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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의 병원 중간관리자 이야기] 인수인계는 왜 퇴사 통보 뒤에야 시작되는가ARTICLE 2026. 9. 2. 12:40
필자가 실장이 되고 처음 받은 퇴사 통보는 복도에서였다. 오후 진료가 시작되기 직전, 치료실 문 앞에서 한 직원이 잠깐 시간을 내 달라고 하더니 "실장님, 저 이번 달까지만 나올게요"라고 했다. 치료실에서 6년을 일한 직원이었고, 환자 치료 외에도 장비 점검과 소모품 주문, 업체 연락을 혼자 맡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원장에게 보고했고, 원장은 공고를 올리라고 했다. 그날 내가 한 일은 공고를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공고를 냈지만 후임은 뽑히지 않았고, 마지막 두 주를 인수인계 기간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그 직원은 남은 연차를 쓰느라 정작 출근한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환자가 밀려, 그 며칠 사이에 다른 선생님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지조차 묻지 못했다. 퇴사 전날 그 직원이 파일 하나를 건넸다. 두 장이었다. 소모품 목록과 업체 이름이 적혀 있었고, 나는 고맙다고 하고 그 선생님의 마지막날을 배웅했다.
퇴사하고 보름쯤 지나 전기치료기 한 대가 고장 났다. 업체 이름은 파일에 있었지만 담당자 이름과 전화번호는 없었고, 대표번호로 전화하니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옆에서 듣고 있던 원장이 물었다. "그 사람 번호 없어?" 그 사람이란 퇴사한 직원이었다. 나는 그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받아 주었고, 담당자 이름은 물론 그 담당자가 수요일에는 통화가 안 된다는 것까지 알려 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 병원의 인수인계는 퇴사한 직원에게 전화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원장님과 실장님들이 웃는다. 인수인계를 그렇게 허술하게 하는 데가 있느냐는 웃음이기도 하고, 우리 병원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웃음이기도 하다. 심평원 삭감이 나왔을 때 이의신청을 어느 화면에서 넣는지, 어느 보험사가 어떤 서류를 따로 요구하는지, 같은 일들은, 열 명 안팎의 병원에서는 규정에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정리된 문서 없이 담당하는 사람 머릿속에만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매일 다니는 길에 지도가 없는 것과 같다. 그 길을 매일 다니는 사람에게는 지도가 필요 없고, 그래서 아무도 그려두려고 하지 않는다. 담당자가 오래 일할수록, 그 일이 별 탈 없이 돌아갈수록, 그 길은 더 익숙해지고 지도는 더 필요가 없어진다. 잘 다니는 길일수록 지도가 없다.
작은 병원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맡는다. 청구, 물품 주문, 예약 정리가 각각 한 사람의 몫이고, 대신 해 줄 사람이 없으니 배우는 사람이 없고, 배우는 사람이 없으니 적어 둘 이유도 없다. 그러다 퇴사 통보가 오면 그제야 남은 근무일 안에 부랴부랴 인수인계를 하게 되는데, 그 시간 동안 가장 정성껏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사람은 이미 병원에서 마음이 떠난 사람이다.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리해 둔 자료가 맞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다. 그 사람이 불성실해서가 아니다. 6년 동안 지도 없이 다니던 길을 마지막 두 주 안에 종이에 그려 보라고 하면, 나라도 어디서부터 그려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렇게 퇴사후의 폭풍을 맞이해보고 나서 나는 방법을 바꿨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직원들에게 각자 자기 일 가운데 "내가 내일 갑자기 못 나오면 멈추는 일"을 세 가지씩만 적어 오라고 했고, 열두 명이 적어 온 종이를 모으니 한 사람에게만 몰려 있는 일이 어디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는 담당자가 연차를 쓰는 날 다른 한 사람이 그 일을 대신 해 보도록 짝을 지어 줬다. 지도를 그리게 한 것이 아니라, 옆에서 같이 걷게 한 것이다. 같이 걷다 보면 막히는 데가 나오고, 막힌 데를 담당자가 고쳐 주면 그것이 그대로 지도가 됐다. 두 번째 퇴사 통보가 왔을 때는 후임이 없어도 다른 직원이 그 일을 어렵지 않게 이어받았고, 퇴사하는 직원은 옆에서 보고 고쳐 주기만 했다. 나간 뒤에 전화할 일은 없었다.
첫 번째 퇴사 때 내가 놓친 것은 마지막 두 주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근무를 했던 6년이었다. 그 직원이 아무 탈 없이 일하던 동안 나는 그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래서 그 일이 그 사람과 함께 병원을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퇴사 통보는 언제나 갑자기 온다. 그러나 그 뒤에 어떤 일이 멈추는지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실장이라면 오늘 자기 팀을 한 번 둘러보자. 이 사람이 내일 없으면 어떤 일이 멈추는가. 그 답을 지금 말할 수 있으면 그 병원의 인수인계는 이미 끝나 있는 것이고, 말할 수 없으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잘 돌아가는 일일수록, 잘 돌아가고 있을 때 들여다봐야 한다.

정 경
·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 협회장
· 바스제로 컨설팅 대표
· 전문면접관 · 병원 조직 컨설턴트
24년간 물리치료사로 병원 현장을 지켰다. 직원이었고, 팀장이었고, 중간관리자였다. 중간관리자는 단순하게 연차가 쌓여서 되는 자리가 아니라 병원의 경영파트너로 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 협회장으로 병원 중간관리자의 성장을 지원하며, 전문면접관·CS 컨설턴트로 의료기관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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