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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와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제주도 2편volume.08 2021. 2. 27. 05:16
제주도 두 번째 이야기.
'함덕해변, 본태박물관, 비오토피아, 가파도'제주의 전통 민가들은 바람에 대응하는 지붕 형식과 현무암을 쌓아 올린 담장이 일반적인데 전통 민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개량형 지붕구조를 가진 집들이 대신하고 있다. 섬 전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이름난 해변도 많지만 그 중 함덕 해수욕장도 가 볼 만하다. 특히, 물이 얕아 썰물 때에 함덕의 해변은 드넓은 모래사장을 드러낸다. 워낙 넓은 해변이라 걷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하다.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은 초라해 보이기 마련인지 바다와 사람은 서로 대조적인 풍경이 만들어진다.
누구라도 삶이 따분하거나 지치고 힘들 때,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또 바다는 변함없이 넉넉한 인심으로 누구에게나 치유의 풍경을 선사한다. 바다와 해변은 언제 보아도 시간이 멈춘 태고의 장면 같은 느낌이다. 봄바람 속에서 한 번 더 따사로운 제주 함덕의 해변을 한가롭게 걸어보고 싶다. 멀리 배경에는 서우봉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근 카페와 맛집도 방문하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방파제 위를 걸으면 함덕 특유의 다양한 바다 풍경들이 채집된다. 날씨에 따라 석양 무렵이나 밤바다 풍경도 매력을 넘어 가히 마력적이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인 본태박물관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건축재료인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하여 특유의 건축 언어를 마음껏 공간으로 빚어내고 있다. 미로 형식의 관람 동선, 절제된 빛의 연출, 잔잔한 물과 벽을 타고 떨어지는 수공간의 요소들이 서로 관입하며 뛰어난 건축미를 연출하고 있다. 건축 공간뿐만 아니라 쿠사마 야요이, 백남준, 달리, 제임스 터렐 등 세계적인 예술 거장들의 작품도 볼 수 있고 우리나라 전통공예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수련이 떠 있는 호숫가 벤치에 앉아 무념무상, 멍 때리며 보내는 시간은 분주한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제주 비오토피아는 타계한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들을 연속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방주교회를 비롯한 포도호텔이 인근에 위치하고 수,풍,석 박물관 시리즈를 답사할 수 있다. 이른 아침에 방문한 방주교회는 언덕 위에서 바다를 조망하고 있다. 지붕은 반사가 되는 조각 판재를 사용하여 바닷물이 햇볕에 반짝이는 느낌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일본과 한국의 경계에 선 건축가는 다시 자연과 건축, 문명과 원시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 언어로 말을 건넨다. 투박한 디테일과 솔직한 마감 재료로 건축 디자인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는 흡사 예술가의 광기처럼 건축의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했고 탐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침묵의 답사를 권유한다.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이자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다”라는 말이 생생하다. 이런 멋진 말들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말과 그의 작업이 건축의 근원을 묻고 행해 왔음에 그 진정성 앞에서 겸허할 수밖에 없다.
가파도는 우연히 들렀는데 의외로 인상적인 장소다. 제주도민 중에서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은둔의 섬, 미지의 섬, 신비의 섬이다.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km 해상에 위치하며 더 남쪽에는 마라도가 있다. “갚아도(가파도) 그만, 말아도(마라도) 그만”이라는 작명 유래도 재미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에 표류하여 14년을 보내고 귀국 후에 쓴 하멜표류기에도 가파도가 소개되어있다. 낮은 울타리와 원색의 낮은 지붕들이 널찍한 밀도로 배치되어 있어 방문객은 편안한 감성으로 둘러보기에 충분하다. 양지바른 곳에 길고양이들도 흔하게 마주친다. 바람과 파도가 제법 거친 섬이지만 그 덕분에 봄철에 가면 물결치는 청보리 밭을 볼 수 있다. 최욱 건축가가 리모델링한 숙소에 하루쯤 묵으며 여유를 가지고 바닷가를 산책해도 좋다. 혹은 마을회관이나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문화예술 창작공간 등을 답사하며 슬로 라이프를 체험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섬 전체는 언덕이 없어 수평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바람개비 풍력발전기들이 수직적인 랜드마크가 되어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이제 겨울이 지나면 봄이 도래한다.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우리의 여행 본능까지 구속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 증세는 한적한 곳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치유될 수 있다. 다수의 만남과 대면 접촉의 제약으로 지리멸렬한 일상이지만 우리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시선과 신선한 감성을 건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제주의 몇 군데를 추억해보니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떠나고 싶은 그 곳’ 1순위다. 캘린더에서 봄철 연휴를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글/그림. 임진우 (정림건축 디자인 총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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