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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예술과 자연의 경계가 무너지는 곳, 데시마 미술관ARTICLE 2026. 9. 2. 12:31
작년에 나오시마 섬을 일행과 함께 간 적이 있다. 우리는 나오시마에서 1박 후, 항구에서 쾌속선을 타고 인근 데시마 섬(豊島)으로 이동했다. 나오시마와 마찬가지로 과거 데시마 섬 역시 산업폐기물로 인해 환경 오염의 아픔을 겪은 섬이었다. 하지만 나오시마 섬 재생 프로젝트와 함께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섬으로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베네세 그룹과 후쿠타케 재단이 주도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가 효과적으로 작동되었다. 이 후 2010년부터 시작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이제 전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재생과 예술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은 나오시마와 데시마를 찾아온다.
예술제의 중심인 나오시마가 미술관 내부로 들어온 현대 미술과 건축을 보여준다면, 데시마는 섬의 계단식 논, 바다, 바람 같은 자연 환경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집중한다.

데시마 선착장 1 
데시마 선착장 2 
데시마 선착장 3 나오시마 항에서 고속선으로 출발하면 30분도 채 안되어서 선착장인 이우라 항에 도착한다. 여객선에서 내리자마자 특유의 한적한 어촌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섬 내의 대중교통을 알아보다가 마침 택시가 보이길래 냉큼 집어 탔다. 우리 일행 5명이 탈 수 있는 택시라서 운 좋게 잡아 타고 데시마 미술관으로 향한다.
가는 길은 시골 분위기의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 길을 반복하며 푸른 세토내해와 계단식 논이 펼쳐진다. 이따금씩 자전거로 이동하는 관광객들도 눈에 띈다. 언덕길을 넘어 모퉁이를 돌자마자 조개껍데기 모양을 닮은 커다란 흰 색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인상은 마치 푸른 숲 속에 안착한 우주선 같기도 했다. 신기하다. 이런 시골 섬에 저런 미술관이 있다니.

데시마 섬 
데시마 섬 
데시마 미술관 입구 놀라움은 첫 인상에서 끝나지않았다. 데시마 미술관은 일반적인 미술관의 기존 관념을 완전히 뒤흔드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곳에는 벽에 걸린 그림도, 좌대 위에 놓인 조각상도 없다. 일본의 여성 건축가, 세지마 가즈오가 이끄는 Sanna그룹의 파트너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건축디자인을 맡았고 (이들은 프리츠커 수상자들이다) 더불어 아티스트, 나이토 레이와 협업해 만든 건축물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흰색 콘크리트 미술관은 장식이 없어 소탈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기둥 없는 지붕 구조와 바닥면의 처리는 정밀한 계산을 통한 매우 정교한 건축이다.
매표소를 지나 나무 아래 햇볕 좋은 벤치에 앉아 바람과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입장을 기다린다. 미술관 내의 입장객 수를 조율하는 모양이다. 전면에 별관으로 지어진 카페(기프트샵)는 미술관을 체험하고 들러봐야지. 이제 정해진 입장 시간이 다가와 진입을 해야하는데 설계자는 숲길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도록 동선을 치밀하게 계획해 두었다. 숲속 오솔길은 바다를 조망하며 회유한다. 내해는 파도가 없어 오전 햇살을 받아 윤슬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평화로운 산책길이다. 이제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기 전, 신발을 벗어야 한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차갑고 매끄러운 콘크리트의 촉감이 생경하다. 내부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된다. 작은 소리조차 공명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심하고 조용하다. 사방이 완전히 트인 거대한 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거나 바닥에 누워 있다. 작은 소리 조차 공명 되므로 서로가 숨을 죽인 채 저마다 바닥을 주시하고 있다. 대체 저 바닥에 무엇이 있지?

데시마 미술관 전경 
데시마 미술관 전경 2 미술관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구멍에서 물방울이 퐁퐁 솟아오른다. 발수 처리된 매끄러운 바닥 위에서 이 물방울들은 표면장력으로 동그랗게 뭉쳐서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굴러다닌다.
-어떤 물방울은 가만히 멈춰 있고,
-어떤 물방울은 경사를 따라 빠르게 미끄러지며,
-또 다른 물방울과 합쳐져 커다란 물방울을 이룬다.
물방울의 대표 작가, 김창열 선생이 이 퍼포먼스를 봤어야 하는데...
아무런 장치도 없이 오직 중력과 표면장력, 그리고 바닥의 세밀한 경사로만 움직이는 물방울의 궤적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명상이 어울리는 미술관이다.

데시마 미술관 내부 1 
데시마 미술관 내부 2 콘크리트 쉘 구조라서 기둥 없는 넓은 공간 안에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들 조차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처럼 보인다. 얇은 콘크리트 천장에는 두 개의 거대한 타원형 개구부가 있다. 이 구멍을 통해 데시마의 자연이 미술관 내부로 그대로 흘러들어온다.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비가 오는 날에는 빗물도 내부로 들어온다. 빛과 그림자는 구름이 지나가는 행로에 따라 미술관 내부에 명암으로 침투하여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천장에 매달린 가느다란 실 하나가 바람을 타고 불규칙하게 춤을 추며 바람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곳에서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보호하는 껍데기가 아니라, 하늘과 바람, 빛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30분~1시간 남짓 바닥에 앉아 물방울과 하늘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미술관 옆에 위치한 카페 역시 본관과 닮은 작은 돔 형태로 지어져 있어 아담한 느낌을 준다. 데시마 미술관은 '본다'는 행위를 넘어, 자연의 순환과 찰나의 순간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데시마 미술관 내부 3 
데시마 미술관 내부 4 인공적인 전시물에 지쳐있던 차에, 자연과 건축이 이토록 완벽하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창의적인 건축가와 설치예술가가 완벽한 팀워크로 만들어 낸 정밀한 건축, 탁월한 작품이다. 복잡한 생각을 비워내고 오롯이 감각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 언제고 다시 찾고 싶은 특별하고 인상적인 미술관이다. 소박하고 작은 섬에서 큰 감동과 인사이트를 얻고 돌아간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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