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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병원 마케터가 바라본 짧고 얕은 문화이야기] 무한한 꿈과 자유, 시를 품은 그림을 만나다volume.24 2022. 6. 30. 21:06
무한한 꿈과 자유, 시를 품은 그림을 만나다
<호안 미로 : 여인, 새, 별> 전이 작품 뭐지? 즉흥적으로 그려 나간 듯한 이 작품이 몇 년에 걸쳐 그려진 작품이라고? 호안 미로 작품의 첫 느낌은 쉬운듯하면서 낯설다. 강렬한 색감과 화면을 가득 채운 그만의 추상적인 기호들은 작품 속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정밀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구성되어서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서 완벽한 배치로 이뤄낸 즉흥적인 작품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계획적이면서 즉흥적이라는 표현이 호안 미로 작품 속에서는 말이 된다.
스페인의 고전 화가 하면 벨라스케스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대표적인 화가로 피카소와 달리까지는 그려지는데 호안 미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잘 몰랐기에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에 가면 한 번씩 들린다는 호안 미로 미술관 작품들을 국내에서 전시한다고 하니 궁금할 수밖에.
그렇게 찾게 된 전시회에서 만난 호안 미로의 작품은 무의식, 욕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꿈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가 처음 파리로 이주했을 때 어울렸던 이들 중 시인과 작가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는 시를 정말 사랑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시들은 회화적 기호가 되어 위치의 구분 없이 나열되어 창조적인 시각언어로 변모되어 있었다.
전시 작품들은 그가 시적 기호를 그림 속에 어떻게 녹아내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여인과 새, 별, 사다리 등은 시적 기호와 엮어져 그만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보면 아이의 시각에서 봐도 낯설지 않을 정도로 단순화시켜서 표출했다고 하겠다.
해방된 기호에서는 추상적이고 암시적인 기호들이 더욱 혼합되고 재창조되어 변화하고 있었다. 태양, 달, 별자리, 사다리 등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고 있었고, 또 다른 작품 속에서는 빨간색과 노란 원색의 대비가 강렬하고 굵게 그린 검은 선들에는 에너지가 넘쳐났다.
미로의 작품 속 여인은 실제 여자를 표현했다기보다 우주로 묘사되었다. 또한 새는 지상과 천계를 오가는 초월적 수단의 기호로 자주 표현되었다. 너무 쉽게 그린 거 같은 데라고 생각하다가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유연함과 역동성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가 얼마나 다양한 기법과 재료를 이용해 일상 사물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는지도 볼 수 있다. 노끈과 마네킹, 수도 펌프 등이 새롭게 재창조된 오브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를 제대로 보여 준 게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작자 미상의 풍경화에 다시 그가 덧칠해서 기존 회화작품의 존재감을 없애버린 <오리들의 비행, 여인, 별>이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전통회화 기법을 인정하지 않고, 완전히 재해석해서 그냥 배경으로만 만들어버리다니. 이게 바로 호안 미로가 추구한 미술의 세계가 아닐까. 그의 작품 속 탈출을 상징하는 사다리를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그가 겪은 2차대전과 스페인 내전은 그가 이러한 작품 활동을 통해서 현실을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내면 속 자유를 갈망하고 표현하도록 한 배경이 되었을 것 같다.
주절주절 이렇게 작품에 대해 평을 써 내려가면서도 아마 호안 미로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극도로 단순화된 형상을 보면서 상상의 즐거움과 그가 그려낸 세계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미술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답이 없어서 그런듯하다. 강렬한 색과 검은색의 라인이 만든 실루엣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게 만든 힘이 있는 화가가 바로 호안 미로인 듯하다.
회화부터 드로잉, 판화, 조각 등 다양한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 호안 미로. 다음에 스페인을 방문하게 되면 현지에서 호안 미로 전시회를 꼭 다시 찾아가서 작품 앞에 서 있지 않을까 싶다. ■
글/사진. 이현주 병원 마케터
이현주
글쓴이 이현주는 바른세상병원에서 홍보마케팅 총괄을 하고 있는 병원 마케터이다.병원 홍보에 진심이긴 하지만, 한 때 서점 주인이 꿈이기도 했던 글쓴이는 독서와 예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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