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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정동산책volume.30 2023. 1. 2. 17:21
근대문화유산 1번지, 정동길
또 새해를 맞이했다. 여전히 경기침체와 금리폭등으로 내 주변에는 기대보다 우려로 새 해를 맞이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희망은 놓지 말고 첫날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일은 수 십 년 반복되지만 항상 새로운 기대로 마음은 설렌다. 해피 뉴 이어! 2023을 시작하고 연하장으로 인사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반갑게 복을 기원한다. 지난 몇 년 간 우리를 성가시게 했던 코로나도 물러가고 있으니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일상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다. 이번 정초에는 정동길을 산책해 보자. 캘린더를 넘기듯 겨울부터 시작해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의 순서로 정동길에서 만난 근대건축들을 나열해 보았다. 우선 정동길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근대문화유산’이다. 대한민국 개화기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역사의 증인처럼 정동길에 도열해 있다. 정동길 산책은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에서 덕수궁 돌담을 끼고 시작하는데 중간지점 로터리에 이르면 오래된 붉은 벽돌의 정동제일교회가 보행자들을 환영한다. 여기에서 경향신문사에 이르는 정동길과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덕수초등학교로 향한 길로 나뉜다. 이 두 갈래 길 모두 파란만장한 구한말의 역사를 지켜보았던 근대유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길에서 만나는 건축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즉, 조선을 벗어나 대한제국을 자주적 근대국가로 만들고자 몸부림치며 노력했던 동시에, 그럼에도 강대국들의 수탈에 의한 서글픈 역사가 공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신문물의 수용지로서 1883년 미국공사관을 비롯하여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가 차례로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정동길은 공사관 거리로 변했다. 공사관과의 외교가 진전되면서 선교사들도 활동하게 되었는데 교회를 중심으로 이화학당, 배재학당 같은 미션스쿨의 교육기관과 ‘보구녀관’ 같은 의료시설도 자리를 잡았다. 특히 2023년은 조선과 미국이 수교(1882)한 지 141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이후 해를 거듭하며 영국(1883)과 러시아(1884) 수교가 이루어졌다.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 가로수, 공원 등이 잘 조성되어있고 카페와 맛 집들도 많아 서울의 근대역사문화체험의 메카로 손색이 없다. 오래된 나무가 퇴색하는 가을풍경이 특히 아름다워서 정동축제는 가을에 열리지만 사시사철 아무 때나 산책해도 정동은 감성을 선물한다.
1. 중명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후미진 골목 깊숙한 곳에 고독하게 서있는 건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서양식으로 지어진 2층의 근대건축물 덕수궁 중명전이다. 구한말 조선의 운명이 기울던 시기에 대한제국의 황제가 머물며 국제외교사의 주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광명이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의미를 가진 중명전은 현재 역사전시관으로 사용되는데 구한말 조선의 비극적인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근대화의 상징인 경운궁이 1904년 큰 화재로 소실 후 고종은 그동안 황실도서관으로 사용되던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기고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장소로 활용했다. 서양식 고전주의 양식의 붉은색 벽돌건축으로 근대건축 고종의 개혁정책으로 근대문물 수용의지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1905년 군사압박 조약체결 한일협상조약 불평등 조약으로 고종의 서명도 없는 을사늑약이었지만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진 이후 치욕의 현장으로 기억된다. 1907년 고종은 세 명의 신하를 불러 을사협약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네덜란드 헤이그로 친서와 함께 특사를 파견하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희망을 걸었으나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고 그것을 빌미로 고종 폐위되는 운명을 맞는다. 국가의 대외적 주권을 상실한 을사늑약과 시련 속에서도 활로를 모색하려 했던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다. 중명전은 역사를 품고 정동의 발길이 뜸한 막다른 골목 끝에 외로이 홀로 남아 겨울 함박눈을 맞고 있다.
2. 구 신아일보사 별관
1930년대에 건립되어 미국 싱거 미싱회사 사옥으로 쓰였다. 이후 1969년 신아일보사에 매각되었다. 3,4층을 증축하여 신문사의 별관으로 활용했다가 1980년 대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경향신문사에 강제 통합, 폐간되었고 건물은 신아기념관으로 남아있다. 1930년 당시 민간 건물로는 드문 철근콘크리트조의 건물로 외벽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지은 일제 강점기의 건축기법이 잘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한국근현대사 중 언론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며 지금은 여러 업체들이 입주한 민간 사옥으로 이용되며 등록문화재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3. 구 러시아공사관
사적 제253호인 러시아 공사관 건물은 조로수호통상조약(朝露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된 뒤 1885년(고종 22)에 착공되어 1890년 준공되었다.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고 이 사건을 아관파천이라 한다. 이후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공사관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초기에는 큰 규모로 지어졌으나 6.25 동란 시기에 파손되고 지금은 지하층 일부와 탑 부분만 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오늘도 정동공원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외롭게 서있다.
