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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늘 속도를 늦추게 합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가도, 막상 이 달이 오면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먼저 돌아보게 됩니다. 지난 시간 동안 무엇을 해냈는지보다 어떻게 버텨왔는지를 곱씹게 되는 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오래된 두려움 하나가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우연히 마주쳤던 한 장면 이후로 뱀이라는 존재는 늘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진은 물론이고, 글자만 보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가족 중에는 뱀 띠가 둘이나 있었고, 태몽 중 아이들 중엔 뱀이 휘몰아치는 꿈을 꾸며 세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그 두려움에 끌려다니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켈리가 말한 ‘창조적 자신감’처럼 사람은 단번에 바뀌지 않지만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거리까지 스스로를 데려가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놀라던 시절을 지나 이렇게 차분히 글로 적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은 변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면 지난해, 뱀의 해는 제게 꽤 버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겹치며 무엇을 이루기보다는 견디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 한 해였습니다. 그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말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개띠인 제게 흔히들 궁합도 보지 않는 해라고들 말합니다. 올해 이 말이 유난히 가볍게 들립니다. 누군가와 맞추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지 않아도 되고, 괜히 앞서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제 리듬으로 걸어가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올해를 맞으며 저는 거창한 신년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의 마음만 남겨두었습니다. 작년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질 것, 그리고 멈추지 않을 것. 큰 도약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주 작은 보폭이어도 괜찮습니다. 조금씩 나아가는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한 해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혹시 아직 계획이 없으시다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작고 현실적인 다짐 하나로 이 한 해를 함께 살아가 보았으면 합니다.
2026년, 각자의 속도로 그러나 멈추지 않고. 매거진 HD는 사람과 공간, 그리고 삶의 회복을 바라보는 시선을 올해도 차분히 기록해 나가겠습니다.
2026년 1월
발행인 노태린728x90'ARTI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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