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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호 원장의 책 해방일지] 세계는 왜 싸우는가?volume.30 2023. 1. 2. 16:33
나의 책 해방일지. 6th.
내 책꽂이에서 오랜 기간 영어(囹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좋았던 책을 다시 꺼내는 시간.
내 책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오랜 기간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는 얼마일까? 책 한 권의 가격이 15,000원 정도지만, 저 책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가격을 포함해서 환산해 보면 가치는 더 비싸질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를 나는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저 공간에 몇 달, 혹은 몇 년을 두는 것은 합리적인가? 자기 방이나 일하는 공간에 오랜 기간 자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 어느 정도 가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건의 가격과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지가를 합한 가격이,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일 것 같은데,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은, 언젠가 그 가치를 실현할 날이 올 수 있을까?
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미 저 | 추수밭 | 2011 (절판)
김영미 저 | 김영사 | 2019 (개정판)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그리스, 터키,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콜롬비아.
지금부터 70년 전인 1950년 한국전쟁에 UN 연합군으로 군인을 파견한 16개 국의 이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인도, 이탈리아.
전투병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의료지원을 보낸 6개국.
참전국 중에서 미군이 3만 명 이상 사망하였고, 다른 유엔국에서는 3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투병 없이 의료 지원을 보낸 국가에서도 사상자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지역적인 느낌으로 먼 나라가 많은데, 그 시절에 한국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참전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사망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전쟁에 참여했을까?
한국전쟁 기간 중에, UN이라는 외세의 개입으로 통일국가를 못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분쟁지역으로 전쟁 중이었고, UN의 개입 덕분에 통일된 조국이 아닌, 분단국가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까?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싸우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데, 70년 전에 UN이라는 이름으로 도움을 받아서 존재하고 있는 국가에 살고 있다면, 마땅히 다른 나라의 분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지.
지금은 세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70년 전에 세계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한 시절에,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전쟁이라고는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잘 모르는 먼 나라의 내 전국에 자국의 젊은이를 파견하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만일 지금, 참전했던 나라 중에서 물리적으로 거리가 먼,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콜롬비아 같은 나라에서 내전으로 정부군이 밀리는 상황에서 UN을 통해서 군인을 파견해 달라는 연락이 오면, 우리나라는 저 나라에 자국의 젊은 군인들을 보낼 수 있을까? 국회에서 승인이 가능할까? 그리고 국민 여론이 가는 것을 허락해 줄까?
'세계는 왜 싸우는가', 이 책은 2011년에 출판되었는데, 2019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내가 읽은 책은 2011년 책.
이 책을 쓴 김영미는 프리랜서 세계 분쟁지역 전문 PD로, 분쟁지역을 주로 취재 다니는 사람이다. 스위스에 취재차 갔다가 호텔의 잘못으로 숙소 예약이 안 돼서, 하룻밤을 호텔이 권해준 배낭여행자 숙소에 잠을 자게 되었고, 그 방에 15명 정도의 배낭여행자들이 밤에 맥주를 마시면서 파키스탄 분쟁 지역인 듀랜드 라인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교적 정확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정한 결론을 내고 마무리되었으나, 그 자리에 있던 4명의 한국인 학생들은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맥주만 마셔서 다음날 아침에 물어봤다고 한다. 왜 어젯밤에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는지.
그 사람들이 말하길, 자기들은 거기에 아는 것도 없고, 자신들의 관심은 관광이다라는 대답을 듣고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 책은 자신의 아들(고등학생)을 위해 쓴 책이라서 아들에게 말하듯이 써 놨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중고등학생 필독서로 정하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동티모르, 체첸, 카슈미르, 쿠르드족, 이라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콜롬비아, 미얀마.
2011년에 출판된, 이 책에 언급된 분쟁지역 이야기들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같이 서방 언론이 관심을 갖는 나라의 이야기는 자주 들었을 것 같고, 소말리아같이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었던 지역의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그 외의 다른 지역의 분쟁은 언론을 통해서 접하기도 어렵고, 저기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렇다. 소말리아 해적의 일이 우리와 먼 아프리카 나라의 국지적인 일이고, 우리와 관련이 없을 것 같아도 우리와 연관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계적인 일에 무관심하게 지내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여론을 만들고 도와줘야 한다. 우리가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남을 돕지 않으면, 우리가 남의 도움이 필요할 때 남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많은 사건을 전하고 싶어서, 서술을 간략하게 했다는 점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연관 독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각각 사건의 관점을 다르게 보면 다르게 읽히는 경우가 많으니까, 한 사건도 다양한 저자의 글을 보는 게 좋을 것 같고. 역사는 일련의 승인된 판단이기 때문에, 누가 승인을 한 것인가가 중요한 관점일 수도 있겠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만 해도, 이스라엘 쪽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들어서는 안될 것 같지 않은가. 대충의 이야기는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 방식에 의한 유물로 지금의 분쟁 지역이 생긴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들에게 쉽게 이야기해서 표피적으로 글을 쓴 것 같다는 느낌도 약간 들지만, 아주 좋은 책이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세계에 다양한 좋은 선례를 만들었지만, 이렇게 분쟁지역을 만들고 나 몰라라 빠진 것은 아쉽다. 그리고 신념이나 종교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기고.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만일 김영미 세계 분쟁 지역 전문 PD 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한국 이야기도 '세계는 왜 싸우는가?'에 넣었을 것 같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분쟁지역이니까.
2019년 개정판은 몇 개 달라진 이야기가 나오는데,
프롤로그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는데, 2011년판에는 시애틀에서 쓴 것으로 나오고 2019년 판에는 홍은동 산속마을에서 쓴 것으로 나온다. (오잉~~~)
2011년 판은 청림출판의 인문 교양 도서 브랜드인 추수밭에서 나왔는데, 2019년 판은 김영사에서 나왔다. 목차는 변한 게 하나도 없고, 내용 일부가 2011년 이후에 추가된 것이 있다. 2011년 판의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국제구호단체를 몇 개 적어 놨는데, 2019년 판에는 에필로그가 있으면서 세계는 왜 싸우는가 2편을 준비 중이라고 적어놨다. 그 외에도 책에 들어간 사진이 좀 변했고, 추천인이 2011년 판에는 김미화 씨였는데, 2019년판에는 손석희 씨로 바뀌었다. 개정판에 개정된 것이 없어서 약간 실망했지만, 본편의 내용이 워낙 좋아서 2부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데뷔작이 대표작인 작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런 책을 보면, 다음 세대는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의문이 생긴다. 얼마 전 어떤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가려는데,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 돌아서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내 외모가 범죄자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개방하지 않는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쇄국의 마지막이 어떤 것인지 역사의 선례로 미루어 짐작을 해 볼 때, 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뭘 배울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지금의 시대를 살면서, 남의 나라 걱정을 할 때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세계는 왜 싸우는가' 이전에 '국내는 왜 싸우는가'가 먼저 출판되어야 할 것 같다.
글. 마태호 삼성제일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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