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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아름다운 성당들ARTICLE 2024. 12. 4. 09:35
도시와 건축, 그리고 성당
12월 마지막 달을 맞이하여 종교건축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유럽의 역사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이름난 도시마다 당대 최고의 건축으로 웅장하고 역사적인 성당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유럽성당의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왜소하지만 대한민국에도 감동을 주는 성당들이 있다. 그 중 인상적인 다섯 성당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단 대표적으로 명동성당과 남양성모성지 성당을 비교해 보면 매우 흥미롭다. 명동성당은 1898년에, 남양성모성지 성당은 2020년에 완공되었으니 두 건축물은 120여 년의 시간 차이가 난다. 명동성당은 도심지에 서 있고 남양성모성지 성당은 한적한 전원 속에 위치한다. 두 성당 모두 붉은 벽돌이 외장재료인 공통점이 있지만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어진 오래된 성당과 최근에 지어진 현대적 감각의 성당은 각각 그 특성과 매력이 다르다. 종교 건축물에 담긴 시대정신과 장소성이 다르겠지만 신성한 종교건축으로서 공간의 구현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를 건축가의 시선으로 비교해 보는 일은 재미있기도 의미가 있기도 하다. 그 외에도 성공회 성당들과 전주의 전동성당은 독자들과 함께 가보고 싶은 건축물이다.
남양성모성지 성당
명동성당이 서울의 심장부, 복잡한 명동의 한복판에 있다면 남양성모성지 성당은 한적한 지방 소도시의 전원 숲 속에 위치하고 있다. 즉, 드넓은 자연 속에 조성된 건축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고 자신의 내면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남양성모성지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하는데 병인년(1866년)에 박해를 받고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다. 이 곳은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전국 명산지에 뿌리내린 오랜 전통 사찰처럼 성지의 진입 과정은 나무숲과 새소리가 어우러진다. 더구나 성지의 게이트 전면 주차장으로부터 기념성당까지의 거리가 제법 있어서 잘 조성된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을 수 있다. 중간에 촛불이 가득한 봉헌실에 잠시 들르면 세속의 먼지를 떨어내는 묵상의 장소에 걸맞게 성스럽고 경건한 분위기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 같은 가톨릭 성당의 전통적인 종교건축 구법에 구속되지 않고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낸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한만원의 수작이다(2020년 봉헌). 이 건축물은 해마다 탁월한 7개의 수작에 수여하는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에 2024년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성당 건축의 상징성과 기품은 유지하되 형식과 전통의 틀에서 탈피하여 시대정신에 맞는 디자인으로 효율과 실용을 우선하였음이 보인다. 진입 게이트에서 멀찌감치 보면 두 개의 둥근 탑이 기념탑처럼 산 위에 우뚝 서 있다. 붉은 벽돌로 건축된 둥근 탑의 시각적 효과는 계곡을 오르며 건물에 다가갈수록 그 웅장함이 드러난다. 탑은 머리 부분이 사선으로 절개되어 천창의 기능을 가지고 강대상 전면에 빛 우물의 효과로 자연광을 퍼 나른다. 최종 도착 레벨인 본당의 클라이맥스는 실내 음향과 자연채광이 충만하도록 고려된 미사 공간으로 신을 만나는 장소에 최적화 되어있다. 둥근 천창에서 하느님의 은혜처럼 쏟아져 내리는 자연광은 루버로 확산되어 밝고 현대적인 미사 공간을 더욱 거룩하고 성스럽게 연출한다. 미사 후 야외동산 쪽으로 동선을 확장하면 열주로 이루어진 켜와 계단식 옥외공간이 성당을 위요하는데 신도들의 교제를 한 층 더하는 코이노니아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산의 능선이라 이 곳에서 비로소 하늘과 마주한다.남양성모성지는 기념성당 외에도 성모상을 비롯한 여럿 성인들의 조형과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과 같은 요소들이 결합 되어있다. 순례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아무 곳이나 걸터앉아 시선을 뻗으면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진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에 지쳐있는 방문객들이라면 신선한 공기와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마저 시공을 초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남양성모성지는 일에 부대끼며 분주했던 삶을 재충전하기에는 아주 좋은 답사지로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장소로 이 곳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서울 명동성당
명동성당은 ‘떠나고 싶은 그 곳’ 칼럼 중에 별도로 소개한 적이 있다. 좋은 도시마다 좋은 건축물들이 있고 일반적으로 건축가들은 아름다운 건축에서 영감을 얻고 감동을 느끼는데 명동성당은 역사적으로도, 건축적으로도 완벽한 건축물이다. 외벽 첨두아치의 반복과 하늘로 치솟은 뾰족한 종탑은 신을 향한 염원을 형상화한 고딕건축 양식의 특징이다. 명동성당 뿐 만 아니라 사도회관을 비롯한 부속건물들도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데 모두 외장재료로 벽돌이 사용되어 공동체적인 군집의 미가 느껴진다. 벽돌공이 한장 한장 쌓은 벽돌은 외장재료 이전에 건축물에 담긴 애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에 대한 경외감이요 정성이다. “가까이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처럼 건축물도 자세히 볼수록 그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명동성당은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여 1898년에 완성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명동의 랜드마크다. 수직적인 종탑의 조형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경건함을 상징하고 있다. 당시에 대성당의 건립은 그 이전 조선 후기 100여 년 동안 모질도록 박해를 받아왔던 한국 천주교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획득했다는 의미다. 성당 건립을 계기로 한적했던 명동의 경관이 바뀌고 단번에 수직적인 종탑은 가톨릭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특히 일반인들에게 뾰족지붕의 이미지로 각인된 고딕양식의 종현성당은 명동성당으로 개명 후 천주교인들 뿐 만 아니라 전 국민들에게 평화의 상징으로, 자유와 민주의 성지로 여겨진다.
