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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형 교수의 '경험의 눈을 가진 평생학습자'] 진정한 예술 경험volume.11 2021. 6. 1. 18:01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런던이나 뉴욕을 가면 대부분 빠지지 않고 공통으로 경험하는 것이 바로 뮤지컬을 보는 것이다. 캣츠, 레미제라블, 빌리 엘리엇, 오페라의 유령 등이 빠지지 않는 단골 뮤지컬이다. 오페라는 학생이 관람하기에는 비용적인 부분이나 댄스, 공감되는 음악, 스토리와 같은 콘텐츠의 흥미 요소를 고려할 때 여러모로 보이지 않는 진입 장벽이 있다. 그래서 런던이나 뉴욕의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타임스퀘어나 피커딜리 서커스에는 특정 시간대에 팔리고 남은 저렴한 뮤지컬 공연 티켓을 파는 티켓 할인 부스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두 곳의 티켓 할인 부스가 가장 공연 관람 경험을 망치는 원흉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배낭여행의 필수품인 여행 가이드 책에는 공식처럼 이 두 곳에서 저렴하게 뮤지컬 티켓을 사야 합리적인 배낭여행족인 마냥 행동을 유도하는 낚싯바늘에 코가 꿰어져 별 비판 없이 구매하고 관람하는 것이 패턴이었다. 이러한 이끌림의 결과는 캣츠인 경우 처음 고양이 배우들이 등장해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잠의 세계에 인도되어 마지막 커튼콜을 보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 고양이 배우들을 포함해서 커튼콜의 배우들은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토리와 연기, 음악의 경험은 없는 것이다. 레미제라블, 빌리 엘리엇도 같은 반복적인 최악의 경험을 방문할 때마다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을 접하고 나서는 처음 시작부터 커튼콜까지 졸지 않음은 물론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끝났을 때 일어나서 브라보하고 외치기까지 했다. 이런 벅찬 감동을 할 때에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된다. 평소와 달리 공연장을 나가기 전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오페라의 유령 가면과 장미가 그려져 있는 검정 티셔츠는 물론이고 엽서 등 액세서리까지 구매하게 된다. 이게 감동적인 공연 경험이 가져오는 놀라운 힘이다. 평소에 엽서 하나라도 아까워서 사지 않는 짠돌이에게는 놀라운 변화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게 된 이유에는 티켓 구매에 있어서 맥락적인 스토리가 있다.
뉴욕을 친구들과 방문했을 때 평소와는 다르게 티켓 할인 부스가 아닌 맨해튼 미드 타운의 245 West 44번가에 위치한 브로드 웨이 극장인 마제스틱 극장 내의 티켓 박스에서 구매를 하였다. 마제스틱 극장은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극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 일행은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일행 바로 앞에 있던 40대 동양인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네~” “학생들인 것 같은데 혹시 아주 좋은 자리를 저렴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드릴 테니 제 말대로 해보세요”라고 답을 한다. 그의 논지는 타임스퀘어에 있는 여행자센터에 가서 영어로 여행사에서 왔는데 뮤지컬 할인권을 받으러 왔다고 하면 준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공감하듯 항상 가난한 부류가 유학생이고 배낭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길로 한달음에 달려가서 할인권을 받아 아주 저렴하게 할인 부스의 가격으로 가장 좋은 구역의 앞자리에서 뮤지컬을 경험했다. 무대 밑에 오케스트라가 있는지를 그때 알았고 배우들의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시상에 맺혀 기운생동의 감흥을 갖게 하고 바로 앞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의 음의 파장이 파장별로 나의 팔에 돋아난 털을 하나하나 다르게 떨리게 하는 총체적인 뮤지컬 경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해외 출장길에 뮤지컬은 물론 오페라까지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가장 좋은 자리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관점과 경험과 가치로 이어지게 되었다. 특히 혼자 여행을 갈 때 이 점을 활용하면 좋다. 미리 몇 달 전부터 예매하지 않아도 항상 좋은 존의 자리에는 주로 커플들이 예매하다 보니 중간 사이사이에 한 자리 정도가 이빨 빠진 것처럼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런 패턴을 잘 활용하여 공연 며칠 전에도 포기하지 말고 오롯이 혼자만의 호사스러운 경험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후 대학원을 다닐 때 미학 시간에 이와 같은 경험이 학술적인 관점에서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있어서 ‘아우라(Aura)’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미적인 기원은 라틴어 ‘Nimbus’에서 찾을 수 있고 구름, 흐림, 몽롱함의 의미가 있다. 