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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병원 마케터가 바라본 짧고 얕은 문화이야기] 뒤뷔페 그리고 빌레글레 展volume.30 2023. 1. 4. 09:11
틀 안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미술가,
장 뒤뷔페의 작품을 만나다.“예술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절대적으로 원시적이며, 빵을 갈망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이다. 빵이 없다면 굶어 죽겠지만 예술 없이는 지루해 죽는다.”
- 장 뒤뷔페(1901-1985)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장 뒤뷔페.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과 작품일 텐데, 나 역시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가 이번 ‘뒤뷔페 그리고 빌레글레’ 전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전업화가의 길에 들어선 건 41세가 되어서이다. 어릴적부터 회화와 조각 등 미술에 관심은 컸지만, 가업인 포도주 상을 하다가 40이 넘어 화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그는 어쩌면 시작점부터 비주류였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의 틀을 깰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자유롭고 원시적인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킨 뒤뷔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국내에서는 12년 만에 작품 공개라고 한다. “장 뒤뷔페는 정말 뛰어난 최후의 파리 화가이다. 프랑스 회화는 뒤뷔페 이후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라고 데이비드호크니가 말한 건 이유 있는 말인듯하다.
“예술은 놀이, 즉 정신의 놀이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주된 놀이인 것이다.”
– 장 뒤뷔페(1901-1985)
그는 현대 비주류 예술, ‘아웃사이더 아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아웃사이더 아트란 표현조차 그가 만든 단어인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예술이란 의미의 ‘아르브뤼(art brut)’란 용어에서 나온 거라고 하니 그가 얼마나 영향 끼쳤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듯하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 원초적 가치를 추구한 순수 예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도 한 부분을 차지한, 장르를 뛰어넘는 크로스 오버 작업의 선구자가 되기도 했다. 세계 미술의 중심이 미국 뉴욕으로 넘어간 후에도 그의 작품은 꾸준히 인정받아 ‘최후의 파리화가’로 불리기도 했다. 장 뒤뷔페는 이미지보다 그린다는 행위자체를 중요시하고,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요 사조인 ‘앵포르멜(비정형)’을 개척했다.
전시 1부는 ‘우를루프(L’Hourloupe)’의 연작이다. 우를루프는 프랑스어로 ‘소리 지르다’ ‘새가 지저귀다’ ‘늑대가 울부짖다’ 등의 단어를 조합해서 뒤뷔페가 만든 말이다.
뒤뷔페의 ‘우를루프’ 시리즈는 검은색 굵은 테두리 안에 파랑, 빨강, 하얀색 등의 제한된 기본색깔들이 자유분방한 선으로 어우러져 특별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이다. 이게 뭐지 했다가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그 형태가 도드라지면서 드러나는 신비한 느낌을 경험하게 한다. 우를루프의 이미지는 1962년에 전화를 하면서 볼펜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낙서를 하던 중에 착상을 했다고 한다. 그 낙서 형태에 매료되어서 이것을 잘라 검은색 배경위에 올려놓고 다채로운 움직임과 새로운 조화를 발견했다.
모두가 경험하는 느낌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우를루프’ 작품들 앞에서 짜릿한 해방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느낌을 한 작품 속에 어우러져 있다니… 그의 작품들은 형식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예술이 이런 거구나라고 말하고 있다. 우를루프가 낙서에서 시작했지만, 그 주제는 인간, 풍경, 일상의 오브제들이라고 한다.
“추하다고 여기는 것들도 사람들이 흔히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아름답다”
–장 뒤뷔페(1901-1985)
2부 ‘쿠쿠바자(Coucou Bazar)’는 뒤뷔페가 우를루프 축제, 환상무도회라는 의미로 지은 제목이자 종합예술 프로젝트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1973년에 선보이기도 한 ‘쿠쿠바자’는 회화와 조각, 무대장치, 의상 등으로 구성된 무대 예술로 살아 움직이는 회화로서의 조각 와 영상작품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시기에 이러한 크로스오버는 거의 없었고, 이러한 그의 행위가 추후 거리 예술에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화가이다”
–장 뒤뷔페(1901-1985)
3부는 자크빌레글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뒤뷔페전에 왜 갑자기 낯선 화가의 작품이 그것도 완전 느낌이 다른데 전시가 함께 되어 있나 싶은데, 두 사람의 인연이 특별했다. 1975년 뒤뷔페의 전시포스터를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보고 그의 포스터 한 장을 떼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고 싶다고 뒤뷔페에게 편지를 썼고, 이에 응한 후 두 사람은 활발히 교류하기 시작, 10년간 서신교환을 했다고 한다.
