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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병원 마케터가 바라본 짧고 얕은 문화이야기] 프랑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volume.36 2023. 7. 4. 20:09
프랑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쁨의 화가, 라울 뒤피
삶의 기쁨만을 유쾌하게 담은 그림에서 위로를 받다.
현대 미술 작가 한 명의 큰 기획전이 같은 시기에 두 곳에서 나란히 열리는 건 흔치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예술의 전당]과 [더현대 ALT.1]에서 지난 5월에 개막한 전시의 주인공은 라울 뒤피. 물론 양측 모두 이렇게 같은 시기에 개막할 지 몰랐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던 화가였길래 대체 어떤 화가여서 이렇게 공을 들여 사후 70주년 맞이 전시가 열린 건지 궁금했다.
라울 뒤피는 1877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항구도시인 르 아브르에서 태어났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건 그의 삶에 축복이었던 것 같다. 작은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는 주일에는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성가대를 지휘했다. 그런 어릴 적 환경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서는 바다, 해변가, 악기, 오케스트라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라울 뒤피 : 색채의 선율’ 전
두 전시 중 먼저 찾은 곳은 [예술의 전당] 전시였다. ‘라울 뒤피: 색채의 선율’ 전시에서는 니스 시립미술관, 앙드레 말로 현대미술관 소장품과 함께 에드몽 헨라드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라울 뒤피 컬렉션 작품 등 다양한 180여점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의 전당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눈길을 끄는 것은 많은 수의 다양한 수채화들이었다.
그의 수채화 작품들을 봤을 때 처음에는 ‘뭐지? 이게 완성된 작품이라고?’란 생각이 먼저 스쳤다. 그러다가 유사한 패턴이 담긴 수채 작품들에서 그가 그려낸 작품의 선과 색깔이 경계선 없이 분류되어 자유롭게 작품 속에서 유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색깔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밑 바탕의 연필 선도 보이고 잘못 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분 없이 색깔이 들쑥날쑥 이었다. 거기다가 파도의 표현도 육지와 바다의 경계 표시도 무너져 보였다.
그래서 라울 뒤피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에서 ‘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이 풀리고 힘을 쭉 빼고 보게 되나 보다. 거기다 전체적으로 많이 사용된 푸른색은 편안한 느낌을 더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한번에 쓱 날린 붓 터치에서의 과감성과 전체적 느낌으로 작품의 완결을 확정하는 결단력에 매료되기도 한다. 나라면 결코 거기서 끝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에 실린 목판화를 비롯해 삽화로 담긴 석판화도 볼 수 있고, 패션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제안으로 진행한 직물 패턴 디자인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라울 뒤피가 제작한 패턴으로 만든 드레스 17벌도 포함 되어있는데, 그의 원피스 작품들은 지금 봐도 패턴과 색깔에서 세련됨이 느껴진다. 라울 뒤피가 직물 패턴 디자인을 시작한 건 패션 쪽에서 일했던 아내 에밀리엔 뒤피 (이번 전시에 대표작 중 하나가 ‘에밀리엔 뒤피’의 초상이다)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의 업무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활동분야를 넓혀 나간 그의 삶 자체가 보는 이들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한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깃발을 장식한 배들(1946)’ 등 생애 마지막에 그렸던 바다 그림들이 대거 공수 되어서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본인 역시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닷가 풍경 작품들이 더 끌리는 듯했다. 삼각형으로 표현한 파도가 너울거리는 푸른색 바다에 푹 빠져있었던 시간이었으니.
‘라울 뒤피 : 행복의 멜로디’ 전
[더현대 서울의 ALT.1]에서 열린 ‘라울 뒤피 :행복의 멜로디’는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퐁피두센터) 소장품으로 회화 130여점을 전시했다.
‘조개껍데기를 든 목욕하는 여인(19925)’ 작품과 ‘도빌의 경주마 예시장(1930)’, 케슬러 가족을 대형 화폭에 담은 ‘나무 아래 기수들(1931-32)’까지. 예술의 전당 전시가 시대순이 아닌 그가 좋아했던 주제들에 맞춰 구성되어졌다면 더현대 서울에서는 시대별 순으로 전시를 해서 라울 뒤피가 어떠한 형태로 그의 화풍이 바뀌어 갔는지를 고스란히 알게 해 주었다.
