캘린더를 보며 성탄절이 며칠이나 남았을까,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성당 앞 계단은 미끄럽지만 신도들은 조심조심 성당의 언덕을 오른다. 성당지붕도 시나브로 흰 눈에 덮여가고 수녀원 앞길 스산한 나무들도 아름다운 설경을 연출한다. 남산풍경은 내리는 눈 속에 배경으로 존재한다. 이런 날은 좋은 사람과 벽난로 앞에 불을 지피고 앉아서 음악과 함께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아. 한 해도 부지런히 살았다. 성찰과 묵상으로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자.
HD 매거진 독자들께도 송년인사를 전합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 정호승 명동성당 중에서.....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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