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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Column] 치유환경과 정원 효과volume.36 2023. 7. 4. 21:38
‘정원의 역사는 병원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은 질병의 치료와 돌봄을 수행했는데, 치유공간으로서 수도원의 핵심은 정원이다. 모든 수도원에는 어김없이 허브정원과 분수, 그리고 산책로가 있었다. 병원건축이 자연의 치유력을 주목하게 된 데는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인 나이팅게일의 공이 크다. 크림전쟁(1853~56년)에서 영국의 부상병들을 돌보며 나이팅게일은 부상병 사망률을 기존 42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크게 낮췄다. 그가 밝힌 비결은 충분한 영양 공급과 철저한 위생 관리, 그리고 햇볕이었다.
이는 병원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미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대부분 병원이 병실에 넓은 창을 내고 천장에도 채광창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후 세균학이 발전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병원은 감염을 최소화하고 의학기술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대 이후 고층 건물이 병원건축의 국제적 표준이 되면서 병원은 자연친화적 경관 대신 경제적 효율을 택했다. 더 많은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병실 위주로 공간을 채웠고, 정원은 사라졌으며, 창문의 크기도 작아졌다.
그러나 과거 질병 치료와 예방에 집중한 의료서비스의 개념은 이제 건강 증진 지원과 건강한 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특히 환자의 심리적, 정서적 상태가 감염 위험의 노출로부터 신경면역학적으로 완충적 역할을 한다는 많은 실증적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병원 내 치유 정원을 조성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국내 역시도 최근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도 실내 정원을 조성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힐링가든’, 서울대병원의 ‘행복정원’, 명지병원의 ‘숲마루’ 등은 신경건축학이 증명한 자연의 치유력을 의료공간에 적극적으로 적용한 좋은 예다.
자연과 접촉, 혹은 자연과 연계된 요소를 제공하는 치유공간은 환자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정서적 안정을 돕는다. 자연의 치유력에 대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환자와 질병의 특성에 따라 치유환경으로서 자연을 적용하는 다양한 해법들이 나오고 있다. 병원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간혹 심한 스트레스로 면역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신체적 자기 조절능력과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연구내용을 근거로 어린이 병원의 치유 정원은 심리치료를 도모하는 수종과 감각 자극을 지원하는 시설을 조화롭게 활용하면 좋다.
그런가 하면, 노인환자를 위한 치유 정원은 노인들의 보행거리와 시간을 고려한 거리여야 한다. 치매 등 기억이 감소하는 특성을 고려해 과거의 추억과 경험을 회상하게 하는 친숙한 자연요소를 정원디자인에 적용하면 좋다. 다만, 여름과 겨울 야외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계절과 상관없이 신체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형외과에 조성하는 정원의 경우 수술 후 걷는 활동을 유도하는 산책로 중심의 정원을 기획하되, 보행이 불편한 환자가 넘어질 경우를 생각해 부드러운 바닥재를 사용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치유 정원은 단지 식물과 의자를 배치하는 조경이 아닌, 심리적, 물리적 영향을 근본적으로 살펴 환자의 회복력에 도움을 주도록 설계되는 특별한 공간이다. 나무와 식물, 벤치와 테이블, 여러 구조물 하나까지도 몸과 마음에 어떤 치유 효과를 주는지 학문적 연구를 근거로 디자인해야 한다. 공간 디자인은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세심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 노태린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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