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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호 원장의 책 해방일지]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volume.24 2022. 6. 28. 17:32
나의 책 해방일지. 1st.
방 한쪽에 있는 책꽂이에서, 몇 년째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자리를 차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책 중에서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책을 꺼내 보는 순간. 이번에 읽히고 들어가면 다음에 언제 해방될지 모르는 책이지만 자주 읽어 보고 싶은 책. 이렇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면 책한테는 중고 책방을 통해서 널리 돌아다니면서 읽히는 게 본연의 목적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저 | 2002 (한국어 2003)
원제목은 Complications.
한국어판 제목은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부제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작가인 아툴 가완디의 부모는 인도인 의사였고, 본인도 외과의사가 되었다. 외과의사로서 아툴 가완디의 실력은 알 수 없지만, 글 쓰는 실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 생각된다. 뉴요커지의 필자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 기고하는 사람들은 다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아툴 가완디가 쓴 책이 절판된 책까지 4권이 나와 있는데, 이 책은 첫 번째 데뷔작으로 생각된다. 뒤에 나온 4권까지 읽어 본 느낌은 다행히도 이분은 데뷔작이 대표작은 아닌, 뒤로 갈수록 글 쓰는 솜씨가 느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첫 번째 만난 이 책의 인상이 제일 강렬하다.
책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part 1. 오류 가능성
part 2. 불가사의
part 3. 불확실성
서문에 저자가 써 놓았는데, 'Complications'라는 제목은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곡절뿐 아니라, 의료에 대한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한 우려의 표시이다. 의사는 최첨단의 현장에 있지만,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비뇨기과 개업의인 아버지 이야기를 적었는데, 작가 아버지가 하는 시술의 3/4 정도는 전공의 때 배운 것이 아닌, 그 후에 배운 것이고, 계속해서 새롭게 나오는 술기와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다고 적었다.
학생 실습 때 학습 담당 레지던트였던 사람이 전공의 때 열심히 하라면서 그때 배운 지식과 술기로 평생을 써먹게 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틀렸다. 전문의 면허를 받고 나서 새롭게 배우는 게 너무 많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 의학은 매우 보수적이다. 소아청소년과 교과서는 3년마다 새롭게 나오는데, 교과서에 실리는 참고 문헌은 보통 3년 전까지의 것이다. 최근 1~2년에 나오는 새로운 지식은 아직 검증되지 않아서, 교과서에 실리지는 않지만 사용되는 지식이 있다. 그런 미숙성 지식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면 다음번 교과서에 실려서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책에는 시니어 전공의가 초보 전공의 때부터의 다양한 경험을 적어 놨다. 약간 전문적인 내용이 있어서 어려울 수 있지만,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쉽게 읽을 수 있고,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의학 드라마를 보는 느낌일 수 있는데, 한국의 의학 드라마라기보다는 ER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면 의료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의료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와 연관성이 없지 않다. 미국의 시스템이 대부분 언급되지만, 한국의 시스템도 비슷하다.
작가 생각에 일반외과 전공의 면접 때 신기한 점은 아무도 손재주가 좋은지, 손을 떨지 않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외과 등의 의료 현장에서는 연습을 믿지, 재능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몇 년간 사람을 뽑다 보면 언젠가는 재능이 있으면서 연습도 꾸준히 하는 끈기 있는 사람이 들어오고, 그럼 그 사람을 키워서 의료진을 충원한다. 그러기에 누가 들어와도 큰 상관은 없다. 꾸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면 된다.
전공의가 되고 나서 모든 수기는 선임자의 지도하에 익숙해질 때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본인이 익숙해지고 나면 다시 가르치는 과정이 남아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 이런 글을 읽으면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의학은 그렇게 전해졌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대학병원에 가기가 꺼려질지 모르겠지만, 전공의가 있는 대학병원이 질환에 대한 치료율이 더 높았다.