4. 성공회 성당
서울에서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 양식의 3층 교회건물이다. 영국인 건축가 딕슨이 설계하고 브룩스가 공사감독을 맡아 1926년 5월에 완공하였다. 하지만 일부 완성되지 못한 부분의 설계도가 발견되어 1996년 추가공사로 완성하였다. 붉은색과 검은색 기와의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아치가 연속되는 벽면은 아름답다. 중앙의 큰 종탑과 작은 종탑들이 성가대처럼 거룩한 합창을 하듯 하모니를 이루고 전체 조형은 높고 낮은 매스들이 어울려 율동감을 갖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서양인에 의해 설계된 고전적 비례미를 갖춘 건축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5. 덕수궁 대한문과 덕수궁 돌담길
복잡한 서울시 심장부인 세종대로와 고층빌딩의 도시는 행인들의 발걸음조차 빠르고 분주하다. 하지만 대한문을 통과하는 순간 시간, 공간, 장소가 전혀 다른 주파수의 영역을 체험할 수 있다. 대한문은 현재에서 과거로, 빠름에서 느림으로, 도심에서 자연으로 즉시 이동하는 타임캡슐의 관문과도 같다. 조선시대의 다른 궁들도 마찬가지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여러 수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당당하게 덕수궁의 정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덕수궁 입장 혹은, 정동 산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수행하며 정동길로 안내한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이문세의 노랫말처럼 이 풍경에는 연인들이 잘 어울린다. 이 길을 걸었던 커플 수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돌담길을 따라 이어진다.
6.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뛰어난 인재를 많이 양성한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이다. 붉은 벽돌과 지붕 위의 뻐꾸기창문이 고전적인 비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종황제는 이곳에 인재를 기르라는 현판을 내려주었는데 1984년,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 후, 현재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을 비롯하여 주시경, 나도향 등 수많은 근대지식인을 배출한 신교육의 발상지이자 신문화의 요람이다. 김소월 시인이 학창 시절에 배우던 교실과 오래된 나무책걸상이 정겹게 느껴진다.
7. 정동극장
1908년 신극과 판소리 전문 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1914년 봄, 화재로 소실된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복원 이념을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극장으로 2015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건물로 위요된 내부 마당을 무대하고 생각하면 그 마당에 선 자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마당 언저리는 벤치와 테이블이 있는 아늑한 장소니 여기서 관객이 되어도 좋다. 이렇게 정동극장은 자연스럽게 무대, 객석, 주인공, 관객의 요소들로 구성된다. 오늘따라 봄볕도 따스하니 지인들과 만나 수다 떨기에도 좋다. 최근에는 정동극장을 새로 단장하기 위한 신축계획을 가지고 공모절차를 거쳐 설계안이 추진되고 있다.
8. 덕수궁
덕수궁은 조선의 다른 궁궐들과는 다르게 전통과 근대가 만나는 장소다. 정릉동 행궁에서 출발하여 경운궁이 되었다가 덕수궁이 되기까지의 장구한 서사적 이야기가 숨을 쉬고 있다. 특히 고종의 역사가 함께 하고 있는데 덕수궁은 명실 공히 '조선'의 국호를 바꾸고 선포한 '대한제국'의 황궁인 셈이다. 서구문물 수용에 적극적이고 개방적 사고를 가진 고종은 궁궐 안에 르네상스 양식의 서양건축물을 세웠으며 전각 내에도 전화와 전등 같은 신문물을 설치했다. 덕수궁 석조전(현 대한제국 역사관)이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것은 새롭게 출발하는 대한제국이 서구의 근대국가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천명했음이다. 서관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 정전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1902년)에 창건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초기에는 2층 건물이었으나 화재로 손실 후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거친 박석으로 포장된 넓은 마당에는 벼슬의 위계에 따라 위치를 알리는 표석들이 남아 침묵하며 옛 역사를 알리고 있다.
- 석조전
대한제국의 황궁인 경운궁의 첫 건물이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것은 새롭게 출발하는 대한제국이 서구의 근대국가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천명했음이다.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석조전 전면에 배롱나무도 일품이지만 그보다 오래된 수양벚나무의 벚꽃이 해마다 화사하게 피어 주니 봄을 먼저 알려주는 전령사와 다름없다.
