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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숙 간호부장의 노인병원 애상] 추억의 죽음volume.36 2023. 7. 4. 23:44
추억의 죽음,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연명 셔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요양 시설과 응급실 그리고 중환자실로 갔다가 다시 요양 병원으로 이렇게 빙글빙글 돌다가 그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말기 환자를 얘기하는 것으로 일반 치료 가능한 노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기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를 연명 셔틀이라 부릅니다.
실제로도 대학병원에서는 내일모레 죽을 것 같은 환자를 위내시경과 장내시경 등등의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검사를 통해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의미 없는 항생제를 마구 투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감기라도 걸려서 고열에, 기침이 심하고 괴로울 때 약을 먹음으로써 고통이 경감되는 차원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요양 병원 근무 20년 차. 우리들의 미래라는 마음으로 보호자들에게 “ 제 환자입니다!”라고 큰소리치면서 정말 열심히 간호를 하였고 내 환자는 마지막 순간을 내가 천국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일반 병동임에도 중환자 병실을 만들어 달라고 하여 마지막까지 함께 하곤 했습니다.
아이는 낳지 않고 노인 인구는 늘어나서 어찌 보면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노인에 대한 “죽어라” 정책일 수도 있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가 노인에게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기 전 DNR(심폐소생술 비시행 동의서)를 환자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보호자와 마음대로 결정하고 사인을 받곤 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탓에 말기 임종 환자들을 일반 환자와 격리하는 이유도 큽니다. 존엄사, 안락사, 조력사 이런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노인들의 90% 이상이 집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어 하지만 임종이 다가오면 준비 없고 두려운 마음에 가족들은 급히 병원으로 모십니다. 나는 소변줄 끼고 그렇게 의미 없는 삶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말기 환자들에게는 어느 누구도 설명을 해 주지 않고 수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증상이나 치료 과정을 보호자한테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90세의 노인에게 굳이 설명할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 거죠. 왜냐하면 가족이건 의사들이건 노인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뭐가 필요하고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직면해야 합니다. 나도 사전 연명 의향서를 작성했고 장기 기증도 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제 됐구나 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구나 생각하고 있다가도 막상 의료 현장에서 보는 죽음은 이 서류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죽음 앞에는 정말 다양한 의학적 상황이 있습니다. 그에 따른 처치로 중환자실 치료도 있을 수 있고 삽관도 있고, 비위관도 있고 튜브도 있고 항암제도 있고 투석기도 있는데 이것을 전부 다 안 한다는 건지 한두 개만 안 한다는 건지 결정을 내리기가 참 모호합니다. 그래서 사전 연명 의향서를 써 놓았다 할지라도 현장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병원에서는 그런 상황들이 닥치면 다시 물어봅니다. 그러면 환자나 보호자가 다시 답을 해야 합니다. 이럴 때 “그래, 여기에 동의했으니까 돌아가시게 둡시다” 하고 그냥 돌아가시게 할 수 있을까요?
의사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의사가 물어보면 가족들은 살려 달라고 해서 이 서류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족들끼리도 이런 내용이 사전에 얘기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구체적인 의사 전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의학적 상태가 어떻고 그 치료가 필요한지,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떤 치료까지 할지 이런 것들은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추억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암에 걸려 입맛이 없어하실 때는 매주 맛있는 음식을 찾아 외식을 했고, 치매가 와서는 애기가 되어 지난날 술 먹고 힘들게 했던 모든 안 좋은 기억들을 회개하는 마음이 되어 다 잊어버리게 되었고, 예쁜 치매가 옴으로써 항상 웃어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 중에도 간호사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술 때문에 지겨워하던 아들도 아버지 손을 잡고 애기처럼 대한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근무하던 요양 병원에 모시는 동안은 저녁에는 병원 근처 바닷가 길을 같이 산책도 했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드렸습니다. 남들은 치매를 살아 있는 식물인간이라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경우 평소 가슴에 화가 많아 술로 낙을 삼던 분이셨는데 치매로 인해 인생의 휴식 기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죠. 이토록 아버지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많은 추억들이 있어서 지금 아버지의 죽음은 추억의 죽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집에서 모셨다면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이런 추억을 쌓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토록 요양 병원에 모시는 동안 난 우리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추억의 죽음이 될 수 있게 보호자들과 어르신의 마음을 대변해 주면서 사랑의 끈으로 연결을 해 주었는데 이제는 현실적으로 그런 것에 신경 쓰기보다는 인력 관리와 서류들을 철저히 하라고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나도 결코 자녀들에게 추억의 죽음이 될 수 없이 내가 몇십 년을 근무하던 요양 병원에서 연명 셔틀로 이리저리 다니다 자녀들을 보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이하는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지부는 이런 구조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일 시급한 간병인 문제와 쓸데없이 지역사회커뮤니티로 결코 집으로 갈 수 없는 노인들을 억지로 의사도 없는 요양원으로, 돌볼 보호자들도 없이 방문 요양 보호사들에게만 맡기는 집으로 가게 하는 정책보다는 병원의 형태를 갖춘 종합병원(?)인 요양 병원에 간병인 보험화와 현실적이지 않은 적정성 평가로 때려(?) 잡지 말고 정당한 행위별 수가를 주어 인생의 고통 없이 적당한 고통 경감의 치료를 받고 임종할 수 있는 마지막 휴식기인 노인요양 병원의 순기능에 힘을 실어 주었음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어르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추억의 죽음이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글. 최경숙 서울센트럴 요양병원 간호부장
최경숙 간호부장
현) 서울센트럴 요양병원 간호부장
현) 요양병원 인증 조사위원
전) 대한간호협회 보수교육 강사
전) 요양병원 컨설팅 수석팀장'volume.36'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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