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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스페이스로 진화하는 의료공간 트렌드volume.14 2021. 9. 1. 20:06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 편히 몸을 기대어 독서를 하거나 음악 감상을 하는 삶의 여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먹과 텐트를 반반 섞어놓은 듯한 모습의 카쿤Cacoon이 집과 카페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크게 유행하며, 나만의 독립된 작은 공간에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로망을 자극했다. 비록 카쿤에 앉지 않더라도 유니크한 형태와 감성이 더해져 하나씩은 두는 것이 익숙했을 정도니까.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나서 우리가 팬데믹 속에 살게 될 누가 알았을까. 이제는 굳이 복잡한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의무적으로 저마다 보이지 않는 보호장치를 하나씩 들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제한되며 활동반경이 줄어든 요즘, 사람들은 갑갑한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소하기 시작했다. 값비싼 명품을 거침없이 소비하거나 국내의 조용한 여행지로 눈길을 돌리며, 마음껏 사람들을 만나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있다. 또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으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테리어와 가구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위축될 것만 같았던 경제상황에서도 온라인 비즈니스는 급성장하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의료분야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보살펴야 하는 막중한 사명감을 안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은 기존에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에서 이제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까지 케어해줘야 하는 복잡 다변화된 기능을 갖춘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근처 동네병원만 가봐도 우리나라 병원시설이 근 10년 사이 급작스레 좋은 환경으로 변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의료 공급의 관점에서 벗어나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시설을 갖추는 환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병원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해진 환자들은 병원 하나를 고를 때에도 검색과 평판을 기준으로 병원을 비교하고 선택한다. 게다가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검색과 리뷰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를 공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최선의 서비스는 의술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당연한 처사이다. 하지만 환자가 의사를 만나러 오기까지 정말 많은 요소를 고려하여 우리를 선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길에 걸려 있는 수많은 병의원 간판이 그야말로 말처럼 널려있는데, 의료 공급자끼리도 서로 경쟁하며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울지 내심 고민이 크리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제공의 장이 되는 의료공간 디자인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환자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수년간 의료공간을 디자인해왔지만 요즘처럼 큰 변화를 느껴본 적이 없다. 라떼향을 풍기며 잠시 과거를 돌이켜보면, 한 때 의사 동선을 최대한 빠르게 하는 원스톱 진찰 동선을 계획하며 자랑스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환자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그런 병원을 꺼려한다. 직원들도 내가 머물고 싶은 공간에서 즐겁게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공간은 더 이상 디자이너의 직관에 의존하여 디자인하지 않고, 근거에 기반하여 스트레스를 감소하고 행복을 증폭시키는 디자인을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실내에 치유환경에 적합한 자연요소를 도입하여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자연채광이 적용된 디자인은 환자들의 빠른 회복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자인된 병원들이 환자뿐만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 및 쾌적함을 향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안한 요즘의 시기를 함께 이겨나가고, 또 한편으로는 힐링 스페이스를 구축하여 경쟁으로부터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노태린 대표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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