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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맛과 풍경의 기행 2 (통영과 대매물도, 욕지도)volume.36 2023. 7. 4. 18:48
통영
부산이나 기장에서 출발하여 통영시까지는 승용차로 약 2.5시간 정도 걸린다. 거북선을 모티브로 후배 건축가가 직접 설계하고 운영까지 한다는 거북선호텔에 우선 체크인부터 하고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강풍의 영향으로 케이블카는 아쉽게도 운영을 임시 중단했단다. 호텔객실에서는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에 통영만과 이를 연결하는 통영대교(1998년 완공)가 조형미를 자랑하며 한눈에 들어온다. 그보다 먼저 충무교(1967년 완공)가 건설되었고 아직 건재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통영 운하 하부에 일제강점기(1932년 완공)에 해저터널이 존치한다는 것이다. 완공 이후 거의 백 년 가까이 되었으니 바닷물이 스며들고 노후화가 진행되었다. 충무교가 완공된 후부터 자전거를 제외한 차량의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니 한 번쯤 답사해 보길 권장한다.
생각해보니 거가대교이든 충무대교이든 또는 해저터널이든 간에 다리와 터널은 서로 떨어져 있는 땅과 땅을 연결하여 편리한 왕래를 도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시대에 비 대면으로 사람들 간에 접촉(Contact)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그럴수록 상호 간에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기에 연결(Connection)의 중요성을 우리는 새삼 배웠다. 터널, 다리는 연결이라는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절망 속의 그대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노래,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의 가사가 떠오른다.
임진왜란 때 당포와 한산도에서 이순신 장군의 대첩이 있은 후 1593년(선조 26)에 충청·전라·경상의 3도 통제사영을 설치하면서 통영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충무시의 지명은 1995년 1월에 통영군과 합쳐지며 옛 이름인 통영으로 통합되어 이제 충무라는 이름은 과거시제로 존재한다. 유명한 충무김밥도 이곳의 음식인데 서울 명동의 충무할매김밥은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통영에는 우리들 귀에 익숙한 문화 예술인들이 많다. 근 현대사를 대표하는 걸출한 예술가들을 낳은 도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중학교에서는 국어를 시인 유치환이, 음악을 작곡가 윤이상이 가르치던 시기도 있었을 정도이다. 그 외에도 시인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화가 이중섭 등 통영이 길러낸 예술가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이 도시에는 그들이 살던 거주지와 예술혼을 불태우던 작업실, 또한 그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예술인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의 일부인데 사춘기 시절, 이성 친구의 손 편지에 적혀있던 시구를 접하면 아직도 가슴깊이 잔잔한 파문이 인다.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에는 앞바다에서 잡혀온 싱싱한 수산물들이 좌판과 수족관에 가득하고 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광어, 우럭, 민어, 참돔 같은 어류, 가리비 같은 조개류, 꽃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 낙지, 돌문어 같은 연체류.... 이처럼 가지각색의 해물들이 관광객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한다. 우리 일행은 시장 한 구석에서 착한 가격으로 회 한 접시와 매운탕을 소주와 함께 뚝딱 해치우고 지역특산인 꿀빵으로 디저트를 즐긴다. 인근 동피랑 벽화마을 언덕에 올라 바다를 조망하고 소화도 시킬 겸 동호항 방파제를 걸어 이순신 공원으로 향한다. 동호항에는 강풍 때문인지 오늘따라 크고 작은 많은 선박들이 정박되어 있다. 바람이 자면 넓은 바다로 나가는 꿈을 꾸며 항구에서 지루함과 답답함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기념공원에 도착하여 언덕을 오르니 통영 앞바다를 향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데 광화문 광장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전쟁터인 통영 앞바다를 목전에 두고 전의가 더욱 충만하다.
통영시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도로의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는 달아공원은 한려수도의 황홀한 일몰 풍경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노을, 일몰, 석양, 황혼, 낙조, 해거름..... 이처럼 이음동의어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일까? 통영 앞 바다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면은 아름다움을 넘어 감동적이다. 달아공원 전망대에 오르니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이미 여행객들이 제법 모여 있다.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붉은 노을의 향연이 시작되는데 시나브로 황금색으로 변하는 바다와 그 위에 보석처럼 박힌 섬들의 실루엣의 변화는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통영에서의 밤이 아름답게 저물고 있다.
대매물도
우리 일행은 요트로 이동했지만 일반적으로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출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몇 군데 섬을 거쳐 두 시간 남짓 이동하면 대매물도에 도착할 수 있다. 방파제 끄트머리에는 붉은 등대가 파수꾼처럼 섬을 지키고 인근 바위섬들이 우람하게 솟구쳐 호위하고 있다.