빌레글레의 작품은 그 시대 거리의 벽보를 그대로 찢어서 조합한 작품으로 생각보다 큰 작품 크기와 분위기에 압도된다. 제작 시기가 그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의 문화를 그대로 담아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시를 준비하던 중 지난해 6월 타계한 빌레글레에게 경의와 존경의 의미를 가진 전시이기도 하다. 1944년부터 1985년까지 뒤뷔페는 개인전을 위해 100점가량의 포스터를 기획했고, 이 중 하나의 포스터가 빌레글레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스트리트 아트의 정신적 아버지라 표현되는 빌레글레의 마지막 작품은 거대한 스텐실 형태로 전시되어 있는데 자신이 발명한 알파벳으로 장 뒤뷔페의 “기술을 배울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마스터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인용문을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 뭔가를 완성해 버리면 더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으나 회화 재료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히 어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다. 1950년대 파리에서는 회화적 아방가르드가 추상 회화에 의해 나타났다. 여기서는 더 이상 발명할 것이 없었다.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타이포그래피와 벽보가 탐험해야 할 길처럼 보였다.”
- 자크빌레글레(1926-2022)
4부는 뒤뷔페의 초기 그림들을 보여주는데 여기서의 작품들이 재미나다. 이 시기 작품들은 재료와 질감에서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데 석판으로 판을 만들고 두꺼운 덩어리를 분쇄하여 풍경을 수직으로 세운 후 하늘의 얇은 부분만 드러내는 <유령들에게 월출>이란 작품이나, 퍼티 나이프의 끝으로 긁은 물질의 혼합재료 속 솟아있는 인물들로 가득 채운 <각자의 몫>이란 작품이나, 에나멜 페인트라는 산업물감으로 그린 <초록 모자를 쓴 남자>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재료 특유의 건조 과정에 강한 흥미를 가지게도 했다.
“예술은 재료와 도구에서 태어나야 하며 도구의 흔적과 재료와의 투쟁 흔적을 유지해야 한다. 인간이 말을 하듯 도구와 재료도 말을 해야 한다.”
– 장 뒤뷔페(1901-1985)
또한 여러 물질을 이용해 평면회화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는데, 작품을 보고 유추한 느낌이 너무 그대로 단순하게 작품 제목으로 명시되어 있어서 유머러스한 느낌이다. BTS의 RM도 이 전시회를 다녀갔는데, 여기서 찍은 작품 중 하나가 ‘금반지’였다. 모나리자 그림은 상징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고정된 틀을 벗어던진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 아닐까 싶다.
“만약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이고 본질적인 사소한 행동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 별안간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것이 나타날 것이다.”
–장 뒤뷔페(1901-1985)
작품 전시 마지막 공간에는 작품을 제작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이 정말 특별했다. 그의 작업방식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니 꼭 관람해보길 권한다.
장 뒤뷔페는 프랑스가 피카소와 함께 가장 아끼며 자랑스러워하는 화가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안주하는 게 편하고 익숙하고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주류문화에 도전하고 새로움을 시도하고 끊임없이 창의적 영감을 갖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한 해가 바뀌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혁신적이고 싶고, 긍정적 자극을 받고 싶다면 이 전시회에 한번 다녀오면 어떨까 싶다. 뜨거운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예술은 당신을 조금 웃게 만들어야 하고 조금 두렵게 만들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다면야 뭐든지…”
– 장 뒤뷔페(1901-1985)
글. 이현주 병원 마케터
이현주
글쓴이 이현주는 바른세상병원에서 홍보마케팅 총괄을 하고 있는 병원 마케터이다.병원 홍보에 진심이긴 하지만, 한 때 서점 주인이 꿈이기도 했던 글쓴이는 독서와 예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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