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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병원 마케터가 바라본 짧고 얕은 문화이야기] 김환기 기획전 ‘한 점 하늘.. 김환기’volume.37 2023. 8. 4. 08:57
촘촘히 박힌 숱한 점들에 하늘을, 별을, 그리움을 담다.
무슨 색을 좋아하니?라고 물어보면 푸른색이라고 어릴 적부터 한결같이 말해 온 나. 푸른 하늘을 푸른 달로 표현해 청백색의 달항아리와 한 공간에 두었고, 너울거리듯 하늘을 나는 푸른 점들도 만날 수 있다.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해지는 그 경험을 하고 왔다. 바로 호암미술관의 기획전 ‘한 점 하늘… 김환기’에서이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김환기 작품을 한 자리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193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생애 전반에 걸친 그의 작품 120점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제껏 제작연도가 미상이었던 <여인들과 항아리>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찾은 김환기 화백의 장녀가 소장하고 있던 홍익대 교수시절의 수첩에서 1960년으로 확인하고 제작연도가 파악되었다니 여러모로 의미 있는 전시임에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윤형근 화가의 단색 작품을 먼저 좋아했다. 윤형근의 작품 속 깊은 암갈색과 구성에 매료되었는데, 김환기 화가의 사위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윤형근 작품과 함께 김환기의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시대에 안주하지 않고 파리로, 뉴욕으로 도전해 나간 김환기
김환기, 그의 삶은 그림과 하나였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시대별 작품세계의 변모 과정과 함께 작품을 그릴 때 그의 생각과 느낌이 고스란히 그가 남긴 글로 벽에 적혀 있어서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김환기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조사해 본 바로는 1935년 일본 도쿄에 예술학도로 유학을 가서 서구 미술 사조를 흡수하고 추상그림에 심취했으면서도 전통미술을 기본으로 삼았다. 광복 후 1948년에서 50년까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고, 52년에는 홍대 교수로 취임, 1956년에 파리로 건너가 서구 미술을 체험하고 3년 만에 귀국한 뒤 한국 내에서 다양한 미술활동을 이어나갔다. 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커미셔너로 출국하여 회화 부분 명예상을 수상한 뒤 미국뉴욕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한 그이다.
편안하게 안주하며 살 수도 있었건만 오롯이 작품만 생각하며 한국에서 파리로 다시 뉴욕으로 끊임없이 세계로 도전해 나간 그는 한국적인 것을 한편으로는 잊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했다. 그가 외국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도 한국인에 대한 자긍심이 넘쳐났다.
이상의 아내였고, 사별 후 김환기의 아내가 된 김향안
그에 대해 알아보다가 그를 말할 때 아내 김향안을 빼놓을 수 없구나 싶었다. 몇 년 전 전시에서 큰 장신의 김환기와 그녀가 파리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스치듯 보고 지나갔던 게 생각난다. 그녀는 시인 이상의 아내였다. 불 같은 사랑으로 이상과 결혼했지만 불과 4개월만에 이상은 혼자 일본으로 작품을 위해 떠나갔고, 일본에서 폐결핵을 얻게 된 걸 알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가 임종할 때 함께 있었던 인물이었다. 일본에서 이상과 사별 후 힘들어하던 시기에, 세 딸을 둔 이혼남인 김환기를 알게 되고 문화적 교감으로 조금씩 알아가다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원래 이름은 변동림이었지만, 김환기와 결혼하기 위해 반대하던 가족과의 연을 끊고 남편의 성을 따라 김향안으로 개명한 것이다.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아내였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데, 그녀는 김환기의 꿈이 파리에서 전시를 하는 거라는 걸 알고,김환기가 파리로 떠나기 1년 전에 먼저 파리로 떠났다. 그녀는 불어를 공부하고 그가 쓸 아틀리에를 미리 구하는 등 지금 우리도 하기 힘든 추진력을 가진 대단한 여성이었다.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한 그녀는 뉴욕에서도 그의 작품활동에 원동력이 되어 주었고, 조언자이자 매니저였다.
