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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동해 바다volume.15 2021. 9. 28. 14:09
동해바다
지구가 고장 난 듯 장마와 찜통더위로 여름을 달구더니 어느덧 계절은 바뀌어 가을이다. 이번에는 철 지난 바닷가로 훌쩍 발걸음을 옮겨보자. 서해안이 널따란 개펄 위로 노을이 아름답다면 동해안은 푸르고 맑은 바다와 모래사장이 만들어내는 해변이 탁월하다. 피서와 해수욕의 시절은 지났으니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끝없는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것도 바다를 즐기는 방법이다.
해안선의 풍경은 100년 전에도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고 이곳은 태곳적 장면과 다름없으니 단번에 원시 자연으로 회귀하는 상상이 가능하다. 파도를 넘어 멀리 수평선 위에는 일엽편주처럼 고깃배가 떠있고 그 위로 한가로운 갈매기 무리들이 공중에서 어지러운 곡예비행을 즐기고 있다. 이 순간 바다는 분명히 시간이 정지되었거나 혹은 느릿느릿 흘러가는 곳이다. 그런 원초적 바다를 마주하고 서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
속초
강원도, 속초는 설악과 동해바다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일단 속초를 가기 위해 춘천 고속도로를 타기로 한다. 홍천과 인제를 지나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공기는 사뭇 다르다. 용대리에서는 선바위가 고개를 내밀고 미시령터널을 나서면 울산바위가 환영인사를 한다. 물론 그전에 만해마을이나 여초 서예박물관을 방문해서 동해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마음속 가득한 세속의 먼지를 떨어내는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동해안, 속초 인근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항상 기대되는 몇 가지가 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발끝까지 달려드는 파도와 동명항 언덕 위의 하얀 등대
새벽 바다 위로 붉은 해돋이
대포항 고깃배들이 낚아온 자연산 잡어 회와 소주 한 잔
바닷바람을 견디어 낸 소나무가 아름다운 절벽 위 낙산사 절경
중앙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유명한 닭강정
학사평 인근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순두부 맛집들
설악산의 단풍과 청량음료 같은 공기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아도 속초에는 가보고 맛보고 체험하기 좋은 장소가 가득하다.
강릉
강릉 역시 속초에서 멀지 않은 도시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 정도만 이동하면 편리하게 도착한다. 강릉도 가볼 만한 장소는 많지만 심곡항을 우연히 들른 적이 있는데 삼척의 초곡항, 양양의 남애항과 함께 강원도의 3대 미항으로 손꼽는다. 심곡항은 깊은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조용한 어촌의 항구다. 심곡 바다부채길과 연결되는 아름다운 항구로서 해파랑길이다. 진입하는 헌화로는 꼬불꼬불한 도로라서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이동하게 되는데 드라이브 코스로는 그만이다.
바다에 박힌 바위들은 하나같이 주상절리의 경사진 주름을 가지고 있어 모양새는 다양하고 다이내믹하다. 방파제 하부에는 인간의 제조물인 테트라포드가 서로 몸을 엮어 지탱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스스로 파도를 이겨내는 견고한 자연석 바위는 독립적이라서 대조적이다. 방파제 끝에는 등대 하나가 아이콘처럼 존재한다. 초록색에 가까운 바닷물과는 보색대비를 이루는 붉은색 등대가 오늘따라 한가롭게 보이는지 갈매기의 날갯짓도 평화롭다. ‘깊은 계곡’이라는 이름의 항구는 청정지역이라 코로나 같은 역병도 지나쳐갈 것만 같다. 어쩌면 팬데믹이 그동안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환경을 오염시킨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라면 심곡항과 같은 맑은 자연과 동네를 지키려는 노력과 의식이 더욱 절실하겠다.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 설악산을 방문하면, 주변의 산들은 온통 울긋불긋 화려한 색상으로 불꽃놀이 중이다. 속초의 신흥사에 들러 동안거(冬安居)를 준비 중인 산사를 돌아본다. 긴 겨울, 침묵의 시간으로 가기 전에 단풍은 스스로 마지막 화려한 축제를 벌인다. 혹시 겨울에 이곳을 지난다고 해도 잔설에 덮인 울산바위 능선의 뾰족 거리는 바위들의 행진과 다양한 표정은 도로에서 순간을 포착해서라도 스케치북에 담고 싶어진다.
강원도 속초에 다녀오는 길에 인제 용대리를 지난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이지만 눈이 내리면 도로의 풍경은 감성적으로 뒤바뀐다. 마른 가지의 겨울 산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쌓이고 점점 굵어지는 눈 속에 풍경은 함몰된다. 이미 도로 위에는 사람의 발자국과 차량의 흔적들이 시간의 켜를 두고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다.
이처럼 사시사철 언제 어느 때 방문해도 동해바다는 푸근한 엄마의 품처럼 반겨준다. 바다가 그립고 삶의 재충전이 필요할 때 발걸음은 왠지 나도 모르게 동해안으로 향한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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