- 함녕전, 석어당, 즉조당, 준명당
덕수궁 내 고궁산책은 반드시 화창한 날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만 버리면 비 오는 풍경도 새롭다. 함녕전을 둘러쌓은 담장의 기와에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감상하며 젖은 보행로를 천천히 걸어본다. 빗방울로 인해 바닥에서 튀어 올라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묻어나는 흙조차 정겹다. 더 걸으면 석어당을 앞에 두고 즉조당과 준명당이 연결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담장너머 배경에는 고층의 현대건축물들이 서있어서 현대와 전통이 대비를 이룬다.
요란한 색상의 우산을 쓰고 재잘대며 덕수궁을 방문한 여학생들이 고궁을 배경으로 비 오는 풍경에 담긴다. 초록색 잔디밭은 가을을 앞두고 퇴색할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따라 선명하다. 오래된 배롱나무는 온통 붉은 꽃으로 자신을 치장하여 빗속에서 더욱 강렬한 색상을 내뿜고 있다. 그 자신만만한 자태는 정원의 주인공처럼 존재감을 과시할 만하다.
9. 서울시립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재판소인 평리원(한성재판소) 자리에 1928년 일제가 경성재판소를 지었고 광복 후 대법원으로 사용되었다. 2005년 5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리모델링되어 개관하였다. 정동길에서 조금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오르는 길은 녹음이 짙은 수목으로 이루어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비가 오는 날, 미술관 방문은 촉촉한 감성을 선물한다. 우산 속에서 낭만적인 빗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도 좋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는 당황스럽지만 오히려 미술관 안에서 머물며 전시작품과 교감하고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10. 구세군교회 앞 길
구세군이라는 말을 들으면 해마다 성탄절 시즌, 명동거리에 등장하는 불우이웃 돕기 자선냄비가 먼저 떠오른다. 정동 1928 아트센터(구 구세군 중앙회관)와 이웃하며 서있는 구세군교회 앞길은 덕수초등학교 등하교시간을 제외하면 비교적 여유로운 길로 산책하기에 좋다. 교회 전면에는 쉬어갈 수 있는 야외테이블과 의자가 보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면 맞은편에서 구 러시아공사관까지 ‘고종의 길’은 짬을 내어 걸어볼 만하다.
11. 정동제일교회
우리 땅에 전파된 한국 최초의 감리교 교회다.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가 1885년 한옥을 구입하여 전도를 시작했는데 그곳이 벧엘 예배당이 되었다. 그 후 1887년 정동 37번지 일대에 배재학당을 세우고 지금의 정동교회 자리에 한옥을 개조해 감리교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이후 신도가 200명이 넘어서자 새 교회당을 신축, 지금의 정동제일교회가 되었다. 625 동란을 겪으며 부분적인 훼손도 입었으나 이후 신관을 증축하고 중앙광장의 십자가 타워를 중심으로 기념관도 별동으로 증축되어 신앙공동체의 클러스터를 이루게 되었다.
정림건축에 입사 후 초년병시절에 운 좋게 정동교회 기념관의 설계를 담당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가는 건물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붉은 벽돌의 건축은 퇴색해가는 나무들과 함께 이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성의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이문세의 광화문연가의 노랫말에도 정동교회가 등장한다.
12.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이화여자고등학교 캠퍼스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제 제3호이다.
박공지붕과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근대건축물로 이웃한 정동제일교회와 함께 정동길의 풍경을 한층 더 멋스럽게 하고 있다. 창문에 화강석 키 스톤(key stone)들이 전체 벽돌건축의 지루함을 살짝 벗어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보행로에는 한식기와를 얹은 담장이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데 담장에 겨울햇살이 드리우면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여성도 배워야 하고 이름을 가져야 하고 그래야 조선에 힘이 생긴다.”는 130여 년 전 초창기 이화학당의 교육이념 등 이화의 설립배경과 역사를 담고 있다. 1915년 미국인 사라 J. 심슨이 위탁한 기금으로 건립되었다.
13. 정동 1928 아트센터 (구 구세군중앙회관)
구세군회관은 1928년에 완공된 구세군의 상징성을 지닌 근대건축물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학대학 건물로 한 때, 구세군사관학교로 활용되기도 했다. 2019년 본관과 별관을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적 공간으로 품격을 높였다. 현재 구세군 역사박물관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함박눈이 애니메이션 장면처럼 겨울왕국을 만들면 고전적인 아름다움은 한 층 더 돋보인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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