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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교수의 '맛있는 집'] 33년간 한결같은 맛을 보여준 '임병주산동칼국수'volume.14 2021. 8. 30. 16:55
한여름 무더위를 씻기 위한 면식 수행지 (麵食 修行地)는 서초동 ‘임병주산동칼국수’입니다. ‘산동’이라는 이름은 산수유가 아름다운 전라남도 구례 산동면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아들놈이 태어난 1988년에 오픈한 칼국수집은 2017년부터 매해 미슐랭 ‘빕 구르망 (Bib Gourmand)’에 선정되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빕 구루망’은 비싸지 않은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가성비 높은 레스토랑을 의미하지요. 지난 연초에 늘 붐비던 1층 가게를 허물고, 그 자리에 4층 건물을 지어서 이번 7월 중순에 재오픈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앉자마자 ‘콩 하나, 칼 하나!’라고 외치듯 주문하면 종업원은 단골임을 직감합니다.
칼국수는 손으로 썬 두툼한 면발에 찰기가 오롯이 느껴지며 바지락, 애호박, 김 가루와 잘 어우러지는 담백하고 따끈한 국물을 후후 불어먹으면 속이 다 개운해집니다. 마치 명의가 다수 포진한 강남세브란스병원 인근에 사는 강남 주민들의 행운처럼,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집에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슬세권’ 칼국수 맛집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요.
콩국수는 구례산 콩으로 갈아 만든 고소하고 진득한 콩국에 담긴 쫄깃한 면발을 꺼내어 후루룩 삼키면 입안에서부터 행복 시그널이 뇌로 전달됨을 느낍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얼음 둥둥 띄운 우뭇가사리 콩국은 농도가 낮아서 간식용으로 훌훌 마셨는데, 산동 칼국수의 진한 콩국수는 한 그릇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집니다. 아무 양념이나 고명이 없기에 콩 고유의 ‘건강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칼국수, 콩국수만큼이나 내세울 만한 이 집의 음식은 ‘갓 담근 김치’입니다. 테이블마다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있어 먹을 만큼 덜어 먹게 하는데, 제법 많이 담겨 있던 생김치는 먹다 보면 어느새 바닥을 보입니다. 칼국수와 콩국수의 담백한 맛을 더욱 살려주는 이 집의 환상적인 조합입니다.
33년 동안 한결같은 맛은 좋은 식자재와 주방에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가성비 좋은 ‘임병주산동칼국수’ 식당이 백 년 이상 지속하는 가게가 되길 소망하며, 우리 부부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고 같은 음식이라도 최고의 맛을 내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언제라도, 면식 수행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글. 박효진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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