1900년대 초기에 그려진 마르티고 항구나 해변, 카페테라스를 그린 작품들을 보면 얼마나 정교하게 작품을 완성해 나갔는지를 알 수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수채화를 처음 접하고 느꼈던 대충 그린듯한 느낌과 완전 대조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다가 1908년 아내 에밀리엔느를 그린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에서는 검은색 테두리와 얼굴색에서 고갱의 화풍을, 여인의 뒤 배경에서 라운드로 빛의 모습을 묘한 것에서는 고흐의 화풍이 떠오른다.
이 시기 그린 작품들은 검은 윤곽과 노란색이 강하고 곡선과 직선으로 심플하게 구성해내는 것에서 인상주의를 엿볼 수 있었는데 이어진 섹션들이 야수파스타일, 입체파스타일로 라울 뒤피의 작품들을 구분해 둬서 그의 작품의 변천 흐름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시선을 끌었던 작품은 1914년 작품인 ‘그물을 든 어부’였다. 대형작품이기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어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 강인한 실루엣과 그물의 디테일, 명확한 색감에 매료가 되었다. 그가 구축한 후반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가 얼마나 그림에 시선을 잡아두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1918년도 ‘목욕하는 여인들’의 작품은 예술의 전당에서 봤던 작품스타일과 유사한데 바다, 조개껍데기, 배, 말의 묘사들에서 흩날릴 듯 가볍게 그려진 붓 터치가 그의 대표적 작품 스타일을 보여준다. 1935년도 여행지에서 그린 ‘랑그리의 귀리밭수확’ 이란 작품도 너무나 따뜻하게 자연을 묘사해 두어서 오랫동안 서 있게 만들었다.
‘붉은 바이올린’은 예술의 전당 전시에서 바이올린을 그린 작품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근대 과학 기술에 바치는 경의를 표한 그의 대표작 ‘전기의 요정’을 만나다.
두 전시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바로 ‘전기의 요정’이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가로 60m, 세로 10m로 사상최대 크기 벽화로 만들어진 ‘전기의 요정’은 뒤피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기가 인류에 끼친 영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벽화에는 전기 요정인 아이리스가 빛을 발하며 날아가는 이미지로 구성되고 그 밑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전기의 영광을 찬양한다. 이 작품에는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 퀴리부인, 에디슨, 벨 등 역사적 인물까지 110여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각 다른 묘사들을 위해 단역들에게 자세를 취하게 해서 그렸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작품은 오리지널 석판화 연작이다. 라울 뒤피는 1951년에 전기요정을 대중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석판화로 만들었다. 예술의 전당 전시에서는 ‘전기의 요정’을 모티프로 한 미디어 아트 작품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라울 뒤피의 사진을 보면 왼손에 붕대를 감고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실제 전기의 요정 이후 극심한 다발성 관절염에 시달려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칠 줄 모르고 작업을 계속 했다.
“그림이란 즐겁고 유쾌해야 하며 예뻐야 하나. 세상에는 이미 불쾌한 것이 너무 많은데, 그런 한한 것을 또 만들어낼 이유가 있는가” - 라울 뒤피
라울 뒤피의 생애 자체는 역사상으로 힘든 시기였다. 초기에는 벨 에포크 시대였지만 제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모두 겪어내야 했다. 그런 시기에 그의 작품은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힘든 시기에 희망을 주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던 역할을 한 것이다. 위트가 있는 가벼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이 들릴듯한 경쾌함을 표현해 낸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위로를 주는 듯하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은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을 시도하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간 그의 도전적인 정신도 전시를 본 후 그의 삶을 살펴볼 때 분명 큰 자극제가 될 것이다.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다” – 라울 뒤피
글. 이현주 병원 마케터
*[예술의 전당] 전시는 ‘전기의 요정’ 포함해서 일부 사진촬영 허용
*[더현대]는 ‘전기의 요정’ 작품 공간만 사진 촬영 허용.
이현주
글쓴이 이현주는 바른세상병원에서 홍보마케팅 총괄을 하고 있는 병원 마케터이다.병원 홍보에 진심이긴 하지만, 한 때 서점 주인이 꿈이기도 했던 글쓴이는 독서와 예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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