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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다양성의 도시 쿠알라룸푸르와 프트라자야ARTICLE 2026. 8. 3. 16:53

1. 쿠알라품프르 페트로나스타워 말레이시아는 대한민국보다 국토 면적이 약 3.3배 넓은 반면, 인구는 오히려 우리가 1.5배 더 많다. 영토 대비 인구 밀도가 비교적 낮고 보르네오섬 일부와 말레이반도로 분산되어 있어, 조밀한 한국의 도시와는 시작부터 다른 공간감을 준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잇는 해상 무역의 요충지였던 이 땅은 15세기 멜라카 술탄국 시절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후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에 점령당하는 등 지난한 식민 역사를 겪었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주변 지역과 통합하여 1963년 현재의 연방을 형성한 이들은, 이제 말레이인·중국인·인도인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이자 동남아의 주요 자원·경제 대국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이번에는 국제 건축심포지엄 행사에 초대되어 두 번째 방문인데, 화려한 현대 문명과 깊은 역사적 층위가 묘하게 공존하는 독특한 시공간을 다시금 마주하는 여정이었다. 뜨겁고 습한 공기 속에서 마주한 이 땅의 첫인상은 예상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1. 쿠알라룸푸르 (Kuala Lumpur) : 마천루의 그늘과 역사의 흔적이 교차하는 곳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에서 마주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지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에 지어진 초고층타워들과 견주어봐도 그 존재감은 손색이 없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이슬람 전통 문양을 모티브로 , 건축가 시저 펠리가 디자인했다. 이슬람 사상을 상징하는 두 개의 겹친 정사각형(8각 별 모양)을 기본으로 삼고 여기에 부드러운 곡선의 반원을 추가해 공간을 확장했다. 건물이 위로 올라갈수록 단계적으로 좁아지는 세트백(Setback)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이슬람 미나레트(첨탑)의 형태를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2. 쿠알라룸프르 
3. 페트로나스타워 특히 영화 <앤트랩먼트>(1999)에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영화 핵심 배경이 되었다. 주인공 숀 코네리와 캐서린 제타 존스는 타워의 88층, 지상 450m 높이에 위치한 두 건물 사이의 스카이브릿지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 탈출하는 아찔한 액션 명장면을 연기 해낸다. 이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 덕분에 당시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단숨에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4. 메르데카 118 
5. 메르테카 118 
6. 더 익스체인지106 역시 말레이시아의 수도답게, 최근에 새로 지어진 랜드마크, 더 익스체인지 106, 메르데카 118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보다 더 높게 지어져 하늘을 찌를 듯한 현대성의 상징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 거대한 마천루의 그늘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슬람 모스크, 힌두교 사원, 중국식 사찰이 한 거리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웃하고 있다. 서로 다른 종족과 종교, 문화가 충돌 없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하나의 도시 풍경을 완성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다. 건축 양식 또한 말레이, 이슬람, 그리고 식민지 풍의 유럽 양식이 한데 뒤섞여 이 도시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직조해 낸다.

7. 메르테카 광장 
8. 메르데카광장 시계탑 건물 르데카 광장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들은 시간이 묵직하게 축적된 장소다. 19세기 말 영국 식민지 시절의 행정 관청(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으로 건립된 이 구조물은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역사적 건축물이다. 브라운 색조의 벽돌과 흰색 석조 마감이 대조를 이루며, 연속된 말발굽 모양의 아치(Moorish arch)와 정교한 회랑이 깊은 음영과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 중앙에는 영국의 빅벤을 연상시키는 41m 높이의 거대한 시계탑이 솟아 있고, 빛나는 구리(Copper)로 마감된 양파 모양의 돔들이 이국적인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이곳은 1957년 8월 31일,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말레이시아 국기가 처음으로 게양되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특유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디테일 덕분에 도시의 서사를 담아내기에 이보다 아름다운 건축 유산은 없을 듯하다.
반면, 차이나타운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거칠고도 매력적으로 뒤섞인 역동적인 공간이다. 붉은 홍등이 걸린 전통적인 중국식 상가(Shophouse) 주위로 힌두교 사원과 이슬람 사원이 인접해 있어, 말레이시아 특유의 다문화적 혼종성이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오래되고 퇴락한 옛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채 내부를 감각적으로 리노베이션한 카페, 갤러리, 바(Bar)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젊은 층과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성공적인 도시 재생의 활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9. 차이타타운 1 
10. 차이나타운 인근 1 
11. 차이나타운 인근 2 거리의 번잡한 시장통 분위기에 어울려, 과일 상점 앞에서 처음 맛보는 열대과일을 베어 물며 우리 일행은 잠시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세월의 때가 묻은 콘크리트 벽면과 현대적인 그래피티가 공존하는 모습에서 도시의 독특한 호흡이 읽힌다. 빛바랜 식민지 시절의 건축 양식과 치열한 삶의 흔적, 그리고 현대적인 로컬 문화가 묘하게 얽혀 있어 걷는 내내 시각적 영감을 자극하는 장소다.
2. 프트라자야 (Putrajaya) : 철저한 계획 위에 세워진 거대한 건축 전시장
말레이시아의 행정수도이자 독특한 계획도시인 프트라자야는 번잡한 쿠알라룸푸르와는 전혀 다른 웅장하고 쾌적한 매력을 풍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 전시장 같아 눈길이 닿는 곳마다 프레임이 되고, 하루 코스로 여유롭게 둘러보기에 좋다.
이 도시의 명확한 상징은 단연 '핑크 모스크(마스지드 푸트라)'다. 인공 호수 위에 부유하듯 떠 있는 분홍빛 외관은 시각적인 압도감을 선사하며, 내부의 정교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거대한 돔은 이국적인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12. 프트라자야 
13. 핑크모스크 1 
14. 핑크모스크 2 도시 중심을 흐르는 거대한 인공 호수를 따라 여객선을 타고 다리 하부를 지나는 투어는 이 도시의 스케일을 체감하게 한다. 철저한 마스터플랜에 의해 조성된 도시답게 도로는 넓고 정돈되어 있으며, 풍부한 녹지 비율 덕분에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다가온다. 쿠알라룸푸르의 소음과 매연에서 벗어나 한적하게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훌륭하다. 이슬람 전통 양식과 모던한 현대 건축이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건축이나 도시 계획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요소로 가득한 곳이다.
3. 답사를 마치며...

15. 쿠알라룸프르 시내 이번 말레이시아 답사는 단순히 새로운 공간을 보고 즐기는 관광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한 땅에 녹아들어 거대한 모자이크를 이루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건축과 공간이 어떤 정렬을 만들어 내는지 감각적으로 확인한 시간이었다.
다양성이 주는 혼돈은 무질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 땅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생명력이었다. 이 이국적인 도시의 레이어들을 마음속에 갈무리하며,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깊고 넓어졌음을 느낀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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