시대별로 자연스럽게 전시된 김환기의 작품들
1부 전시장에서는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으로 표현되는 1930년대-50년대 명작들이 보여지고, 1951년 한국 전쟁기에 그린 작품인 <뱃놀이>, <푸른 공간>도 만날 수 있는데 설명을 보지 않는다면 이때가 전쟁터일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부산 피난시절 다락방에서 190cm 장신으로 쪼그리고 앉아 작품을 그리며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런 것도 예술과 싸우는 것일까?…한번은 복중에 일을 하다 말고 내 정신상태를 의심해 보았다. 미쳤다면 몰라도 그 폭양이 직사하는 생철지붕 바로 밑에서… 무슨 급한 부탁도 아니요… 그저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예술과 싸운다는 말을 이 다락 속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3년간 파리 시대는 주제가 요약되고 항아리와 달로 달로 대변되는 둥글둥글한 형태가 화면을 채워버리거나 극히 단순한 선으로 요약된 산 등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돌아와서 뉴욕에 가기 전까지도 구성이 단순해지면서 상징적 요소가 더욱 강해졌다.
2부 전시장은 19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고 난 뒤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때부터는 달항아리는 작품 속에서 사라졌고, 달 하늘 등이 서서히 선과 점으로 단순히 추상화 되어가는 걸 볼 수 있다. 이어진 전시에서는 친구였던 시인 김광섭이 시 ‘저녁에’의 한구절에서 제목을 따 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166>과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 낙찰 기록을 세운 <우주> 작품을 나란히 만날 수 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시 ‘저녁에’검은빛으로 가득 점화된 죽음 직전의 작품들
이 작품들은 눈으로 직접 봐야, 화폭 앞에 직접 서봐야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찍었지만 눈으로 본 그 감동이 오롯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을 가만히 드려다 보고 있으면 이 작품을 그릴 때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죽음 직전으로 갈수록 작품들은 검은 빛으로 가득하게 점화된다. 푸른빛의 화면에 활기 넘치던 점들이 어는 순간 검게 변해 표현될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그 점을 찍으며 그는 죽어간 사람, 살아있는 사람, 흐르는 강, 산, 돌 등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며 ‘예술은 절정이 없는 산이로라’라고 사위와 딸에게 보낸 편지에 털어놓았다.
1974년 6월 16일 일기에서 그는 ‘죽을 날도 가까워왔는데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고’라고 읊조렸다. 그렇게 죽음을 예감하며 그가 꿈을 담아낸 마지막 작품인 <17-VI-74>. 7월 6일 생에 마지막 점화로 그 작품에 점을 찍은 후에 1974년 7월 25일, 61세에 뉴욕에서 숨을 거두었다. 끊임없이 작품에만 매달리고 몸을 혹사했던 그는 건강을 잃어도 손에서 작품을 놓지 않았다.
김환기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국내 작품 중 최고가에 낙찰된 점화, 빅뱅의 탑이나 RM이 좋아하는 화가로만 알고 예술가로 거쳐온 삶과 작품세계는 정작 잘 알지도 못하고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가 단순히 그의 작품을 전시한 걸 넘어서 김환기에 대해 머리에 각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던 거 같다.
전시 제목에 있는 하늘은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인듯하다. 하늘의 달을 그렸고, 달항아리를 달과 동일시했고, 별을 작품에 묘사했고, 말년의 <우주>에서 보여주듯 그는 마지막까지 하늘을 담아냈다. 작품을 다 보고 나니 전시 제목이 더더욱 와닿았다.
글. 이현주 병원 마케터
이현주
글쓴이 이현주는 바른세상병원에서 홍보마케팅 총괄을 하고 있는 병원 마케터이다.병원 홍보에 진심이긴 하지만, 한 때 서점 주인이 꿈이기도 했던 글쓴이는 독서와 예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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