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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이탈리아 여행 2 - 중부에서 북부까지volume.27 2022. 9. 30. 22:08
이탈리아 여행 2 - 중부에서 북부까지
피렌체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위한 성지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지."이렇게 시작되는 영화로도 소개된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되었던 로맨틱한 도시다. 주인공 준세이가 자전거로 건너는 아르노 강의 풍경 너머 베키오 다리는 원색의 건축물들이 덧대어 구성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리 위에 지어진 옛 건축물은 지금도 활력 있는 귀금속 상업공간으로 활용되며 피렌체의 방문 명소로도 인기가 좋다.
도심의 광장 한쪽에는 어김없이 길거리 화가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그림을 그린다. 상업적인 미술이라도 이런 거리 풍경 자체가 예술이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우피치 미술관의 작품들을 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발점이 된 도시답다. 물론 메디치 가문의 후원도 밑거름이 되었다.
알베르티의 역작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아담하지만 외관은 완벽한 황금비의 비례로 설계되었다. 성당의 경건한 예배공간도 좋지만 부속 공간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는데 칼릴 지브란을 연상하게 하는 몽환적인 벽화와 프레스코 천정화, 수도원에는 정원과 중정을 낀 열주 회랑이 인상적이다.
골목길에서도 두오모 성당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 방문객의 위치를 알려준다. 인근 베키오궁과는 형제처럼 장엄한 크기로 어깨를 나란히 균형을 이룬다.
저녁 시간, 미켈란제로 언덕의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무명가수는 광장에서 버스킹으로 분위기를 돋우어준다. 이곳에서 조망하는 피렌체는 도심을 관통하는 아르노강 뒤로 거대한 크기의 붉은색 돔을 얹은 두오모 성당과 수직적인 베키오 궁이 오랜 형제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도시를 상징한다. 시나브로 어두워질수록 노을이 번져가는 도시의 야경과 함께 피렌체의 마지막 밤은 아쉽게 저물어간다.
피렌체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더 몰' 아웃렛 매장은 세계적인 브랜드의 명품샵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현대건축의 박람회장을 방불케 한다. 코로나 이 전에는 돈 많은 중국의 요우커들이 싹쓸이 쇼핑을 했단다. 주파수가 다른 시공간의 여행길에서 가끔씩은 허영과 사치도 필요하다. 오늘도 여전히 관광객들마다 들고 있는 커다란 쇼핑백들 안에는 득템의 만족감이 가득 담겨있다. 어쨌거나 여행의 즐거움 중에 쇼핑은 분명히 큰 항목을 차지하는데 중독성도 강하다. 그러니 언제 강림하실지 모를 지름신을 조심하시라.
베니스
아름다운 운하로 유명한 베니스는 '물의 도시'다. 한 때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지중해의 해양 강국으로 무역의 중심지였으니 정치, 예술, 건축이 중심 문화로 융성했던 흔적들이 도시 곳곳에 배어있다. 베니스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대중교통이래야 수상택시 밖에 없으니 시내투어는 걸어서 도시를 방랑하듯 배회하게 된다.
빈티지한 건축물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좁은 골목과 경사진 다리를 건너면 이윽고 산마르코 광장에 도달한다. 마치 조각품처럼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대규모의 산마르코 대성당과 수평적 청사에 의해 ㄷ자로 이루어진 위요된 넓은 광장, 그리고 베니스에서 가장 높은 99m99m 높이의 수직적인 붉은 종탑의 총체적인 배치 구성에서 이방에서 온 건축가의 머릿속 에는 경이로운 느낌표가 날아온다.
이곳 전통 건축물 중, 몇 개는 세계적인 현대 건축가들에 의해 리모델링되고 있는데 노후화된 도시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展도 국제적으로 유명한 행사 중 하나다. 건축물과 함께 리알토 다리를 비롯한 수많은 다리들은 이곳을 거쳐 갔던 유명 예술인들과 함께 저마다 역사가 깊고 스토리 역시 다양하다. 석양을 등에 지고 수상에서 노를 젓는 곤돌라의 낭만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도열해있는 다양한 건축물들은 영화나 베니스를 홍보하는 화보집에서 이미 익숙하다.