2002년에 나온 책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진단과 사람의 진단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아직 AI라는 개념은 없는 때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학습곡선을 올리는 좋은 방법에 대한 이야기와 어떤 병원을 운영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탈장 수술 전문 병원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방식들은 병원이 아닌 기업 같은 곳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 사람을 말콤 글래드웰이 뉴요커 잡지에 추천했다고 후기에 적어 놨는데, 두 사람은 비슷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 같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도 재미있다. 본인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책을 쓴다기 보다는 적당한 사례들을 모아서 본인의 생각을 강조하는 내용의 책을 내는데, 마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들듯이 글쓰기를 한다. 애플도 그렇지 않은가? 다른 회사에서 만든 기술을 가지고 와서 1+1 이 2가 아닌 3이나 4의 효과를 내는 거. 이 두 사람의 책도 본인이 연구한 내용은 아닌데, 적당한 내용을 가지고 와서 덧셈이 아닌 곱셈의 책을 내는 사람들이다. 아툴 가완디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긴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도 해봤다. 전 세계 특허를 잘 모아서 한 개의 특허로는 상품이 안 될 것 같은 것도, 두 개나 세 개를 병렬로 모으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A라는 내용과 B라는 내용이 만나서 새로운 관점을 만들듯이, 짜장면과 짬뽕의 합체인 제품을 전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가치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누군가가 모아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고 생각했는데, 아툴 가완디와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읽으면 이 사람들이 그것을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된다.
책의 중간에는 조금은 특이한 경험을 준 환자에 대해서 적어 놨다. 일반적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의료의 보편성과 개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흥미 있게 적어 놔서 글자의 압박이 좀 있기는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책의 마지막에는 조금은 생각할 내용들을 던져준다. 부검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SIDS라고 불리는 유아돌연사 증후군, 그리고 여러 가지 치료의 방법이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치료를 하게 되는 결정을 누가 하게 될지 등에 대한 논쟁거리들을 던져 준다.
의료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해서 수술을 위해서 입원한 환자에게 전날 "내일 당신은 A라는 방법으로 수술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을 때, "선생님, 제 생각에 수술을 A라는 방법으로 하는 것 보다는, B라는 약을 사용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다가 C라는 방식의 수술을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의사의 권고를 따르는데, 요즘은 일방적인 권고를 하기보다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환자가 선택하게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의료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도 마지막에 하고 있다. 전공의 때 교수님 외래에 참관을 들어가면 교수님이 "환자가 들어올 때 관상이 중요해."라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이다. 들어오는 얼굴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힘든 얼굴, 열나는 얼굴과 같은 표정, 잘 못 걷는 경우 등등... 다양한 비언어적 의사 표현이 판단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전에 경험했던 비언어적인 의사 표현의 경험이 편견으로 작용해서 정확한 진단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같은 고열이 나는 경우도 비언어적인 다른 조건이 영향을 줘서 최종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데, 객관적인 판단이 중요하지만, 의사 개인적인 경험도 진단에는 많은 영향을 준다.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감정을 배제한 판단도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는 감정이 들어간 경험적 판단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너무 감정이 들어간 경우는 VIP 신드롬을 만들기도 한다. (VIP 신드롬에 대한 설명은 책에 있다.)
이 책을 다 읽어 보면 왜 이 사람이 complications라는 제목의 책을 쓰게 된 것인지, 그리고 한국어 제목이 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로 되어 있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2002)'에 이어, '어떻게 일할 것인가(2007)', '체크!, 체크리스트(2009)', '어떻게 죽을 것인가(2014)'를 출판했다. 지금쯤 새로운 책이 나올 시기가 된 것 같은데, 안 나와서 궁금증과 기대로 기다리고 있다.
아툴 가완디는 2018년 아마존, JP 모건, 버크셔 해서웨이가 합작으로 만든 헬스케어 회사에 CEO로 취직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 회사의 설립 목적이 출자한 세 곳 회사의 직원 의료 비용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라서, 아툴 가완디가 CEO에 취직하고 나서 일시적으로 미국 의료 관련 회사의 주식 가격이 떨어졌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툴 가완디나 버크셔의 워런 버핏이 달려들어도 미국의 의료비를 낮추기는 힘들어 보이고, 회사가 난관에 부딪혔다고 알고 있다. 갈수록 늘어가는 비용은 천재들이 달려들어도 쉽게 해결할 수는 없나 보다.
이 책이, 조금은 의학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가 써 놓기도 했지만,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이고, 불확실한 정보이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이지만, 과학이다.
그림도 없고 빽빽한 텍스트의 압박이 있지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
P.S. 표지 사진을 보면 서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 아툴 가완디 젊은 시절의 사진 같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글. 마태호 삼성제일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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