이곳 매물도에는 대항마을과 당금마을을 합쳐서 60여 가구가 살고 있으나 가구 수가 줄어가는 만큼 빈집도 자꾸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고 쇠락해 가는 민가들 중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민박시설로 리모델링하여 고령의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다. 마을 오르막길에는 어김없이 벽화가 그려져 있고 민가들 지붕은 붉은색과 파란색 등 원색으로 치장되어 시선을 자극한다. 집집마다 원통형의 파란색 플라스틱 고가수조 역시 오래되고 고즈넉한 섬마을의 풍경감상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경사의 지형을 따라 조성된 집들과 교회, 소박하게 쌓은 나지막한 돌담이 정겹고 그 돌담너머 동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방문객을 환영한다.
마을 높은 곳에 제법 넓은 운동장을 가진 폐교건물이 있어 백패킹 여행자들에게 캠핑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운동장 아래편 몽돌해수욕장에는 바람과 파도가 몽돌을 긁고 지나가며 시원한 음향효과로 여행자를 들뜨게 한다. 또 전망대에 오르면 낙조의 바다는 붉은 노을의 향연을 선물한다. 밤에는 운동장 한 구석에 누우면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일정 빈도의 고립이 유지되는 곳이라서 외로움과 그리움의 대명사같은 장소가 섬이다. 청정의 자연이 보존되어 원시로의 회귀본능과 감성을 자극하는 섬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곳이다. 앞으로도 한국의 섬은 여행지의 우선순위로 꼽고 싶다. 질주하는 삶의 속도에 잠시 브레이크를 밟고 차분히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장소로서 섬은 안성맞춤이다.
욕지도
욕지도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려면 삼덕항으로 나와야 한다. 배표를 끊고 대기하는 동안 충무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해결했다. 배에 오르자 갈매기들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비행을 하며 유유히 날개 짓으로 방문객들을 반긴다.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욕지도로 가는 동안 바라다 보이는 수평선 위에는 무인도를 포함한 이름 모를 섬들이 많은 것을 보니 역시 이름 그대로 여기는 다도해다. 멀리 떠있는 섬들과 중첩되어 바다 위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욕지 여객터미널에 내려 단체관광 차량을 포기하고 일행들과 자유롭게 도보로 다녀보기로 했다. 우선 모노레일 승강장까지 걸어 올라가서 그곳에서 모노레일을 이용, 욕지도에서 가장 높은 대기봉 정상 전망데크와 천왕봉에 올라 인근 섬들을 조감도 시점으로 내려다본다. 두미도, 상노대도, 우도, 연화도 같은 이웃 섬들이 올망졸망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점심식사는 SNS에서 이미 유명세를 탄 중화요리 전문점 '한양식당'을 찾아 해물짬뽕과 볶음밥을 주문하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인근 욕지도 양조장에서 빚은 수제프리미엄 막걸리 '욕지도 고구마 막걸리'를 한 잔 씩 맛보았다. 고구마는 욕지도의 지역특산품이다. 특히 지인이 강추하는 맛집 '해녀 김금단' 포차에서 맛본 고등어회는 비린내가 전혀 없는 데다 찰지고 쫄깃한 식감으로 여행자에게 낮술을 부추긴다. 그동안 맛보았던 고등어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욕지도 고등어 회는 이번 맛 기행의 압권이다. 이렇게 혀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맛 기행의 즐거움은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잠시 쉬었다가 승용차를 2시간 정도 대여하여 섬을 일주한다. 관청 출렁다리도 이색적인 경험이었지만 욕지도 출렁다리를 지날 때에 협곡사이 바다는 압권이다. 여기에서 바다 쪽으로 더 진입하면 펠리칸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멀리 보이는 동섬 촛대바위까지 펼쳐진 전경은 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바다와 절벽의 바위들이 중첩되어 만들어 낸 서정적 풍경으로 가슴속에 느낌표 하나가 날아와 박힌다. 지인이 보내준 사진은 이곳이 배경이었음을, 그 사진 한 장이 이번 여행의 단초가 되었음을 생각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 장소를 소개해주고 싶다. 이제 욕지도의 클라이막스를 체험한 듯하다.
욕지도는 당일코스 여행이었으니 아쉽지만 서둘러 해가 지기 전에 자동차로 섬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 통영으로 돌아오는 배에 올랐다. 이제 온 몸이 녹작지근하다. 배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에 다시 붉은 하늘이 펼쳐지며 낙조가 시작된다. 이런 대자연의 풍광과 마주할 때마다 신이 창조해 내는 색상과 풍경에 비해 인간의 예술과 인위적인 구조물들은 왜소하고 조악하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건축가로서 좀 더 겸허한 자세를 배워야겠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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