특히 클로드 모네의 ‘대운하’라는 작품들에서는 산타마리아델라 살루테 대성당이 배경으로 등장하며 낭만적인 물의 도시를 표현하고 있다.
이번 베니스 답사 일정은 너무 짧은 시간이라 여유 없이 돌아보기에 바빴다. 다음에 반드시 다시 오리라 마음먹고 아쉬운 발길은 밀라노로 향한다.
밀라노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공업 중심도시이며 교통의 요지로 최근에는 패션과 디자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말펜사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이동하면 밀라노 도시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다.
밀라노 관광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수직적인 모티브의 백색 대리석으로 지어져 그 위용이 대단하다.
도시계획 상 그 전면 광장에서 축을 형성하여 반대 측에는 스포르체스코 성의 위치하는데 빈티지한 벽돌의 성벽은 고색창연하고 그 규모 역시 방대하다.
밀라노 국제가구 디자인 박람회 (Salone del Mobile Milano)
2년마다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행사도 있지만 이곳 밀라노에는 매년 'Salone del Mobile Milano'라는 국제가구 디자인 박람회가 열린다. 코엑스 전시장 규모의 10배가 넘을 듯 한 대규모 전시장에는 각 업체마다 개성 있는 가구와 소품들이 방문객들의 눈을 호강시켜준다. 공간에서 가구는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 이곳에 전시된 가구들은 역사와 전통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가구들도 많을 뿐 아니라 매우 독창적이며 디자인이 탁월하다. 디스플레이도 세련되고 전시장을 가득 메운 방문객의 숫자도 놀랄만하다..
컨벤션 센터 전시장의 건축디자인도 현대적 기술력이 결합되어 완성도가 높다. 10개가 넘는 각 전시장의 매스를 연결하는 스카이브릿지 상부에는 비정형 스카이라이트가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이미지로 만들어져 역동적인 미래도시를 연상케 한다. 바닥에는 공항 여객터미널에서 봄직한 무빙워크로 대규모 인원을 실어 나른다. 길 찾기를 도와주는 각종 사인물의 디자인과 편익시설들도 매우 인상적이다.
밀라노는 역사적인 도시임에도 도심지 외곽에는 미래지향적이고 과감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온고이지신! 옛 것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들을 현재로 또 미래로 연결하는 노력에 감탄하며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에게 여행이란?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에서도 여행자의 감성을 다루고 있지만 여행은 기본적으로 신세계에 대한 탐구 본능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 거기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 이색적인 장소와 풍경들, 문화와 예술의 차이를 발견하고 느끼고 다시 귀환까지의 전 과정은 우리를 새로운 체험으로 들뜨게 한다. 거기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하고 지친 삶을 재충전하기도 하고 때로 상처 입은 영혼은 힐링을 경험하기도 하는 여행은 그래서 묘한 매력이 있다.누구나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유명한 관광지는 꼭 들러서 인증샷, 설정샷을 남기고 싶어 한다. "나 여기 가봤거든?" 하는?" 자랑과 허세 심리도 동반하기 마련이다. 기념품이나 명품쇼핑도 중요하고 맛집을 찾아 즐기는 일도 그 지역성을 체험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분주하게 주마간산 격으로 보는 여행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 스케치 여행,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는 여행을 선호한다.
하루쯤은 복잡한 여행 일정과 와글와글 수다스러운 일행들에서 이탈해 볼 필요가 있다. 나 홀로 배낭을 메고 느릿느릿 걸으며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의 군중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은 여행의 깊이를 더해준다. 내 삶의 방향과 속도를 재조정하는 방법 중에 하나다. 특히 이탈리아에는 크고 작은 많은 성당이 있는데 이런 장소를 찾아 회중석에 몸을 잠시 맡기고 묵상하는 시간은 내게 삶의 이유와 단서를 찾게 하고 치유의 시간을 제공해준다. 일상을 떠난 새로운 장소이니만큼, 주파수가 다른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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