대체로 종탑이 있는 성당의 전면 부분은 일반 대중들에게 익숙하다. 주 출입구 쪽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사진 화보집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단 배면의 외부공간은 전면과는 분위기가 다른 조형의 독특성을 느낄 수 있다. 힘차게 솟구치는 전면의 조형 언어에 비해 후면부는 둥근 외관과 높고 낮은 매스의 중첩, 작은 원형 창문의 구성으로 아기자기함이 비교된다.
이제 성당을 오르는 전면 계단 주변에는 크고 작은 광장과 숲길이 조성되어 오늘도 시민들은 작은 쉼터에서 여유를 가진다. 방문자들에게 산책과 만남과 휴식이 가능하도록 도심 한복판에서도 개방된 장소를 제공하여 사회적 기여를 실천하고 있다. 도심 속이지만 요즘처럼 걷기에 좋은 계절이라면 한 번쯤 쉬어가기에도 좋은 장소다.
서울성공회성당(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서울에서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 양식의 3층 종교건축이다. 서울시청과 덕수궁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인 건축가 딕슨이 설계하고 브룩스가 공사감독을 맡아 1926년 5월에 완공하였다. 하지만 일부 완성되지 못한 부분의 설계도가 발견되어 1996년 추가공사로 완성하였다. 명동성당이 고딕양식의 다이내믹하고 수직적으로 힘이 솟구치는 남성적인 건축이라면 성공회 성당은 섬세한 외관을 표현하고 있어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건축 요소가 많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성이 그대로 표현된 이 성당은 디테일이 섬세하고 원형아치를 건축요소로 활용하여 붉은색과 검정색 기와의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아치가 연속되는 벽면은 아름답다. 중앙의 큰 종탑과 작은 종탑들이 어울려 성가대처럼 거룩한 합창을 하듯 하모니를 이루고 전체 조형은 높고 낮은 매스들이 다 함께 모여 율동감을 갖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서양인에 의해 설계된 고전적 비례미를 갖춘 건축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화도 강화읍의 언덕 위에 위치한다. 서양 종교의 건물이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특이한 사례로 1900년 트롤로프 주교가 설계, 감독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서양건축사 수업시간에 암기했던 바실리카 양식의 내부 공간 영역들은 한옥의 형식 속에도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 상부 클리어 스토리(솟을지붕의 옆벽에 만든 창으로 지붕 밑을 한층 높게 창을 내어서 채광하도록 된 장치)에서의 채광은 목재로 마감된 성전 내부를 밝고도 엄숙하게 만든다. 백년의 숨결이 마루에서 시작하여 목조기둥을 타고 서까래로 이어지며 천장 대들보에 이르기까지 나무 냄새로 오랜 세월을 체감하게 한다. 고풍스러운 성당 현관 입구에서 지난 120 여 년의 세월을 함께한 보리수나무 아래에 서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을씨년스럽지만 겨울 풍경이 더 좋다.
전주 전동성당
전주에 위치한 전동성당 역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며 중앙의 종탑과 양쪽 계단에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을 올렸다. 한국의 천주교회 건축물 중에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원래 전동성당이 위치한 자리는 천주교 박해 시절에 수많은 신도들이 순교한 한 맺힌 자리였다. 1891년 현재의 위치에 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고 1908년에 착공하여 1914년에 외관 공사 완료 후 계속 공사를 진행하여 1931년에 축성식을 가졌다니 20 여 년 넘게 공사를 지속한 셈이다.전주한옥마을과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경기전의 널찍한 정원과 조선시대의 전통 건축이 어우러진 풍경들을 답사 후에 유럽풍의 고전적인 건축물을 비교 해보는 것도 답사의 관전포인트다.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종교건축의 내부 공간은 엄숙함과 거룩함의 분위기로 압도된다. 회중석의 배치는 신랑(nave)과 측랑(aisle),그리고 제단부의 반원형 애프스(apse) 등, 전형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바실리카 형식에 충실하다. 높은 천장과 측창으로 자연광을 조절하여 신비롭고 경건한 공간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때로는 주일 미사 시간이 아닌 평일에도 기다란 목재 의자에 신도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다. 조용히 읊조리는 그들의 기도가 성스러운 공간에 울리고 고해성사로 이어진다. 성당은 반드시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잠시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그 외에도 지역 도시를 탐방하다 보면 역사적인 성당들을 만나볼 수 있지만 이 성당들에서는 건축의 각별한 품격이 느껴진다.맺으며
12월을 맞이했고 우리 모두 한 해에 끄트머리에 서 있다. 분주하게 거리를 걷다가도 성탄 캐롤송을 들으면 단번에 동심으로 돌아가고 성탄절이 기다려진다. 12월에 첫 눈이 내린다면 그 날은 좋은 사람들과 벽난로 앞에 앉아서 따끈한 차 한 잔, 혹은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싶다. 한 해를 열심히 달려온 지인들을 떠올리며 축복한다. 지난 해를 성찰하며 새해에는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Without Love, We have Nothing’이라는 성경구절처럼.....
“HD매거진의 독자들도 기쁜 성탄과 새해를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ARTI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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