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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울릉도 화첩기행volume.11 2021. 5. 28. 19:41
울릉도 화첩기행
코로나의 여파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에 세상은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아직도 우리는 지인들과의 편한 식사자리도 기피해야하고 답답하지만 마스크 속에서 입을 다물고 지내야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상상조차 어려웠던 코로나시대에 적응해나가느라 모두 힘들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로 하늘길이 묶인 상태라면 바다건너 울릉도를 가보시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척박한 코로나 시대 속에서도 인간은 감성을 더 필요로 한다. 울릉은 감성이라는 여백을 선물해주는 장소다. 더구나 5~6월은 파도도 잔잔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안성맞춤의 시기다.
울릉도는 대한민국이 보유한 신비의 섬이다. 제주가 자랑스러운 관광의 섬이라면 울릉은 이색적이고 비경으로 가득 차있는 신비의 섬으로 손색이 없다. 아직은 관광객들의 입맛에 길들여지지 않은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섬이다. 남해의 다도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즈넉한 풍경에 비해 이 곳은 수평의 바다위에 깎아지른 듯 수직으로 곧추 서있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섬이라서 선상에서의 첫 인상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용암분출로 이루어진 섬이지만 제주의 검은 현무암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고 투박하고 거친 면모 때문에 야성미 넘치는 마초스타일의 강한 남자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상남자와 같은 울릉은 동해바다 한가운데서 오랜 세월동안 외롭게 강풍과 파도와 싸우며 우람한 모습으로 영토를 굳건히 지켜내는 기특하고도 대견한 섬이다.
강릉 여객터미널에서 쾌속 여객선으로 출발하면 약 3시간 후 쯤 이면 울릉군 저동항에 도착한다. 기다란 방파제 중간에 삐죽 솟아있는 저동 촛대암은 상징적인 모습으로 시야에 먼저 포착된다. 오징어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평화로운 저동항의 풍경을 아우르며 서있는 촛대바위는 특별히 일출과 야경이 아름답다. 이 바위를 중심으로 갈매기 떼들이 날개를 흔들며 여행객들을 환영하며 어지럽게 비행한다. 아직 개발이 더디 진행되어 보존된 원시자연을 체험할 수도 있고 비록 덜 세련된 건축물들이지만 오래된 주거 군이 경사지에 중첩되어 남아있어 다행이다. SUV 차량를 빌려 섬을 일주하는 동안에 대책 없이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솟아나와 있는 봉우리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놀라움 그 자체다. 송곳봉이나 곰바위같이 하늘로 치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의 장엄한 자태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지만 그 중에서 바다 쪽으로 뛰쳐나간 거북바위나 코끼리바위, 삼선암같은 녀석들도 물 위에서 장관을 이루며 감동을 자아낸다.
차량이동을 위한 많은 터널, 좁다란 일방통행 길의 신호대기, 지그재그 도로 등, 온통 급경사인 섬을 활용한 도로망도 특이한 코스가 많다. 하지만 뜻 밖에 높은 산 위에도 평지가 있어 그 곳에 무릉도원처럼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이룬 곳도 있다. 바로 나리분지 관광지구가 그곳인데 하얀 꽃이 피어있는 넓은 명이나물 밭과 작은 교회건물의 조화가 특히 눈에 띈다.
태하향목 관광모노레일을 타고 산위로 올라가서 태하등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한민국의 10대 비경은 자연이 빚어낸 예술로 압권이다. 낙조와 함께 해안선과 중첩된 봉우리들이 만들어낸 비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도동항 인근에 위치한 독도박물관 견학 후 케이블카를 이용, 독도전망대에 오르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독도를 볼 수 있다. 조감도를 보는 것처럼 성냥갑같이 생긴 작은 집들과 선착장, 넓은 바다위에 흰 선을 그으며 항해하는 여객선들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섬 전체를 구석구석 돌아다녀보면 오랜 과거로부터 인간이 급경사의 가파른 지형을 어떻게 활용해왔고 거친 환경에 순응 혹은 극복해 왔는지 그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극한의 자연에 도전한 인간의 오랜 역사가 축적되어있는 섬이다.
한 번 쯤은 여객선에 탑승해서 바다위에서 조망하는 관광코스 체험도 해 볼 만 하다. 해수면 위에 가파르게 서있는 울릉도의 기암절벽을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스케치북이나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다. 붐비는 승객들 사이에서 햇살 좋은 갑판 한편에 자리를 잡고 일행과 마시는 캔맥주는 상쾌한 바닷바람 속에 흥겨움을 더해준다. 해안을 일주하는 동안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며 곡예비행으로 즐거움을 선물해준 갈매기 떼들에게 보답으로 안주로 먹던 새우과자를 가끔씩 던져주는 일도 즐거운 체험으로 추억하게 될 것이다.
울릉도의 먹거리 기행도 입맛을 자극한다. 오징어와 호박엿은 일반인들에게도 이미 유명해졌지만 그 외에도 따개비 칼국수, 꽁치물회, 홍합밥, 오징어내장탕과 심해에서만 잡힌다는 닭새우와 꽃새우도 별미다. 명이나물과 부지깽이 절임도 빠지면 섭섭하다.
2년 전 쯤에 북동측 4km구간의 최종 터널공사가 완료되어 이제 울릉도는 차량으로 일주가 가능해졌다. 아직도 섬 여기저기에 터널을 뚫고 도로를 넓히는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라 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동항 인근에는 소형비행기가 출항할 수 있도록 넓은 부지를 마련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있던 사업이지만 경제성, 지형적 문제 등 여러 요인들이 겹쳐 사업이 계속 미루어지다가 구체적으로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예정대로 2025년 공항이 완료되면 서울에서 울릉도 간 이동 소요시간이 7시간에서 1시간으로 대폭 줄어들고 비용도 50~60%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50인승 이하 소형항공기가 취항한다지만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들게 될 것이다. 관광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관광객들의 유치와 편리함을 위해서 소중한 청정자연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방문객들의 자연보호정신과 울릉군의 개발정책에 신중함이 더해져야 하겠다.
우려와 기대를 가지고 울릉도를 떠나 다시 강릉항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나오며 뒤돌아보니 배웅 나온 촛대암이 시나브로 멀어지고 있다 . 짧은 일정으로 머물다가지만 섬 주민들의 순박한 민심으로 금세 정이 들은 데다 귀한 볼거리, 먹거리를 선물해 준 고마운 섬이다. 울렁대는 처녀가슴처럼 울릉도의 체험과 추억은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은데 그럴수록 작별의 마음은 애잔하다.
오후 늦은 햇살에 물비늘이 더욱 눈이 부시다. 아쉽지만 독도여행은 다음으로 기약한다.
굿바이. 울릉!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디자인 총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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