주로 종교적 성화의 하나님이나 천사 등의 성인 뒤에 원반형 이미지로 표현되고 숭배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고대 희랍어로는 ‘입김’, ‘공기’ 등을 의미하며, ‘연기’, ‘신비로운 효력’, ‘신비로운 분위기’ 등을 뜻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근대 이전에는 형이상학적인 종교와 관련된 용어로 사용되다가 발터 베냐민이 예술의 관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도에 많이 회자한 그의 책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의 아우라(Aura)는 사물의 유일성을 구성하는 ‘분위기’를 의미하며, 예술작품이 향유하는 역사적 유일성과 진품 성을 의미하는 내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장황하게 아우라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필자가 경험한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공연의 경험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아무리 5K의 고해상도의 공연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서 최고의 하이파이 오디오로 감상이 가능하더라도, 현지의 극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것과 직접 볼 때 산 자리의 개미처럼 등장인물의 행위를 보고 그들의 아리아와 멀리 떨어진 곳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음악을 보는 경험과 가장 가까운 좋은 자리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 중에 침 튀기는 것과 땀방울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 오케스트라가 전해주는 파장으로 팔뚝의 털 하나하나가 반응하는 경험은 아우라 안에서도 경험의 급이 다름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우라를 느끼는 경험에서도 어디서 경험하느냐에 따라서 시쳇말로 경험의 클래스가 다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공연에 있어 영원히 회자하고 획을 긋는 실험적인 아우라를 만들고 경험하게 하는 공유하고 싶은 예술적 사건이 있었다.
존 케이지는 1951년 하버드 대학교의 무향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4분 33초>라는 작품을 작곡한다. 그 당시 케이지는 당연히 무향실이니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공간 안에서도 소리는 존재했다. 일상의 경험이 창조적이면서 파괴적인 혁신을 하고 오는 작품의 동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과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이듬해인 1952년 뉴욕의 한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 David Tudor가 <4분 33초>를 초연하게 된다. 초연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 전시인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연주자는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행위만 중간중간 반복할 뿐, 아무 연주를 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관객들은 이 미친 행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 중에 피아노 연주 소리 대신 발생한 공연장에서의 피아노 닫는 소리, 악보 넘기는 소리, 관객들의 기침 소리나 술렁이는 소리,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잡음 등이 새로운 공연 콘텐츠가 된 것이다. 연주 소리 없는 연주 공연이 주는 도발적인 아우라의 경험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예술의 유일성을 보여주는 창조적인 행위였다.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되었을 때 기존의 문법과 관행을 파괴하며 해괴하기까지 한 공연으로 현장에서 관객으로부터 맹렬한 야유를 일으키고 반대 시위가 있었을 정도의 역사를 통해 현대음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사건 이후로 공연계에서 아주 도발적이면서 창조적인 행위였다. 물론 케이지의 공연 또는 작품 전시에 앞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관점은 케이지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또 있었지만 이와 관련된 경험의 가치는 지면상 차후에 미술 경험을 중심으로 다른 글 통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이렇듯 예술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여러 관점에서 말할 수 있지만, 기존의 관념과 관행과 문법을 파괴할 정도의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가치일 것이다. 요즘처럼 코로나로 인해서 한국에 갇혀 뉴욕의 오페라의 유령은 보지 못하니 아쉽지만, 노들섬 라이브 하우스에서 하는 이날치의 공연을 통해서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아우라의 참된 가치를 느끼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시기적절한 예술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기반의 소확행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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